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제280차 산행
일시 : 2024.05.11(토)
장소 : 청계산 (618m)
코스 : 원터골 - 매봉 - 매바위 - 옛골
지원 : 홍탁 막걸리 중식 음료수
찬조 : 김경준 차희준 각 10만원
회원동정사항.
前강경화 회장 아들결혼
일시 : 2024.06.01.12:00.
장소 : 다베네치아
(잠실역 8.9번출구 도보1분)
계좌 : 신한 3380 489 5998. 강경화.
성원에 감사드리며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붙임 : 22회 경영학박사 산행기.
20.24.05.11.
산악대장 34회 정 정 균
산악대장 34회 이 승 철
사무총장 40회 성용 호
회 장 30회 안 형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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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 1 : 조이산악회280차 청계산 산행기...
5월11일 조이산악회 청계산 산행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일찍 부터 서둘러 집결장소인 청계산입구역2번 출구에 도착했다.
벌써 부터 안형순회장님과 성용호 사무총장께서 나와 맞이해주셨다.겨우 한달 만에 만나고 있지만 모두들 반가워 정겨운 장면이 몇년만에 만나는 듯한 느낍이다.
먼저 나와 계신 선배님과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만나 손을 부여잡고 인사를 드리고 안기면서 조대부고 출신으로 자긍심을 느꼈다.
오늘의 산행지는 경기도의 산이자 서울의 산인 청계산 매봉이다.청계산(淸溪山)은 서울, 성남, 과천, 의왕에 펑퍼짐하게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618m 망경봉을 비롯하여 국사봉, 매봉, 이수봉, 옥녀봉 등 크고 작은 연봉이 남북으로 치마폭처럼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봉우리 꼭대기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망경봉을 제외하고는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인왕산 등 산세가 험한 서울의 여느 산과는 달리 산등성이가 대체로 완만한데다 산길이 거칠지 않아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오르는 산이다.청계산은 자연생태공원이자 서울시민과 과천, 성남시민들의 사랑받는 휴식처이다.산중에도 흥망성쇄가 있는 것 처럼 청계산(淸溪山)에서도
은둔과 도피, 전쟁과 평화가 점철되어 역사는 흐르고 있다.
청계산 망경봉은 고려왕조가 조선에 의해 망하자 고려 충신 조윤(趙胤)이 올라 개성(개성) 송악산을 바라보았다는 망경대가 있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은 마을을 흐르는 내가 맑아서 마을 이름이 막계동이라 했다.막계동 뒷산인 청계산도 같은 의미다.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망경대(望京臺)’인데, 고려말 충신인 조윤(趙胤)이 오른 이후 ‘만경(萬景)’에서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를 향한 조윤의 충성심을 지명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에 막계동이라는 법정동이 있다. 현재 서울대공원,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소재해 있는 곳이다.
막계동은 ‘맑내[莫溪]’라고 해서 마을에 흐르는 내가 맑아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막계동 뒷산이 청계산(淸溪山)인데, 청계산의 명칭도 막계동과 마찬가지로 ‘맑은 내’에서 유래한 것이다. 청계산에는 고려시대 때의 충신인 조윤(趙胤)이올랐다는 ‘망경대(望京臺)’가 소재해 있다.
만경(萬景)에서 망경(望京)으로 바뀐 망경대이다.망경(望京)은 조윤이 고려수도 개경을 못잊어바라보며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 해서 후대에 망경대(望京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경기도 부천시 막계동 뒷산을 지금은 ‘청계산’이라고 하지만, 청계산의 원래 이름은 ‘청룡산(靑龍山)’이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서 불려진 지명이다.
그리고 청계산의 주봉에 해당하는 석대(石臺) 이름이 바로 ‘망경대(望京臺)’다. 일반적으로 ‘망경봉’으로도 부른다.
경기도 성남시와 망경대는 원래 ‘만경(萬景)’에서 온 말이다. ‘눈 아래로 절경이 펼쳐친다.’는 의미다. 곧 산 아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누대를 흔히 ‘망경대’라 일컫는다. 현재 망경대 정상에는 "대한민국 육군의 통신소"가 위치하고 있어 출입금지 지역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초라한 복색을 하고 지팡이를 짚은 한 선비가 망경대에 오르면서 ‘망경(望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데, 그 초라한 복색의 선비가 바로 고려 말 충신 가운데 한 명이었던 ‘조윤(趙胤)’이다.
나라가 멸망해도 살아 있는 것이 개와 같다고 여긴 조윤(趙胤)’ ‘이집(李集)’, ‘원천석(元天錫)’, ‘길재(吉再)’ 등과 함께 고려 말을 대표하는 선비 가운데 한 명이다.
조선을 개국하는 데 공을 세웠던 조준(趙浚)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가 정몽주(鄭夢周)를 죽이고 조선을 건국하자, 많은 선비들은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각처로 숨어 버렸다. 조윤(趙胤)’도 세상을 등지고 숨어버린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조윤이 찾은 곳이 바로 청계산이었다.조선조에 이르러 성리학자 정여창도 난을 피해 청계산에 숨어들었다.
