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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목사 / Ph.D., D.Min. Christ Lives Ministries 대표. Talbot School of Theology (M. Div., D.Min.).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 D.)
요한일서 5장 7절의 내용에 있어서 개역과 킹제임스 성경은 매우 다르다. 개역은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라 했고, 킹제임스(흠정)역은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고 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 정동수는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 요한일서 5장 7절 가서 보시면 개역성경에 가서 보시면 요한일서 5장 7절이 있는 거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요한일서 5장 7절 개역성경에는 없는 거에요. 어떻게 돼있냐? 6절을 둘로 나누어서 6절의 앞부분은 6절에 집어넣고 6절의 뒷부분은 7절에 집어넣은 거지 원래 7절이 없는 거에요, 개역성경에는.1)
정동수의 말과 같이 개역은 요일 5:6의 일부 내용(“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을 6절에 두고, 나머지 내용(“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을 7절에 두었다. 이러한 배치 방법은 영국에서 출간된 개정역(Revised Version; 신약-1881년, 구약-1885년)의 방법과 동일하다.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개역 성경(국한문 혼용 판)
반면에 개역개정은 개역의 6절의 내용과 7절의 내용을 통합하여 6절(“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에 두었다. 그리고 개역개정은 개역의 8절(“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의 내용을 나누어 7절(“증언하는 이가 셋이니”)과 8절(“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에 두었다. 이러한 배치 방법은 영어 현대역들(NASB, NIV, ESV 등)의 방법과 동일하다.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개역개정 성경
따라서 개역이 6절의 내용을 6절과 7절로 분산시켰다는 정동수의 말은 맞지만, 7절이 원래 없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틀리다. 7절이 본래 없는 것이 아니라 개역과 개역개정은 7절을 다른 방법으로 편집한 것이다. 정동수의 말은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다.
개역은 요일 5:6의 뒷부분을 7절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개역 7절은 원래 없는 것이라는 정동수의 말은 문맥상 잘못된 말이다. 개역의 6절과 7절과 8절은 체계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개역의 7절의 내용은 문맥상 바르고 정확한 위치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6절의 후반부를 가져와 7절에 채워 넣든지, 아니면 8절의 앞부분을 가져와 7절에 채워 넣든지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 편집하든지 6절, 7절, 8절의 전체 내용은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그 세 구절의 내용은 뺄 것이 전혀 없는 필수적인 말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킹제임스 성경의 7절의 내용은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다. 문맥상 ‘셋의 증언’은 ‘물과 피와 성령의 증언’을 가리키는 것인데, 킹제임스 성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증언’을 말한다. 이것은 문맥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프레데릭 브루스(F. F. Bruce) 같은 학자들은 킹제임스 성경 7절의 내용은 후대의 필경사들이 위조하여 끼워 넣은 것으로 여긴다.2) 이런 이유 때문에 개역과 모든 영어 현대역들뿐 아니라 미국의 카톨릭 교회의 미사 중에 사용하도록 승인된 유일한 번역본인 New American Bible 및 카톨릭이 1979년에 공식적으로 승인한 Nova Vulgata(새 불가타) 라틴어 성경 등이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킹제임스 성경 5:7의 내용을 본문에서 배제해 버렸다.
정동수는 또한 개역 요일 5:7의 내용과 달리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은 삼위일체를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그는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시라고 증언하기 때문에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래 7절은 뭐에요?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해서 아버지 말씀 성령님이 어떻게 돼있어요? 이게 앞에가 대문자로 시작하니까 인격체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뭐라고 그랬어요?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자 삼위일체에 대해서 이것처럼 명백한 구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3)
그러나 로널드 사우어 교수(Ronald Sauer)의 말처럼 요일 5:6-12은 삼위일체가 아닌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해 증언하고 있다.4) 왜냐하면 6절은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증언하는데, 여기서 물은 그리스도의 세(침)례를 가리키고, 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며, 이 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언하기 때문이다.5) 이 구절들에서 개역의 번역은 오직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해서 말하는 반면, 킹제임스 성경은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은 문맥상 맞지 않는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의 7절의 내용이 위조되어 끼워 넣어진 것이라는 주장 즉, 원본에 없는 내용을 필경사들이 임의로 조작해서 7절의 내용을 추가한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을 강화시켜 준다.6)
