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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 정동수(사진=홈페이지 영상 캡처)
김홍기 목사 / Ph.D., D.Min. Christ Lives Ministries 대표. Talbot School of Theology (M. Div., D.Min.).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 D.)
정동수는 자신의 출판사(그리스도 예수안에)를 통해 2023년 12월에 출판한 《칼빈주의 비평》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칼빈주의 시스템에 있음을 파악하고 이런 나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칼빈주의/개혁주의라는 ‘인본주의 신정 국가 통치 철학 시스템’을 분석하고 바르게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번역/편집하여 출간하게 되었습니다.1)
칼빈을 독재자요 학살자로 보는 정동수의 편견
정동수는 칼빈주의를 ‘신정 국가’(theocracy)의 통치 철학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신정 국가는 신의 인도에 의한 국가 통치 또는 신의 인도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는 관리에 의한 국가 통치”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칼빈은 관리가 되어 제네바 시를 통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칼빈을 신정 국가의 통치자로 보는 정동수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칼빈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상 정부를 통치하는 ‘교회정치국가’(ecclesiocracy)를 제네바에 세운 적이 결코 없다. 정동수는 칼빈을 교회정치국가의 통치자로 여기는데 이는 완전한 오류이다. 정동수는 이런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서 칼빈이 제네바에서 잔인무도한 고문과 처형을 직접 주도하고 자행했다고 함부로 주장한다. 그러나 제네바에서의 이단의 처형은 칼빈이 아닌 제네바 시의회가 결정하고 집행한 일이다. 정동수의 심히 왜곡된 주장과는 달리, 칼빈은 ‘교회정치국가’를 반대했다. 칼빈은 교회가 국가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교회가 국가를 통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월간지인 크리스채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다음과 같은 글을 게시했다.
가장 견고하게 견지되고 있는 잘못된 관념 중 하나는 존 칼빈이 제네바에서 모든 삶을 통제하고 교회와 국가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통합한 신정 정치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와 정치라는 두 가지 질서를 믿었다. 둘 다 신적으로 제정되었으며, 각각 고유한 기능과 영향력과 권력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칼빈은 교회의 정당한 권위를 보호하고 교회의 영적 특권을 보호하려고 했다. 동시에 그는 교회가 영적인 영역이 아닌 세속적인 영역에 관여하는 것을 삼갔다(강조가 추가됨).2)
칼빈은 가장 명백한 이단자라는 정동수의 주장
정동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고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칼빈을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배설물”3) 같은 칼빈주의를 창안해서 그 자신의 생각대로 제네바를 철권통치한 잔인무도한 독재자로 묘사한다. 또한 그는 칼빈주의자들을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구분하지 않고 은혜와 율법을 혼합하여 ‘로드십 구원’(Lordship salvation) 같은, 사도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을 선포하는”4) 이단적 무리로 분류한다. 그는 정태홍 목사에 의해 발각되어 스스로 삭제하기까지 2009년부터 2024년까지 그의 웹사이트(사랑침례교회, https://www.cbck.org)에서 칼빈주의를 “이단 교리”로 분류했다.5) 정동수는 또한 “칼빈주의 비평” 3장에 있는 데이빗 클라우드(David Cloud)의 글을 통해 칼빈을 “가장 명백하게 이단자(most definitely heretic)”6)라고 말한다. 클라우드는 칼빈을 ‘가장 명백한 이단자’라고 한 이유를 자신의 글(“The Calvinism Debate”)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두 사람 [어거스틴과 칼빈] 모두 세례 중생(baptismal regeneration)과 점진적 구원(progressive salvation)을 고수했는데, 이것은 다른 복음이며 근본적이고 저주받아 마땅한 이단설이다.” 7)
클라우드는 이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주장을 하면서 칼빈의 저서, 특히 기독교강요 같은 책의 가르침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논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데이빗 비일(David Beale)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성급하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문제는 비일의 주장은 칼빈의 구원론을 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일은 “칼빈은 회심, 회개, 중생이라는 용어를 동일시함으로써 점진적 구원[칭의]을 분명히 가르친다”8)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칼빈이 회심과 회개를 포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즉, 칼빈은 회심과 회개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반에 적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 칼빈이 말하는 회심과 회개는 칭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화(칭의의 결과)도 포함한 개념인 것이다. 