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차황면 屛淵亭(병연정)답사를 마치고/안성환/23,05,28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여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산청을 다녀왔다, 여행 중 내내 비가 내렸지만, 천성이 비를 좋아하는 탓에 오히려 좋은 길 친구가 되어 주어 고마웠다. 도착한 곳은 산청 차황면 철수 마을이다. 마을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왼쪽 어깨에 메고 마을을 들어서는데 백구 한 마리가 온 이빨을 내밀고 나를 향에 짓기 시작한다. 마을이 흔들릴 정도로…. 녀석이 자기보다 덩치가 큰 개띠가 오니 영역확보로 기 싸움인 듯하여 굴러들어온 내가 자세를 낮추고 ‘메리메리’ 하며 이름을 불러 주었다. 영리한 녀석, 그때야 꼬리를 흔들며 답례해 주었다. 마을 뒤에는 해발 635m고지 정도의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지켜주고 있다고 한다. 봉우리 이름은 효렴봉이라고 한다. 효렴봉은 황매산 산줄기에 있는데 이 마을에 효자가 많았고 청백하게 생활 하였다고 하여 효렴봉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병연정으로 갔다.
병연정은 글자 그대로 연못을 앞에 두고 사방이 만고의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나는 40여 년 전 이곳을 한 번 찾은 적이 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아 다시 찾았다. 그때는 폭포수도 있었고 계곡의 맑은 물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리듬을 놓치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은 농업용수 부족으로 주변은 수몰되었고 저수지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병연정은 위풍당당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병연정 자리에 수계라는 모임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이다. 그렇게 오래된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경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모임 탄생 동기는 1920년 경남 산청군 차황면에 4개 마을 (철수, 평지, 전기 삼뜸)에서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수계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병연정의 탄생 동기이다. 정자는 저수지 상류 끝부분에 그 시절의 역사를 홀로 100년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 마을 청년들은 당시에 정한 수계정일(4월8일)을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 모인 장소는 병풍쏘 비륵위에 넓고 평평한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목적은 고을 유림들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이어가며, 친목을 도모하고 우정을 다지는 친목계였다고 한다. 그곳에 길고 둥그렇게 생긴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병연(屛淵)이란 글자를 새기고 병연계라고 칭했다고 한다….
계미년(1943년)에 회원들이 부역으로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와 둥근 기둥을 다듬어 삼간 두 줄 집을 짓고 지붕은 옛날 토와로 덮었으며 원장과 회원들이 냇가에서 돌을 지게에 등짐으로 가져와 둘레 약 100m 되는 것을 높이 2m 정도 쌓았으니 그때 회원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병연정이란 현판을 걸었고 수계를 하게 되었는데 한때는 회원이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 정자에 과재이교우의 기문과 박준섭의 칠곡명승기문, 그리고 이종뇌의 상량문이 걸려 있다. 잠시 정자에 앉아 벽에 걸어놓은 현판 글씨를 보며 옛 선비들의 쉼을 흉내 내어 보았다. 닮지 않은 흉내 이었겠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