이수봉(二壽峰)은 조선 연산군 때 훈구학파 이극돈이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사림파를 대숙청하는 피비린내 나는 왕조 참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정여창 선생이 이곳에 숨어 목숨을 두 번이나 죽을 목숨을 모면하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조의제문(弔義帝文)이란?조선시대의 문신 김종직이 생전에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던 글이다.정여창도 문제의 조의제문과 김종직같이 사림파에 속해 있어 화를 불러일으켰다
.
정여창은 조선 전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훈구파가 일으킨 사화(士禍)로 죽었다.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 아버지는 함길도병마우후 육을(六乙)이다.(하동정씨 후손으로 유명한 정주영일가가 있고 조이산악회에는 미남자이자 희망탑 남성합창단 음악회원 정찬일동문이 있다)김굉필(金宏弼)·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에게서 배웠다.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5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490년(성종 21) 효행과 학식으로 천거되어 소격서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 예문관검열·세자시강원설서·안음현감 등을 역임했다그러니까 정여창의 학문이 높아 동국마마(동궁) 연산군을 가르치는 사부(師傅)였다1498년(연산군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도 경성으로 유배되어 1504년 죽었으니 연산군이 사부(師傅)정여창(鄭汝昌)을 죽인 것이다.그 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부관참시(剖棺斬屍)을 당했다.
부관참시(剖棺斬屍)란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을 극형에 처하는것으로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은 참형(慘刑)이다이렇듯 당대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鄭汝昌)선생은 난을 피해 청계산 이수봉 자락에서 숨어지내며 두번 살았고, 유배지 경성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해 한번 죽고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죽은자를 다시 꺼내 목을 쳐서 죽였으니 두번 죽은 셈이다.
갑자사화(甲子禍)는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보복과 연산군의 왕권 강화를 위해 연산군이 일으킨 대규모 숙청 사건이다.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추진하면서 성종때 폐비를 찬성한 훈구. 사림 원로세력이 대부분 숙청당했다.
정여창도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를 폐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해 그 죄를 물어 죽은 사람 관을 꺼내어 다시 목을 친 것이다.
부관참시는 중국의 형벌제도를 받아들인 것인데 잔인무도(殘忍無道)하기 그지없는 조선의 형벌제도이다매봉으로 가는 길에 충혼비(忠魂碑)가 서있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조국의 부름을 받고 창공의 꽃으로 피어 후배들의 가슴속에 길이 자리한 영령을 기리며...세계 최강의 특전부대 용사로 거듲나기 위한 공수기본250기 대원은 3주간의 지상훈련을 마치고 1982년6월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공군수송기(C-123)에 탑승하였다.
서울시 거여동으로 이동하던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은 공군수송기는 청계산 상공을 비행하던 중 추락하였고, 당시 수송기에 탑승하였다가 사망한 특전교육단 장병 및 교육기간중 순직한 영령53인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충혼비를 건립하였다.이들53인(특전교육단 교관5명) (교육생44명)(공군부대원4명)의 유해를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27번 묘역에 안치되었다."충혼비(忠魂碑) 앞을 지나며 조대부고17회 이근석 선배님의 제안으로 묵념을 올렸다.
조대부고17회 이근석선배님은 청춘시절 한국 해병대로 구성된 청룡부대 대원으로 월남참전 용사이자 윤석열정부가 은폐조작한 채상병특검 국회통과(채상병특검)를 위해 전역해병대원을 이끌고 가두시위를 주도해 국내 '오마이뉴스'와 '연합뉴스' 에서 보도된 바 있으며 미국CNN, 영국ABC뉴스,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보도돼 "국제적인 인물" 로 떠오른 자랑스런 조대부고인이다.
청계산 매봉을 향해 오르는데선두에 "조이산악회" 라는 푸른 깃발아래 조이산악회 형님과 아우들이 함께 뭉쳤다.아까시아가 만개(滿開)해서 산 전체가 아까시아 향기로 그윽하고 햇쌀에 빛나는 푸른 숲은 짙푸르게 했다.골짜기에 흘르는 물은 이름하여 청계(淸溪)의 이름과 같이 맑았다.숲을 지나고 오르막을 지나 고개를 다다르자산악회에서 준비한 "홍어무침회에 막걸리 한잔" 으로 성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다른 산악회에서 좀처럼볼 수 없는 정겨운 풍경이다.산에 오를 때에는 이름하여 입하(立夏)가 지나서였는지 조이산악회 회원들의 얼굴에 구슬 땀이 흘러 내리고 상의 속옷이 땀을 흠뻑 젖었다.산행에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듯이 "인생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은 부질없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고 흘러가는 구름과 같다 하니 비감(悲感)하여라!
동문 산악회의 즐거움은 같은 학교를 졸업 선후배 동문들이 산행을 통해 화합과 단결로 한마음이 되는데 있다.
맛있는 능이백숙과 찹밥을 배불리 먹고 안형순회장님의 치사와 건배제의가 있었다.6월 산행은 "역사문화탑방"이 있는데 6월 둘째주에 사당역 공영주차장에서 관광버스가 출발한다는 성용호사무총장의 공지를 끝으로 조이산악회280차 청계산 산행행사가 막을 내렸다.조이산악회 회원 여러분의 건승과 행복이 충만하옵길 빌어본다.
글쓴이는 조대부고22회 졸업생으로경영학박사, 문화관광해설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