비일은 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므로 칼빈이 점진적 구원(칭의)을 가르쳤다고 매우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칼빈은 점진적 구원(칭의)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브라이언 헷지스(Brian Hedges) 목사에 의하면 칼빈은 “의롭다 함은 사건이며, 성화는 과정”9)이라고 가르쳤다. 실제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11장 2항에서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어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서 제외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그 의로 옷 입어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그의 은혜 안으로 받아들이시는 용납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의롭다 하심이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10)
칼빈은 칭의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어진다고 말하는데, 믿음은 마음의 순간적 작용이지 점진적 과정이 아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2장 8항에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11) 따라서 칼빈에게 믿음은 점진적 과정이 아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적 행위이며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칼빈은 칭의는 하나님이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의인으로 받아주실 때 주어진다고 말하는데,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은 하나님의 단 한 번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점진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칼빈이 점진적 구원(칭의)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비일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며, 칼빈의 구원론을 근본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그리고 헷지스는 “칼빈이 성화를 지칭할 때 선호하는 용어는 “회개”(repentance)였다”고 말한다. 실로 칼빈은 기독교강요 3권 3장 2항에서 성화의 개념을 설명할 때 성화 대신 회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회개는 다음과 같이 잘 정의될 수 있다. 회개는 우리 삶을 하나님께로 참으로 돌리는 것이며, 이는 그분에 대한 순수하고 진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회개는 우리의 육신과 옛사람을 죽이고, 성령을 생명화하는 것이다.12)
칼빈은 세례 중생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칼빈이 점진적 구원(칭의)뿐 아니라 세례 중생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데 이것 역시 칼빈의 가르침을 근본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그는 칼빈은 “천주교회가 가르치는 물세례에 의한 중생을 계속해서 믿었는데 이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거짓 복음이다”13)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사람이 세례의 성례를 통하여 저절로 중생한다는 믿음을 가리키는 "세례 중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짐 캐시디(Jim Cassidy) 박사에 의하면 칼빈은 세례가 효력이 있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종교 개혁자들에 따르면 교회에는 세 가지 은혜의 수단이 있었다. 말씀, 성례, 그리고 기도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수단은 한정된 의미에서 효력이 있다. 그 한정된 의미는 이것인데, 이 세 가지 수단은 오직 택함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받아들일 때에만 효력이 있다. 다시 말해, 칼빈에게 은혜의 수단과 그것을 받는 사람 사이에는 자동적인 'ex opere operato(사효론, 事效論)'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혜는 수단을 받는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자동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강조가 추가됨). 14)
실로 칼빈은 성례를 유효하게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출 때에만 성례를 행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택함을 받은 사람이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례를 행할 때에만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4권 14장 17항에서 택함을 받은 백성이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례를 행할 때에만 은혜가 임한다고 말한다.
