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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조선대부고 조이산악회
 
 
 
카페 게시글
조이 산행후기 재경조대부고 조이산악회 제276차 신년 남산산행
정종수(15회) 추천 0 조회 508 24.01.18 22:31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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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1.19 05:23

    첫댓글
    조이산악회276차 신년산행이 "서울의 산 남산 이라네".

    아침 일찍 우리 조대부고 선후배 동문님을 만난다는 설레임속에 충무로역3번 출구에 도착했다.2024년도 새로 선출된 안형순회장님과 성용호사무총장님이 미리 나와 우리 선후배동문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다.신임 집행부가 꾸려지고 처음 있는 산행이라 "산행참가인원이 30명만 되어도 성공적이다" 라고 생각 했는데 무려 77명이 참여했다니 어느 학교 총동창회 행사만큼이나 큰 규모로 대성황을 이루웠다.

    이렇게 성황(盛況)을 이룬 것은 조대부고 선후배 동문님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의 발로이자 조이산악회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깊기 때문이리라!또한 이처럼 이전에 조이산악회를 이끌어 주신 차희준 회장님과 문병국사무총장님께서 이룩한 "조이산악회 모두가 가족같이 형님 동생처럼 여기는 대동단결로 중흥"을 이룬 빛나는 업적의 소산이다.

    집합시간을 앞두고 삼삼오오로 선후배동문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산행 행사때마다 사진을 촬영하여 주셨던 15회 정종수선배님께서 공원에 상주하시는 "문화해설사" 한 분을 모시고와 남산한옥마을의 역사와 오늘날 까지의 발전해왔던 역사의 발자취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 작성자 24.01.19 05:25

    남산 한옥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아래와같이 설명한다.

    1989년 남산골의 제모습 찾기 사업에 의해 조성한 마을로 수도방위사령부 부지를 인수하여, 서울특별시 지정 민속자료 한옥 5개 동을 이전 복원하고 전통정원으로 꾸몄다. 1998년 4월 18일에 개관하였다.한옥은 변형이 없는 순수한 전통가옥을 선정하였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데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를 본떠 복원하였다.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서울민속자료 24)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하였고, 관훈동 민씨 가옥(서울민속자료 18)은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을, 오위장 김춘영 가옥(서울민속자료 8)은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경복궁 중건시 도편수였던 이승업 가옥(서울민속자료 20)은 이승업이 1860년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

    남산한옥마을의 트징은 서울특별시 지역의 사대부 가옥부터 서민 가옥까지 당시의 생활방식을 한자리에 볼 수 있도록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은 가구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였으며, 전통공예 전시관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상품이 전시되어

  • 작성자 24.01.19 05:29

    있다. 마을 안의 남산골 전통정원은 남산의 산세를 살려 자연식생인 전통수종을 심었으며, 계곡을 만들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였고 정자, 연못 등을 복원 배치하여 전통양식의 정원으로 꾸몄다.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서울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오늘날의 시민생활과 서울특별시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문물 600점을 담은 캡슐을 지하 15m에 수장해 둔 타임캡슐광장이 있다.

    이 타임캡슐은 서울정도 1000년이 되는 해에 우리 후손들이 파헤쳐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각종 도구 용품을 공개하여 알아 보도록 한다는데 그때쯤 오늘 남산산행에 참여한 77명의 조이산악회 회원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백골이 진토되어 사라졌을 것을 생각하니 어찌 애닯다 하지 않으리오. 또한 이 자리는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고 한국을 통치하기 위해 일본통독부 산하 "한국주차헌병대(韓國駐箚憲兵隊)" 을 설치하여 운영했던 치욕의 역사 땅이다.

