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폭포(九天瀑布)와 구천계곡(九天溪谷)에 숨겨진 것들
▲ 구천계곡 숲길 구천폭포와 구천계곡 중/상류는 아카데미하우스 마을버스(강북01번) 종점에서 들어가면 된다. |
구천계곡은 북한산(삼각산) 3대 폭포의 하나인 구천폭포를 지닌 북한산 제일의 일품 계곡이다 . 그동안 구천폭포와 계곡, 울창한 숲, 구천은폭 바위글씨가 전부였으나 2018년 '한국산서회' 에서 구천계곡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늙은 흔적들을 다량으로 캐내 속세에 내놓았다. 바로 송 계별업의 흔적과 사릉 석물 채석장터 흔적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이곳에 숨겨진 역사가 흔쾌히 드러났으며, 그로 인해 구천폭포와 계곡은 새 롭게 재평가를 받았다. 나도 이곳을 여러 번 찾았으나 그들의 등장에 너무나 익은 이들 현장 이 새롭게 다가온다. |
▲ 구천계곡 숲길 초입에 있는 문인석(文人石) |
키 작은 늙은 문인석이 홀을 굳게 쥐어들고 있다. 이곳은 한양도성 밖 10리 안쪽 지역이라 무 덤을 쓸 수 없는 구역이니 이 주변에 조선시대 무덤은 사실상 없으며, 아마도 성밖 10리 바깥 에서 옮겨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흔쾌히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고된 세월에 참 많이도 울 었는지 얼굴과 모자, 입이 거의 지워져 입을 뗄 수가 없다. |
▲ 부석금표(浮石禁標) 바위글씨를 품은 바위 |
구천폭포와 계곡이 있는 곳을 조계동(曹溪洞)이라 불렸는데, 영조(英祖) 때 활동했던 김이만( 金履萬, 1683~1758)은 구천폭포를 두고 '물줄기는 비단을 걸쳐놓은 듯 하고 우렁찬 소리는 천 둥이 몰아치는 듯하며, 포말은 싸락눈이 흩뿌리는 듯하다' 극찬했다.
자고로 이런 경승지는 왕족과 사대부, 선비들이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 법이라 서울 근교 경 승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구천폭포는 그들의 마음을 속절없이 앗아갔으며, 동방의 여산폭포( (驪山瀑布)란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수도폭포'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
인조(仁祖)의 3번째 아들인 인평대군 이요(麟坪大君 李㴭, 1622~1658)는 아예 구천폭포 주변 에 별서(別墅)까지 닦아 머물렀는데, 1646년에 별서를 만들어 조계동별업(別業)이라 했으며, 자신의 호인 송계(松溪)를 따서 송계별업(松溪別業)이라 하기도 했다. 송계별업은 계곡을 중심으로 보허각(步虛閣), 영휴당(永休堂) 등의 누대(樓臺)가 있었고, 비 홍교<飛虹橋, 비홍지교(飛虹之橋)>란 홍예식 돌다리까지 두어 운치를 크게 돋구었다. 그리고 폭포와 계곡 벼랑에는 구천은폭, 송계별업, 창벽(蒼壁), 한담(寒潭) 바위글씨까지 지니는 등 그 시절 꽤나 잘나갔던 왕족의 고급 별서였다.
인평대군은 6남2녀를 두었는데, 3남인 복창군 이정(福昌君 李楨, 1641~1681년)과 5남인 복선 군 이남(福善君 李柟, 1647~1680), 6남으로 인평대군의 동생인 용성대군 이곤(龍城大君 李滾 , 1624~1629)의 양자로 들어간 복평군 이연(福平君 李棩, 1648~1700)이 남인(南人) 패거리들 과 어울려 지내며 정치에 관여했다. 그러다 보니 남인들은 송계별업을 자주 찾아 이곳의 풍류 를 즐기면서 인평대군 아들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러다가 1680년 서인(西人) 패거리가 남인을 대거 때려잡은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크게 털 려 복창군과 복선군은 사사(賜死)되고 복평군은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이후 송계별업은 역적의 별서라고 해서 버려지게 되었고 숙종(肅宗)이 사릉(思陵) 등 왕릉에 쓰이는 돌을 조달하던 부석소(浮石所)로 이곳을 정하면서 파괴되었다. 하여 사릉을 손질하던 1698~1699년이나 그 이후에 밀어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이 부석소가 된 것은 돌이 굳고 강했기 때문에 왕릉 석물에 적합하다고 이유를 대고 있으 나 실상은 인평대군의 아들들이 남인과 교류하여 역모를 모의하던 곳이라 하여 그 현장을 철 저히 부시고 깎아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듯 싶다. |
▲ 부석금표 바위글씨(서울 지방기념물)의 위엄 |
아카데미하우스 종점에서 구천계곡 숲길을 조금 들어서면 길 옆 바위에 부석금표 4자가 살짝 깃들여져 있다. 바위 주변에 보호난간을 두르고 안내문을 세워서 찾기는 매우 쉬운데, 그 역 시 이 바위에 계속 맴돌고 있었으나 왜정 이후 잊혀진 것을 2018년에 발견되었다. 저렇게 글 씨가 뚜렷함에도 100년 넘게 속인(俗人)들의 망막을 유린하였으니 진정한 숨바꼭질의 달인이 다.