전술한 바와 같이, 개역의 요일 5:7과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역은 여기서 물과 피와 성령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언하신다고 말한다. 반면에 킹제임스 성경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언하신다고 말하며, 그 세 분은 하나이시라는 말을 덧붙인다. 두 역본의 요일 5:7의 내용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정동수는 이 사실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개역의 번역자들이 개역의 요일 5:6의 뒷부분(“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을 개역의 요일 5:7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개역의 요일 5:7은 원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이 개역 요일 5:7의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을 일절 말하지 않은 채,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이 개역의 요일 5:7에 없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그는 왜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의 내용이 개역 5:7에 없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 그러면 예를 들어 요한일서 5장 7절 한 번 가서 인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이 하나이시다. 로마 카톨릭교 사본에 다 빠져 있습니다. 없습니다. 소수 사본에 없어요. 또 문제가 다수 사본에도 이 구절이 없는 그리스어 사본이 다수에요. 그러면 지금 다시 말씀드리면 대략 한 6천 개 정도 있는데 신약성경 사본이 그중에 1%는 소수 사본이고 그건 아주 없는 거고 그렇지요? 그러면 그 나머지 99% 중에 그래도 많은 부분이 이걸 갖고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요한일서 5장 7절을. 그렇지요? 근데 불행하게도 몇 개가 안돼요. 요한일서 5장 7절을 갖고 있는 그리스어 성경은 거의 없어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얘기하는 거에요. 왜 요한일서 5장 7절을 첨가했냐? 없는데. 그렇게 주장을 하는 거에요. 사본이 없는데, 몇 개 없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7)
정동수는 “로마 카톨릭 사본”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기만적인 용어이다. 사본학에는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수 사본을 악마화하기 위해서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고안해 낸 용어이다. 정동수는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8절의 앞부분을 포함하여 요한의 콤마로 불리움, 콤마는 짧은 절을 뜻함)의 내용이 소수 사본에 없을 뿐 아니라 다수 사본에도 거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킹제임스 성경의 요일 5:7-8(이후 요한의 콤마)이 불법적으로 첨가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브루스 박사에 의하면 요한의 콤마는 “본래의 그리스어 본문의 일부가 전혀 아니었고, 제롬의 불가타의 일부도 전혀 아니었다.8) 그것은 385년에 사망한 스페인의 라틴계의 작가이자 영지주의 이단자로 알려진 프리실리안(Pricillian)의 글에 처음 등장했고, 그 다음에 몇몇 고대 라틴 문헌에 등장했는데, 그 문헌은 나중에 불가타 본문으로 유입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요한의 콤마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사본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헬라어 신약성경의 초판(1516년)과 재판(1519년)에 그것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보수적인 카톨릭 학자들(Johannes Stunica, Edward Lee 등)이 요한의 콤마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강하게 비판하자 에라스무스는 그것이 포함된 헬라어 사본이 나타난다면 다음의 개정판에 그것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포함된 헬라어 사본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라틴어에서 번역된 것이 분명했다. 그 사본은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거의 모든 학자들은 그것을 위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그것이 진짜라고 확신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522년 판에 포함시켰다.
브루스 메쯔거(Bruce Metzger) 박사는 요한의 콤마가 “위조된 것이며 신약성경에 위치해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9) 그리고 그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 구절은 중세 시대[이 경우는 10세기 이후]의 8가지 사본 외에 모든 알려진 헬라어 사본 안에 없다. 이 8개의 사본은 라틴 불가타 성경의 후기 교정판에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8개의 사본 중 4개의 사본은, 여백에 쓰인 변종으로서 또한 그 사본에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서, 그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10)
정동수와 같은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도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헬라어 성경(Textus Receptus, 이후 TR)의 초판과 재판에 요한의 콤마를 포함하지 않았고, 카톨릭 교회의 압력에 의해서 마지 못해 세 번째 판에 끼워 넣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TR이 영감받아 오류가 없는 성경이라는 그들의 이단적인 주장을 무효화시킨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동수는 요한의 콤마를 킹제임스 성경에 포함시킨 사람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며, 그 결정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이 아닌 다른 문서들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한다.