    정동준 동문님이 지휘하는 "몸풀기" 가 끝나고 이윽고 남산 정상을 향해 산행이 시작되었다. 올해 신년 산행을 가는데 서울 도심 한복판의 산! 남산이

  • 작성자 24.01.19 05:32

    올해 신년 산행을 가는데 서울 도심 한복판의 산! 남산이고 집결지가시내 중심부의 충무로역이라니 집행부에서 신년산행을 남산으로 정한 것도 깊은 의미가 있을 듯하다.충무로역에서 출발하는 산행이기에 서울의 충무로역의 역사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무로역은 왜 충무로 역인가?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고부산, 인천, 군산으로 물밀든 들어오는데 과거 지금의 명동 중국대사관있는 충무로2가에서 세종호텔에 이르기 까지 고개길이 질퍽 질퍽 질어서 "진고개"라고 불리운던 이 거리에 일본놈들이 집단거주하고 일본상가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그래서 일본놈들이 많이 거주하고였기에 진고개를 "일본의 근본이 되는 거리(혼마치. 本町혼마찌) 라고 거리 이름을 바꿨다.
    혼마치(本町)라는 지명은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군산에도 있다.1945년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되자 왜놈거리를 한국어로 바꾸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이곳 혼마치(本町) 지명의 일본냄새와 잔재을 없애기 위해 나온 것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와 충무로(忠武路) 명명해 지금의 충무로가 탄생한 것이다.

  • 작성자 24.01.19 05:36

    이충무공은 역사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 전장에서 전사하기까지 빛나는 전공을 세워 나라를 구하는 최고의 명장이다.혼마치(本町) 충무로로 바꿔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기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이다.조대부고의 조이산악회가 충무로역에서 2024년 1월 신년산행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역사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취지로 보인다.이윽고 조이산악회 푸른깃발을 앞세우고 산행이 시작되는데 오늘의 산행이 남산이다.

    남산은 애국가 3절에서도 불리우는"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의 그 남산이다.일제 초기만해도 남산에는 아름들리 소나무가 철갑을 두룬 듯 빽빽히 많았었는데 일제가 조선의 민족정신과 기상을 말살한다는 취지로 싸그리 벌채에 나섰다고 한다.

    남산(南山)은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 경계에 있는 산이다.높이265.2m.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 작성자 24.01.19 05:38

    남산은 예로 부터"목멱산(木覓山) 종남산(終南山) · 인경산(引慶山) · 열경산(列慶山) · 마뫼 등으로도 불렸으나, 주로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리웠다.조선태조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으로 삼았다.

    도성(都城)도 북악산 · 낙산 · 인왕산 · 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눈발이 휘날리는 남산등산로 남녀노소의 걷기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시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감을 알 수 있다.남산 허리쯤에 이르러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 잔치가 벌어졌다.시큼한 홍어회 무침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나니 기분이 한층 좋아지고 있다.중간 홍어회 잔치를 마무리하고 다시 남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남산 팔각정" 이 오늘 신년산행의 목적지이다.여러 동문들께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실 줄은 알고 있지만 남산팔각정의 변천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5분 설명에 나섰다.조선태조실록 기록 살펴보면 남산의 정상은 뾰쭉한데 산봉우리을 조금 깍아내리고 오늘의 팔각정 자리에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무악대사를 기리기 위해

  • 작성자 24.01.19 05:40

    1395년에 무악대사의 사당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국사당(國師堂)이다.나중에 국사당(國師堂)은 무악대사와 태조 이성계에 대해 제사를 지내고 세월이 흘러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도 매년 초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졌다.일본놈들이 기술한 "근대조선사" 기록에 의하면일본놈들이 조선을 삼키고 남산 중허리에 즈그들의 신을 모시는 "조선신궁"을 지금의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세운다.

    그런데 일본총독은 신성한 "조선신궁" 위 남산 정상에 있는국사당(國師堂)을 못마땅하게 여겨 1929년 국사당을 인왕산 기슭으로 옮기게 하고 그자리에 대형일장기를 게양대를 설치해 일본이 망해 일본으로 돌아갈때까지 일장기가 펄럭였다고 한다.이름하여 "국사당 파천(播遷)"이니 민족말살의 일환이다.

