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닭 임종기
김 만 년
농장 마당에 오종종하게 서있는 닭들을 보노라니 오래 전 닭에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이 생각난다. 업무 차 경원선 민통선 부근의 신탄리란 마을에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의 태양 아래 감자꽃이며 옥수수수염이 한가롭게 일렁이는 시골마을 어귀에서 황금빛 찬란한 한 무리의 닭들을 발견했다. 순간 그 닭들이 무척 탐이 나서 노인 분에게 닭 두 마리만 파시라고 사정한 끝에 삼만 원을 드리고 알 잘 낳는 씨암탉과 수탉 한 쌍을 샀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닭을 라면박스에 넣어서 인천 집까지 무사히 들고 왔다.
아내가 웬 닭이냐고 묻길래,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기다려봐, 내일부터는 싱싱한 달걀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을 테니까”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즉시 막냇동생과 함께 닭장 짓는 일에 착수했다. 툴툴거리는 동생한테 ‘철망 사와라, 못 사와라, 톱 사와라’ 하면서 학교 공사장에 버려진 목재를 주워다 밤늦도록 닭장을 지었다. 시렁을 튼튼하게 고정시키고 아이들 헌옷을 찢어서 달걀 놓을 받침대를 만들고, 플라스틱 그릇에 구멍을 뚫어서 닭 모이통을 다는 것으로 대공사는 끝이 났다. 닭장을 빌라 뒤쪽 베란다로 옮기고 흐뭇한 마음으로 쌀, 콩, 상추 등을 잔뜩 주고는 하얀 달걀을 꿈꾸며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고요한 도시의 새벽을 뒤흔드는 천지개벽의 소리가 있었으니, ‘꼬~끼오, 꼬~끼오’ 하는 장닭의 우렁찬 울음소리, 아뿔싸! 나는 반사적으로 후다닥 일어나 엉겁결에 다림질 분무기를 들고 가서 닭 머리를 향해서 물을 마구 뿌리며 “쉿! 조용해, 사람들 다 깬단 말이야!” 하면서 협박과 회유로 장닭을 일단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다시 잠자리에 든 지 십여 분쯤 흘렀을까? 이놈의 닭이 또다시 ‘꼬~끼오, 꼬꼬~끼오’ 하며 십 초 간격으로 소프라노 나팔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이웃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황당했던 나머지 단숨에 달려가서 닭 벼슬과 울대를 쿡쿡 쥐어박으며, “야, 너 반항하니? 쉿! 조용히 해 제발!” 하면서 협박을 했지만 닭이 ‘꼬~꼬댁, 꼭 꼭’ 소리를 내면서 오히려 닭 벼슬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입은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이사할 때 쓰던 누런 테이프를 찾아서 결국 장닭의 뾰족한 입을 둘둘 감아서 봉해버렸다. 아내는 닭이 뭘 안다고 때리느냐며 키득거렸고 남동생은 “거봐, 형” 하며 무척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젠 안심이야. 지까짓 게 입을 봉해놓았는데 별수 있겠어”라며 나는 달아난 새벽잠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질긴 테이프를 어떻게 풀었는지, 닭이 또, ‘꼬~끼오, 꼬~끼오’ 하며 이제는 아예 목 놓아 통곡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주여, 용서하소서’를 연발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고야 말았다. 그 순간 동생과 아내의 질시를 감수하며 밤새도록 지은 닭장이랑 아침이면 먹을 수 있겠다던 싱싱한 달걀의 꿈도 함께 날아가버렸다. 다음 날 그 가련한 장닭은 찜통 속에 푹, 고아진 채로 우리 가족의 식탁 위에 올려졌고 삼복더위를 장닭으로 포식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은일이 엄마 있수?”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문을 열어보니 이 층 집 아주머니였다. 집사람은 “마침 잘 왔어요” 하면서 닭죽 한 그릇을 떠주며, “어젯밤에 닭 우는 소리 땜에 잠 설쳤죠?” 하고 묻는데,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닭다리 긁는 소리인가. 그 이 층 집 아줌마 왈, “어떻게 알았어요? 그놈의 꼬끼오 시계가 저번부터 말썽이더니만, 어젯밤엔 하도 울어 싸서 그만 내동댕이치고 말았지.”
“예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린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만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결국 내가 일 층에서 장닭과 한바탕 새벽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이 층 아주머니는 여름밤 환청증세까지 겹쳤던지 애꿎은 꼬끼오 시계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서 진짜 닭이 우는 소리를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여하튼 그해 여름밤 장닭과의 전쟁을 통해서 닭 모가지를 비틀어보니 참말로 새벽이 오긴 왔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가족에게 ‘꼬끼오 아빠’라는 놀림을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지만, 지금도 복날이 오면 ‘복날 닭 패듯이’ 패준 그 여름밤의 닭 이야기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늦었지만 그 여름밤의 장닭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에세이스트』 2022. 10월호
첫댓글 보시 운명이었군요.나무관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