킹제임스 성경 역자들은 라틴 벌게이트 라틴 성경도 참조하고 페시타도 참조하고 교부들의 증언도 참조하고 교리 책자 그 다음에 이 교독문 이런 것들을 참조해서 이 구절이 정말 그리스어 사본적으로는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이게 하기가 어렵지만 정말 그 구절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판단을 하고.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구절을 넣은 거에요. 그 안에. 아시겠지요? 그래서 이 성경이 완벽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겁니다.11)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요한의 콤마를 킹제임스 성경에 넣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개인적인 상상에 불과하다. 실제로 TR과 킹제임스 성경의 차이 모두를 하나하나 분석한 자료를 검토해 보면, 그 역자들은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본문인 TR을 존중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구절들 중 단 하나의 구절도 임의로 생략하지 않았다. 그들은 TR의 여러 가지 판본을 비교하며 구절의 표현을 바꾸기도 했고 단어를 생략하거나 첨가하기도 했지만, 어떤 구절을 누락시키지는 않았다. 그들이 요한의 콤마를 킹제임스 성경에 포함시킨 것은 TR의 본문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TR은 무시하고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여 요한의 콤마를 킹제임스 성경에 넣었다는 정동수의 말은 분명한 거짓말이다. 그들은 에라스무스가 TR에 끼워 넣은 요한의 콤마를 번역하여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둔 것이지, 킹제임스 성경에 그것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라틴 벌게이트 라틴 성경도 참조하고 페시타도 참조하고” 해서 요한의 콤마를 사도 요한의 참된 말로 판단했다는 정동수의 말도 사실과 다른 거짓된 추정일 뿐이다. 그 역자들이 요한의 콤마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의를 했을 개연성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정동수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참고한 자료들은 요한의 콤마에 대해 그들에게 상충되는 정보를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 교부들 중 요한의 콤마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쯔거에 의하면,
그 구절은 그리스 교부들 중 어느 누구도 인용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그 구절을 알았다면, 분명히 (사벨리우스파 및 아리우스파와의) 삼위일체 논쟁에서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 구절이 헬라어로 처음 등장한 것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의 (라틴어) 법령의 헬라어 판 안에서이다.13)
정동수는 그 번역자들이 교부들의 증언들을 참조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 교부들 중 아무도 요한의 콤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말하며,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말한다. 그의 말은 교활하고, 그의 글은 정직하지 않다.
그리고 초기의 라틴 불가타에는 요한의 콤마가 없다. 또한 시리아어 성경인 페시타(구약: 주전 2세기, 신약: 주후 5세기 초에 번역됨)에도 그 구절이 없다. 메쯔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구절은 라틴어를 제외한 모든 고대 번역본의 사본(시리아어, 콥트어, 아르메니아어, 에티오피아어, 아랍어, 슬라브어)에 없다. 또한 (a) 초기 형태의 고대 라틴어(터툴리안, 키프리안, 어거스틴)나 (b) 제롬이 발간한 불가타(풀덴시스 사본[서기 541-46년 필사]과 아미아티누스 사본[서기 716년 이전 필사])나 (c) 알퀸이 개정한 사본(발리셀리아누스 사본[9세기] 초판)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14)
정동수는 요한의 콤마가 초기의 라틴 불가타에는 없었고, 후기의 라틴 불가타에만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오직 라틴 교부들만이 그것을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리스와 라틴 교부들 모두가 그것을 언급한 것처럼 말한다. 그는 사실의 전부를 말하지 않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면서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을 호도한다. 그는 또한 페시타(시리아어 성경)에는 요한의 콤마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마치 그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메쯔거는 요한의 콤마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이 어떻게 요일 5:7-8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 구절이 서신서의 실제 본문의 일부로 인용된 가장 초기의 사례는 Liber Apologeticus(4장)라는 제목을 가진 4세기의 라틴어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스페인의 이단자 프리실리안(385년경 사망) 또는 그의 추종자인 인스탄티우스 주교의 저작으로 여겨진다. 그 짧은 절은 그 본래의 구절이 (세 증인, 즉 성령과 물과 피에 대한 언급을 통해)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때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해석은 처음에는 여백의 주석으로 쓰였다가 나중에 본문에 삽입되었을 수 있다. 5세기에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의 라틴 교부들이 [요한의] 서신서의 본문의 일부로 이 짧은 절[요한의 콤마]을 인용하였고, 6세기 이후로는 고대 라틴 성경과 불가타의 사본에서 그것이 점점 더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다양한 증언들에서 그 구절의 표현은 몇 가지 세부 사항에서 다르다. (요한일서의 라틴어 본문 안으로 삽입된 다른 예는 2.17; 4.3; 5.6, 그리고 20을 참조하라.)15)
