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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예 2021 여름호 권두에세이>
더러운 생선과 더 더러운 생선
홍성란
나는 오열했다. 입을 막고 울었다. 작은 배들이 몰아가는 대로 인간들이 지켜보며 기다리는 연안으로 몰려드는 고래들. 장송곡을 배경으로 고래들의 마지막 울음이 아련히 번졌다. 모골송연毛骨悚然. 연안은 피바다였다. 솟구친 고래들의 피가 인간들의 몸으로 튀어 흘렀다. 비 내리는 핏빛 흐반나순드 연안에 쪼그려 앉은 알리. 알리는 베인 상처가 깊은 임신한 고래 사체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알리 타브리지Ali Tabrizi는 ‘바다Sea에 얽힌 음모Conspiracy’라는 뜻을 가진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를 만든 감독이다. 「씨스피라시」는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수산업계와 시민운동의 자본주의적 이면을 집중 조명’하면서 메시지에 어울리도록 인터뷰 내용을 편집, 과장했고 인용한 통계 자료에도 오류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2048년이든 2079년이든 해양동물은 멸종하고 바다는 텅 비게 된다는 것. 그러니 상업적 어업을 금지하고 해양동물을 먹지 말라는 것. 한마디로, 바다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길은 바다를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둬야 한다는 게 영화의 메시지다.
그럴 수 있을까. 바다는 바다대로 살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어업의 산업화로 대량 포획되는 물고기는 연간 2조7천억 마리. 대략 1분에 5백만 마리가 도살된다. 어업이 전방위적 ‘부패의 그물’과 연루되어 있음을 폭로한 「씨스피라시」는 나의 무지無知를 일깨웠다. 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섬 이야기에서 ‘바다는 플라스틱 수프’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쓰레기섬의 46%가 플라스틱 어망이며 환경단체에서 문제시하는 플라스틱 빨대는 0.03%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상업적 어업의 어망 폐기물. 어망에 갇혀 죽은 바다거북이나 플라스틱 폐기물을 뱃속에 담고 죽은 바다 동물 사진이 영상매체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어망을 쓰지 않는 ‘가두리양식Cage Culture’이 대안인가.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공장식 연어양식산업의 폐해를 폭로한다. 연어들이 배설하는 유기성 폐기물은 스코틀랜드의 연간 생활폐수와 맞먹는다. 연어 1kg 생산을 위해 야생어류 4kg을 먹이로 준다니 어처구니없다. 살충제 남용, 감염에 따른 사체처리, 동물복지법 위반 같은 문제들은 우리나라 가두리양식산업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내가 더 경악한 것은 연어 빛깔 문제. 연어 살코기는 연한 주황인 줄 알았다. 아니다. 살코기는 회색이다. ‘컬러 차트’에서 색상을 선택하고 연어 먹이에 화학 색소를 첨가하여 신선해 보이도록 살코기 색을 연출한다. 지금까지 스코틀랜드 연어양식이 공급하는 ‘핑크로 물들인 회색 연어고기’를 먹어온 것이다. 음.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그러나 연어를 만나는 일은 마트에서 라면 만나기나 다를 게 없다. 어느 매장이든 식품부 코너에 가면 양파 슬라이스를 얹은 연어초밥이나 훈제연어를 만날 수 있다.
영화 후반부는 납치 노역으로 이루어지는 태국의 해산물산업을 조명한다. 태국산 새우 대부분은 선상 노예노동으로 식탁에 오른다. 10년 2개월 2일이라는 세월을 구체적으로 말한 그 ‘부패의 희생양’은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폭로했다. 노예들은 바다에 던져져 죽거나 냉동창고에 방치되기도 한다. 해산물 소비자들은 오직 식탁에 오른 새우에만 관심이 있다고 탈출 노예들은 비판했다. 그들은 해산물산업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인터뷰 도중 알리는 연루된 경찰들이 출동한다는 정보에 긴급 철수해야만 했다. “죽는 게 두려우면 집으로 돌아가세요.” 탈출 노예가 조언했다. 어업 당국과 경찰이 결탁하고 심지어 후원받는 환경단체도 연루되어 있다. ‘부패의 그물’은 세계최대 참치산업을 주도하는 일본이나 상어지느러미의 천국 홍콩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사실은 알리를 압도했고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손 놓고 있던 알리가 마지막 여행에 나섰다. 페로제도. 북대서양 작은 군도 가운데 하나인 흐반나순드는 ‘그린드’라는 포경방식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지속 가능한 고래잡이’로 알려진 그린드가 바로, 작은 선단이 무리 지어 고래들을 연안으로 몰아넣고 인간의 손으로 직접 도살하는 일이었다. 상처가 벌어진 고래 사체들과 핏빛 바다. 나를 오열하게 한 장면이다.
