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지성과 행복한 가슴으로, 비판적이면서도 영적으로(리처드 로어, 월터 브루그만)'.
신앙의 선배들이 한결같이 도달한 '건강한 신앙'에 관한 문장이다.
한국교회의 신앙은 둘 사이에 서있지 못하고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는 것 같다.
가슴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머리가 없고, 머리로 믿는 이들에게는 가슴이 없다.
둘 다 죽은 믿음이다.
둘 다 공허하므로 극단으로 치닫는다.
무신론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사이비 이단에 빠지거나, 소위 전통종교에 속해는 있겠지만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건강한 신앙이란, 이성을 초월하지만 이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건강한 신앙이란, 이성을 존중하지만 가슴 뜨거운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서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겁거나 미직지근하거나, 안타깝게도 '너무'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점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사이의 신앙이 아니라, 엉거주춤한 신앙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앙과 삶의 괴리가 생기고, 신앙 좋다고 하면서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불의한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그런 류에 대한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터이니 교회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는 그저 축복이나 해주라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비판하면 그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이제 설교자들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며 성서를 취사선택하고, 가미하여 말씀을 왜곡한다. 의도적으로 어느 한 쪽은 눈 감아버리거나, 아예 설교자 자신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머리가 되었든 가슴이 되었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고 괴기한 사설을 전하는 것이다.
소위 설교를 잘한다는 것이 언변이 좋다는 것과 동일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재해석되어 전해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다 갖춘 경우는 드물고 희귀하다. 그러나 간혹 별처럼 빛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을 통해서 아예 썩지는 않고 위태위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들도 명맥만 이어갈 뿐이다....(이어서 정리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