<12월 시 모음>
12월 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박재삼·시인, 1933-1997)
12월 정석주
해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정석주·시인, 1940-1987)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천상병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천상병·시인, 1930-1993)
12월엔 이희숙
그리움이 얼마나 짙어 바다는 저토록 잉잉대는지 바람은 또 얼마나 깊어 온몸으로 뒤척이는지 묻지 마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돌아선 이별처럼 사연들로 넘쳐나는 12월엔 죽도록 사랑하지 않아도 용서가 되고 어쩌다보니 사랑이더라는 낙서 같은 마음도 이해가 되는 12월엔 (이희숙·시인, 1964-)
12월 황지우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의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황지우·시인, 1952-)
12월 저녁의 편지 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안도현·시인, 1961-)
12월에 박상희
가슴에 담아두어 답답함이었을까 비운 마음은 어떨까
숨이 막혀 답답했던 것들 다 비워도 시원치 않은 것은 아직 다 비워지지 않았음이랴
본래 그릇이 없었다면 답답함도 허전함도 없었을까 삶이 내게 무엇을 원하기에 풀지 못할 숙제가 이리도 많았을까
내가 세상에 무엇을 원했기에 아직 비워지지 않은 가슴이 남았을까 돌아보면 후회와 어리석음만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걸.
또 한해가 가고 나는 무엇을 보내고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박상희·시인, 1952-)1
12월의 시 최연홍
12월은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 우울하게 서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12월엔 적도로 가서 겨울을 잊고 싶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한 해가 가는 것을 잊고 싶네 아니면 당신의 추억 속에 파묻혀 잠들고 싶네 누군가가 12월을 조금이라도 연장해준다면 그와 함께 있고 싶네 그렇게 해서 이른 봄을 만나고 싶네, 다람쥐처럼
12월엔 전화 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다정하다 차가워지는 저녁 벽난로에 땔 장작을 두고가는 친구 12월엔 그래서 우정의 달이 뜬다
털옷을 짜고 있는 당신의 손, 질주하는 세월의 삐걱거리는 소리,바람소리, 그후에 함박눈 내리는 포근함
선인장의 빨간 꽃이 피고 있다 시인의 방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다 친구의 방에는 물이 끊고 있다 한국인의 겨울에는 (최연홍·시인, 1941-)
12월의 노래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12월의 노래 박종학
마침내 달랑 한 장 그렇지만 마지막은 싫어요 처음 시작이라 불러 주세요 차가운 손길 하지만 마음만은 아니랍니다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입니다
나를 보면 행복해 합니다 나를 보면 추억으로 여깁니다 나를 보면 삶을 느낍니다 나는 행복입니다 나는 추억입니다 그래서 나는 12월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과 함께 외로운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한해를 뒤돌아보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기쁨의 합창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사랑이고 싶습니다 나는 12월입니다 (박종학·시인, 1963-)
12월 유강희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12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12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유강희·시인, 전북 완주 출생)
12월의 시 김사랑 마지막 잎새같은 달력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일년동안 쌓인 고통은 하얀 눈속에 묻어두고 사랑에서 슬픈 그림자는 빛으로 지워버리고 모두다 끝이라 할 때 후회하고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로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네 12월은 기쁨이 가득한 달 솜사탕같은 마음으로 그대 사랑했으면 좋겟네 그대 행복했으면 좋겠네 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 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 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12월 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내린다 닫혀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12월의 연가 김준태 겨울이 온다 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으리 멀리서 미렬오는 찬바람이 꽃과 나무와 세상의 모오든 향기를 거두어 가도 그대여, 나는 오히려 가슴 뜨거워지리 더 멀리서 불어오는 12월의 끝의 바람이 그 무성했던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버릴지라도 사랑이여, 나는 끝끝내 가슴 뜨거워 설레이리 저 벌판의 논고랑에 고인 조그마한 물방울 속에서도 때로는 살얼음 밑에서도 숨쉬며 반짝이는 송사리떼들 그 송사리떼들의 반짝임 속이라도 내 마음을 부벼 넣으리 어쩌면 상수리나무 몇 그루처럼 산등성이에 머무는 우리 시대 그대여, 겨울의 그 끝은... 오히려 사랑의 처절한 불꽃으로 타오르리 지금은 두 손뿐인 그대여.