메쯔거는 요한의 콤마가 여백의 주석으로 있다가 본문에 삽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정동수는 본문에 있던 그 구절이 이단에 의해 변개되었고, 결국에는 정통 신자들에 의해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에서 삭제되었다고 제멋대로 주장한다. 그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 그러면 왜 이게 없어지게 됐느냐. 그 얘길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릴께요. 2,3세기에 어떠한 이단이 나타났는가 하면 영지주의자라고 하는 이단이 나타났어요. 그 영지주의 이단 중에 하나가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이단인데 그게 뭐냐 하면 예수 유일주의라고 하는 그런 이단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유일주의는 뭐냐? 아버지도 예수요 아들도 예수요 성령님도 예수다. 이걸 주장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누가 만들었어요? 사벨리우스가 만들었는데, 이걸 만든 근거로 요한일서 5장 7절을 집어넣은 거에요. 요한일서 5장 7절을. 그렇죠? 이 세 분이 하나이니라. 이거를 뭐로 번역을 한 거에요? 세 분이 한 분이다. 한 분과 하나가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오는 거에요. 그렇게 되니까 정통적으로 성경을 믿는 이와 같은 그 사람들 가운데 이거는 아니다 이거는 그렇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고의로 이걸 또 빼는 그런 사람이 생겨난 거에요... 그걸 누가 카피하면 그 다음 것도 빠지죠, 맞습니까? 자 여러분 그 당시 파피루스에다가 이걸 카피했어요. 파피루스는 많이 가야 30년 40년 50년 가는 거지요. 그럼 그거 지나면 또 누가 카피할 것 아닙니까. 그럼 다음 번 카피할 때 그 구절 있어요 없어요. 또 카피하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계속해서 없어지는 거에요 이게. 맞습니까? 이런 식으로 해서 그리스어 사본들은 몇 개 남은 게 없는 거에요. 16)
정동수는 역사와 관련된 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적인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양태론자 사벨리우스를 영지주의자로 착각하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상상 속의 스토리를 완전한 사실로 전한다. 이것은 합리적인 추정을 기초로 한 학문적 이론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음모론 사기 소설에 불과하다. 이것은 정통 학자들의 합리적인 주장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사우어 교수의 주장은 이에 관한 좋은 예가 된다. 그는 요한의 콤마가 필사자에 의해 불법적으로 첨가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 가지 요인이 이러한 변형들[요한의 콤마]이 요한이 직접 기록하지 않은 필사자의 추가 내용임을 시사한다. 첫째, 그것[요한의 콤마]은 네 개의 후기의 열등한 헬라어 사본에서만 발견된다. 둘째, 그리스 교부들은 그것을 인용하지 않았는데, [만약 그것이 요한일서 5:7에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이단자들과 삼위일체 논쟁을 벌일 때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다. 셋째, 그것은 대부분의 고대 역본(헬라어 이외의 언어로 된 신약성경 사본들, 예를 들어 시리아어, 콥트어, 아르메니아어, 에티오피아어, 아랍어 등으로 쓰인 사본)에 없다. 그리고 넷째, 만약 진짜라면, 그것을 생략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17)
킹제임스 성경이 요한의 콤마를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의 헬라어 본문인 TR이 그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TR이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전통적인 카톨릭 신학자들이 에라스무스가 그것을 TR에 포함시키도록 강력히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 구절은 영지주의 이단자 프리실리안의 글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냈고 라틴 교회 안에서 유포되다가 라틴 성경과 불가타 성경 안으로 유입되었다. 카톨릭 교회 안의 전통주의자들은 그것을 끝까지 성경 안에 보존하기를 원했고, 결국 그것은 TR과 킹제임스 성경 안으로 유입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1979년 노바 불가타(새 불가타) 성경의 출간과 더불어 카톨릭은 마침내 요한의 콤마를 폐기 처분했다. 그러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은 그것을 끝까지 보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근거 없는 음모론을 만들어 그것에 원본 말씀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부질없이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통 학자들은 그것을 필경사가 불법적으로 첨가한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교회는 요한의 콤마가 생략된 개역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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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동수, “12. 성경론 – 왜 킹제임스 성경인가? 오디오 MP3 파일, 6:52-7:18.
2) F. F. Bruce, “The Books and the Parchments,” (Nashville: Kingsley Books, n.d.), chap. 16. Kindle.
3) 정동수, “12. 성경론,” 7:19-45.
4) Ronald Sauer, “1 John,” in the The Moody Bible Commentary, eds, Michael Rydelnik, Michael Vanlaningham (Chicago: Moody Publishers, 2014), Kindle.
5) Zane C. Hodges, “1 John,” in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eds,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Wheaton: Victor Books, 1983), 901.
6) Sauer, “1 John.”
7) 정동수, “12. 성경론,” 33:24-34:31.
8) Bruce, “The Books and the Parchments,” chap. 16.
9) Bruce Metzger,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8), 647-648.
10) 같은 책에서, 647.
11) 정동수, “12. 성경론,” 38:00-34.
12) Textus Receptus Bibles, “Variations Between the Textus Receptus and the King James Bible,”
https://textusreceptusbibles.com/Variations_Between_TR_and_KJV#:~:text=Mat%201:23.,Tyndale
13) Metzger, “A Textual Commentary on The Greek New Testament,” 648.
14) 같은 책에서, 648.
15) 같은 책에서, 648.
16) 같은 동영상에서, 34:32-37:08
17) Sauer, “1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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