성례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무작위로 주어지는 성령이 아닌, 주님께서 특별히 그분의 백성에게 주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은사도 함께 가져오시고, 성례를 위한 길을 열어 주시며, 성례가 열매를 맺게 하신다.15)
그리고 칼빈은 성례를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전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택함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가질 때에만 성례를 통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4권 14장 17항에서 이러한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고한 원칙으로 여겨야 한다. 즉,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하늘의 은혜의 보화를 공급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성례는 아무런 효력도 없고 유익도 없다(강조가 추가됨).16)
그리고 칼빈은 세례 의식은 저절로 사람을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어떤 잠재적인 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그는 기독교강요 4권 14장 17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례에 내재된 어떤 잠재적인 선[some latent virtue]이 있다거나, 성례가 본래 그 선에 의해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여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성례]은 그 자체로 어떤 은혜도 부여하지 않는다(강조가 추가됨).17)
결론
칼빈은 칭의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주어진다고 말했다. 반면에 육신을 죽이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 즉 성화 혹은 회개(칼빈이 선호하는 용어)는 평생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회심과 회개를 말할 때 칭의뿐 아니라 칭의의 결과인 성화를 포함시킨다. 따라서 칼빈이 점진적 구원(칭의)이라는 이단설을 가르쳤다는 클라우드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세례 의식은 그 자체로 세례를 받는 자에게 은혜를 부여할 수 있는 잠재적인 선이 없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이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받을 때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클라우드의 글은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분명히 밝힌 이와 같은 내용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칼빈은 “거짓복음이며 근본적이고 저주받아 마땅한 이단설”인 세례 중생과 점진적 구원(칭의)을 가르쳤다는 클라우드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된 것으로 비난과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이뿐 아니라 정동수는 이런 터무니없이 날조된 글들로 가득찬 “칼빈주의 비평”이라는 책을 출판해서 칼빈과 그의 교리를 악마화하고 칼빈을 ‘가장 명백한 이단자’로 규정한다. 정동수와 클라우드는 1611년 판 킹제임스 성경이 성경의 원본처럼 완전하고 무오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킹제임스 유일주의) 이단 교리를 옹호하면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들을 끊임없이 악마화하여 한국교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이단 교사들이다. 미국의 근본주의적 신학교인 디트로이트침례신학대학원의 윌리엄 콤스(William Combs)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들을 “완전하고 무오한 번역본을 주장하는 이 새로운 이단(this new heresy of a perfect, inerrant translation)”18)이라고 규정했다. 장로교는 칼빈의 가르침을 완전히 왜곡해서 칼빈을 ‘가장 명백한 이단자’로 공공연히 규정하고 있는 정동수를 이단성이 있는 자로 모호하게 규정하지 말고 이단으로 단호히 규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1) 클라우드(D. Cloud) 외 다수, 칼빈주의 비평, 이정원 외 다수 역 (인천: 그리스도 예수안에, 2007), 8.
2) “Calvin and Politics in Geneva,”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2, 1966. /https://www.christianitytoday.com/1966/09/calvin-and-politics-in-geneva/
3) 클라우드(D. Cloud) 외 다수, 칼빈주의 비평, 9.
4) 같은 책에서, 9.
5) 정동수가 그의 웹사이트에 게시했던 자료를 다음과 같은 필자의 방송 동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동수, 칼빈주의를 이단 교리로 지정한 자신의 글들이 폭로되자 즉시 삭제하여 숨겨 버렸다. https://www.youtube.com/live/2Pabg4QeLb0
6) 같은 책에서, 110.
7) David W. Cloud, “Calvinism Debate,” Way of Life literature, Nov, 243, 2024, Way of Life Literature,http://https://www.wayoflife.org/free_ebooks/the_calvinism_debate.php, 43.
8) 같은 책에서, 43.
9) BrianG.Hedges,“ADoubleGrace:JohnCalvinonJustificationandSanctification,”2007, https://www.brianghedges.com/2007/11/double-grace-john-calvin-on.html
10) JohnCalvin,“InstitutesoftheChristianReligion,”trans.HenryBeveridge,3.11.2.(Orlando:SignalmanPublishing,2009),KindleEdition.
11) Ibid., 3.2.8.
12) Ibid., 3.3.2.
13) David W. Cloud, “Calvinism Debate,” 110.
14) Jim Cassidy, “Calvin and Baptism: Baptismal Regeneration or the Duplex Loquendi Modus?,” 2016, https://www.reformation21.org/articles/calvin-and-baptism-baptismal-regeneration-or-the-duplex-loquendi-modus.php
15)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 14. 17.
16) Ibid.,4.14.17.
17) Ibid., 4. 14. 17.
18) William W. Combs, “ERRORS IN THE KING JAMES VERSION?” DBSJ 4 (Fall 1999): 151–64, http://chrome-extension://efaidnbmnnnibpcajpcglclefindmkaj/
https://dl.icdst.org/pdfs/files1/1896146b86eb926b28381424674c25bf.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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