물고기 떼가 한 마리처럼 움직이는 것은 측선으로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리 지어 사회생활을 하는 물고기도 호기심과 걱정, 고통과 공포를 느낀다는데 아! 함께 놀던 동료가 수조 밖에서 몸통이 잘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물고기들. 내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동안 흐반나순드의 고래잡이는 잔인성 때문에 스크린이 자주 블랙아웃 되었다. 잔인하게 희생되는 게 고래뿐인가. 선상에서 지느러미가 잘린 채 바다에 던져지는 상어 몸통들. ‘인간은 지금 바다와 전쟁 중’이다. 산업화된 어업을 지적하며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면 다 잃을 거라고 영화는 경고한다. 그렇다. 이 행성의 바다가 죽으면 인류는 살 수 없다. 해양생물학자로서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속 탐험가로 활동한 실비아 얼Sylvia Earle은 상업적 어업은 사라진다 경고했다. 2048년이든 2079년이든. 잡을 고기가 없으니까. 알리는 묻는다. 해산물을 먹지 않을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미세플라스틱이든 방사능 오염물질이든 온갖 산업오염물질은 바다에 축적된다. 당연히 바다로 흘러들어온 중금속, 수은, 다이옥신 같은 유독성 물질이 해양동물에게 축적된다. 깨끗한 생선은 없다. 더러운 생선과 더 더러운 생선이 있을 뿐이다.
나도 미세플라스틱을 매일 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한 욕망으로 해친 자연의 상처와 그것이 인간에 미치는 폐해는 어디까지인가. 산업화된 어업에 얽힌 부패의 그물. 그 부패의 그물을 잘라내지 못하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 실비아 얼의 예언처럼 이대로 가면 바다가 텅 빌 것이다. 지구의 미래도 없다. 그저 소박한 대안을 생각해 본다. 나 한 사람부터 실천해야지. 알리와 같이 바닷가 쓰레기라도 주워야지. 플라스틱류 사용을 더 줄이고 재활용할 수 있게 잘 버리는 ‘버리스타’가 돼야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마땅히 채소와 과일, 곡류와 해초 아닌가. 오계五戒라는 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불살생不殺生의 의미가 아니어도 육식을 즐기는 일은 금해야 하지 않을까. 육식을 즐기면 인간의 영적 파장도 흐려진다니, 부처님께서 생전에 사람들을 만나면 맨 먼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물으신 뜻을 알 것도 같다. 꼭 필요한 것은 취하되 즐거움을 위해 심심풀이로 살생해서는 안 되겠지. 생명존중의 마음보다 귀한 것은 없으니까. 절집의 정갈하고 풋풋한 밥상을 생각한다. 이제 혼자서 회전초밥 코너에 앉을 이유는 없다.
홍성란∥ 1989년 중앙시조백일장(경복궁 근정전) 장원으로 등단. 시집『춤』, 『바람의 머리카락』, 『칭찬 인형』 등, 시선집 『애인 있어요』, 『소풍』 등이 있고, 푸른사상 학술총서 67 『시조시학의 현대적 탐구』가 있음. 중앙시조대상신인상, 대산문화재단창작기금,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부문), 이영도시조문학상, 조운문학상 등 수상.
srorchid@hanmail.net
연구실: 06295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30길 10. 2006호(도곡동, 현대비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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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뿌리는 왜 하필
살생에 박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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