이곳은 왕실에서 쓸 돌을 캐는 곳이라 백성들의 출입과 나무 벌채. 돌 채석을 금하고자 구천 폭포로 가는 길목 바위에 돌을 캐지 말라는 명령을 담은 '부석금표' 4자를 새겼다. 비석을 세 우지 않고 기존에 있는 바위 피부에 글씨를 새겼는데, 언제 처음 새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채석이 처음 이루어진 1626년 이후로 여겨진다. 즉 인평대군 별서 이전에 왕실에서 지정한 채 석 장소로 쓰였던 것이다. 그걸 인평대군이 접수해서 별서를 세웠으니 그의 위엄이 실로 알만 하다. 특히 단종(端宗)의 왕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의 능인 사릉을 만들 때 여기서 돌을 집중 적으로 캐어갔는데, 그 관련 흔적으로 이곳과 구천폭포에 있는 사릉부석감역필기, 금표(禁標) 바위글씨가 있다. 이들 모두 바위에 작게 새겨져 있다. 이들은 조선 때 유일하게 밝혀진 왕릉 채석장으로 그 가치가 있어 2019년 8월에 '사릉 석물 채석장터'란 이름으로 서울 지방기념물 로 지정되었는데, 숨바꼭질의 정도가 심한 금표를 빼고 모두 찾았다. 그리고 북한산의 유일한 왕실 별서 유적인 송계별업의 흔적으로는 구천은폭, 송계별업 바위글 씨, 영휴당터로 여겨지는 건물터 1곳이 있는데, 이들은 '송계별업터'란 이름으로 서울 문화유 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들은 숨바꼭질 고난이도 급의 송계별업 바위글씨만 빼고 모두 찾았다. |
▲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천계곡 (구천폭포 하단 밑)
▲ 구천폭포 하단 |
하얀 피부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잘생긴 구천폭포의 하단 폭포, 저것을 구천폭포의 전부로 보 고 지나치기 쉬우나 저것은 구천폭포의 극히 일부이자 하단 폭포에 불과하다. 구천폭포의 중 심은 저 위로 더 올라가야 나온다. 그러니 폭포의 눈속임에 속지 말자. |
| ◀ 구천폭포 하단 밑 건물터 작은 건물터로 보이는 평평한 터와 석축이 있 어 늙은 티가 조금 느껴지나 송계별업의 흔적 은 아니라고 한다. |
▲ 구천폭포로 오르면서 바라본 천하 ①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지역과 수락산, 불암산, 그리고 멀리 남양주 산줄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 구천폭포로 오르면서 바라본 천하 ② 소나무 사이로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 수락산, 불암산이 바라보인다. |
구천폭포 상단과 중단 폭포 중심부와 하단폭포 윗쪽은 모두 금줄이 둘러져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하여 폭포 중심부로 가는 길도 은근히 까다로우며 이정표도 없다. 바로 그곳에 구천은 폭과 송계별업, 사릉부석감석필기 바위글씨가 숨겨져 있으니 그들을 다 찾아야 술래 신세를 완전히 면하게 된다. 통제된 구천폭포의 중심부로 가려면 일단 바위가 우거진 계곡 남쪽 산길을 올라가야 된다. 그 길은 조금 각박한 암릉 구간으로 진달래능선과 북한산성 대동문(大東門)으로 이어지는데, 암 릉 중간중간에 구천폭포로 인도하는 듯한 길이 있으니 잘 찾아야 된다. 허나 이정표도 없고 모두 금줄이 둘러져 찾기는 쉽지가 않다. 금줄은 무조건 넘어야 폭포 중심부로 접근할 수 있 으며, 눈썰미가 있다면 길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벼랑이 꽤 깊고 경 사가 급하니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
▲ 절경을 그리며 흘러가는 구천계곡 (구천폭포 중단폭포) 바깥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숨겨진 비경이다. 인평대군이 이곳 풍경에 반해 별서를 짓고 그만의 공간으로 혼자 누렸으니 욕심도 참 크다. |
구천폭포 중심부는 해발 200~250m 고지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도도하게 걸려있다. 폭포는 상/ 중/하단(넓게 나누면 4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과 중단 등 폭포 중심부는 금줄을 넘어 길인 듯 아닌 듯한 벼랑 샛길을 수풀을 비집고 내려가야 된다. 접근성은 그야말로 꽝이다. 하지만 경험 많은 산꾼들은 접근성이 좋지 못한 계곡 중심부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계곡을 발을 담군다. 나도 예전에 그랬었지~ 허나 이날은 평일이고 시간도 18시 직 전이었기 때문에 폭포 중심부에는 인적이 없었다. |
▲ 거대한 암벽 병풍, 구천폭포 상단폭포 |
구천폭포 상단은 구천폭포의 진정한 위엄과 매력을 패기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저 폭포의 아 랫도리만 보고 그것이 구천폭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울 부도심이나 끝자락에 들어와 서울 전부를 봤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이다. 폭포는 자신의 준수한 모습을 천하에 보이기 싫어서 아랫폭포를 내세워 구천폭포의 전부처럼 얄미운 눈속임을 한 것이다.
동쪽을 향해 하얀 비단을 늘어트린 듯 장엄한 모습의 폭포 상단은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나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윗도리 중간에서 방향을 꺾어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위엄 돋게 쏟 아진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바위와 숲이 죄다 흔들릴 정도이며, 멋모르고 놀러온 귀신 도 놀라서 정신줄을 놓을 정도이다. 폭포의 높이는 대략 25m 정도로 상/중/하단을 모두 합치 면 60m 정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