    나라가 망해도 더럽게 망했다.1945년 8.15해방을 맞이하여 한국정부는 1959년 일장기 게양대를 부시고 그 자리에 이승만 호를 본따 우남정이라는 정자를 자기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건립한다.

  • 작성자 24.01.19 05:43

    참 웃긴놈이다.이승만이 제정신이였다면 다시 그 자리에 국사당을 옮겨짓거나 치욕의 역사를 일깨우는 측면에서 "역사유적지" 건립해야 함이 옳다.어쨋든 독재자 이승만은 4.19에 의해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고 성질난 서울시민의 뜻에 따라 "우남정" 은 파괴되어 역사속으로 살아지고 다시 그자리에 종로 3.1공원내의 팔각정을 모델로 하여 오늘의 "남산팔각정" 이 탄생한 것이다.

    남산과 관련해 강의을 하자면 몇시간을 해도 부족하는데 남산봉수대의 역사를 살짝 설명하고 강의를 마무리했다.남산의 정상에 오르면 조선 시대 통신제도로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팔도강산5곳에서 봉화(烽火)가 이곳 남산에 연결되 있어 전국에서 띠ㅣ띄우는 봉화를 신호로 하여 지금의 광화문 앞에 자리한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조(兵曹) 연결되는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가 있다.

    지난날 통신 제도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봉수대를 갈음하여 남산 정상에는 이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N서울타워"가 세계를 향해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N서울타워"는탑 자체의 높이는 236.7m로 남산의 해발 고도 265.2m까지 합하면 501.9m가 된다.

  • 작성자 24.01.19 05:46

    국내외 관광객이 년1200만이 다녀간 관광명소로송신탑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세계타워연맹(WFGT)"에 가입되어있는데세계관광명소 500대 관광지로 알려저 밤낮으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남산 팔각정 관광을 끝으로 하산길에 나서는데 속절없이 겨울의 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기온이 급강하 해서 도로가 빙판이 되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아래쪽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19회 박찬선 선배님이 빙판길에 자빠지셨다고 하는데 내려와 보니 다행히 다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점심이 예약된 곳은 장충동 "뚱보할매집"으로 벌써 부터 3층이 꽉 찼다.이미 족발에 막걸리 소주 맥주가 돌아가는 조이산악회 향연(饗宴)이 시작됐다.조이산악회에서 11회동문이신 안태호선배님이 올해 82세인데 50대처럼 정정하시다.

    이 나이에도 밤일이 가능하시다니 부럽기 그지없다.안태호선배님의 소개되자 만장의 박수가 터져나왔다.11회에서 부터 차근 차근 아랫 기수로 참가자 전체를 일으키셔서 소개하는 회장과 사무총장이 인사 소개말이 바쁘다.많이 모인 깃수는 19회인데 박찬선선배님의 초청으로 무려11명으로 이번 모임에 최대 참가 인원이 참가하셨다.

  • 작성자 24.01.19 05:49

    아쉬운 것은 새로 오셨거나 오랫만에 나오신 선후배 말씀을 나눌 수 없는 점과 교가제창의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다음달 "몽촌토성산행" 시 오늘 못다한 선후배님의 말씀을 청해 듣고 싶고 부르지 못한 교가를 힘차게 제창하고 싶다 "막는 것 산이거든 무는곤 못가랴
    파도건 눈보라건 박차헤치다.

    끓은 땀 부어서 일일히 다진터 희망은 솟는다 조대부고...."갑진년 새해에 우리 조대부고인 모두가 건강하시고 행복과 행운이 충만하옵길 두손 모아 빌어본다.---------- 김경준 동문의 댓글에서 옮김

  • 24.01.19 16:22

    선배님 수고많으셨습니다. 미끄러워
    걷기도 힘드는데 사진 과 글까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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