송년의 시 윤보영 이제 그만 훌훌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빚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낮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12월의 시 - 이혜인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 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 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 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섞음을 용서 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 할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 하며 조용히 말 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12월 -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대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12월의 숲 황지우 눈맞은 겨울 나무 숲에 가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 숲은 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 숲은 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 나무 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 버리고 인근 산의 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추운 곳에서도 사랑은 이웃을 따뜻하게 합니다. 대지위에 시는 영원히 존재합니다. 운산 2016년12월21일 동지(冬至) 아침에
12월의 시 김사랑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일년동안 쌓인 고통은 빛으로 지워버리고 모두 다 끝이라 할 때 후회하고 포기하기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로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네 그대 사랑했으면 좋겠네 그대 행복했으면 좋겠네 12월의 독백 오 광 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12월의 시 꿈빛
갈은 마을깊은 산속 바위 닮은 집 한 채 낙엽들이 세상을 치장해 어디가 산이고 집인지 소꼽 같은 채소밭 경계로 허물처럼 누운 돌담에 인적이 오래된 뼈처럼 놓여있다 낙엽송은 조각조각 햇살을 모아 뿌려서 깊은 산속에도이렇게 반짝이는 때 있는지 황혼쯤이 찬란하기도 한데 주인의 춘추는 어떻게 됐을까
흙과 티끌 될 마음 한 칸에 온 산을 다 들여놓고 지는 잎과 늙은 바위 왕사되는 소리 노송의 죽비 같은 기침소리 다 듣는다 북풍이 불면 은하수 회오리쳐 여울져 물살의 포말들이 고운 눈 되어 내리고 그친 뒤등대처럼 별자리 고향 쪽으로 빛나고 온 산이 깊은 겨울잠에 들면 주인은 잠시 도시로 외출을 한다
사거리 주위는 어둠이 걷히고 차 몇 대 붉은 신호등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로드킬이 되는 새벽 오랜만에 속세에 몸 담그자마자 한 사람 들어와 수도꼭지 폭포수로 틀어 놓고 목욕 마칠 때까지 물을 피 흘리듯 쓴다
또 조금 있다 젊은 기침고래 하나 들어와 물소리보다 더 크게 기침과 가래를 토해낸다 돌아오는 산길까지 기침 가래 뱉는 소리 좇아온다 이제 마을 위를 스쳐가는 기러기에나 소식을 물을 뿐 주인은 이제 낙엽 냄새로나 몸을 정갈히 할 것이다
12월의 시 김영국
다 타고만 붉은 단풍이 한 줌의 재로 남은 가을이 진다 홀연히 길 떠나는 11월 그리움만 남겨둔 채 떠나보내고 하얀 눈꽃 송이 날리는 12월을 맞이하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아름다운 추억들 접어 두었던 이상의 꿈들을 12월을 맞이하여 마음 속에 평안과 행복 결실의 알곡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성탄의 축복이 깃든 12월 새로운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고 새해를 준비하는 희망으로 마음 속의 묵은 때 말끔히 씻어버리고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겸허하게 12월을 안으련다.
12월의 시 - 은교 잔별 서넛 데리고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처마끝마다 매달린 천근의 어굼을 보라 어둠이 길을 무너뜨린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년의 그림자도 지워버리고 그림자 슬피 우는 마을 마저 덮어 버린다 거기엔 아직 어린 새벽이 있으리라 어둠의 딸인 새벽과 그것의 젊은 어머니인 아침이 거기엔 아직 눈매 날까로운 한때의 바람도 있으리라 얼음 서걱이는 가슴 깊이 감춰둔 깃폭을 수업이 펼치고 있는 바람의 형제들 떠날 때를 기다려 달빛 푸른 옷을 갈아 입으며 맨몸들 부딪고 그대의 두 손을 펴라 싸움은 끝났으니, 이제 그대의 핏발선 눈 어둠에 누워 보이지 않으니 흐르는 강물소리로 어둠의 노래로 그대의 귀를 적시라 마지막 촛불을 켜듯 잔별 서넛 밝히며 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그림자를 거두면 가고 있다
<각 카페에서 퍼온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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