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학의 현대적 탐구』
출판기념 송년회
2024년 12월 16일 오후 4시
충무로 푸른사상사 서울사무소
아시아미디어타워 502호 충무로역 6번 출구 100M 전방
홍성란시조아카데미
푸른사상 학술총서 66
시조시학의 현대적 탐구
책머리에
이 책은 지난 삼십년간 창작자로서, 연구자로서 고뇌해 온 산물이다. 아직도 시조 율격론은 일제강점기의 자수율적 파악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는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거푸집(型)에 넣듯 글자 수를 맞추어 써야 한다는 오해가 있다. 정말 글자 수만 맞춰 쓰면 되는가. 도대체 시상詩想을 자유롭게 펼칠 수는 있는가. 그러다보니, 시조時調는 있는데 시詩는 없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시조란 무엇인가. 나는 박사과정 이후 고시조와 현대시조 텍스트를 바탕으로 율격 연구와 분석에 집중했다. 잠시 성균관대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시조는 다만 글자 수를 맞추어 쓰면 되는 정형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학생들도 고전古典이 된 황진이의 「어져 내 일이야」나 이호우의 현대시조 「하河」와 같이 자수율에 부합하지 않는 텍스트가 많다는 데서, 시조율격이 자수율만이 아님을 지적했다. 학생들은 또 자수율적 해석이 들어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시조가 글자 수에 매이지 않고 일상의 말을 담아 유연하게 변주해 나가는 것을 특징으로 삼기 때문이며, 이는 첨가어라는 우리말의 언어학적 구조에 기인한다고 했다. 자수율과 같은 종래 이론은 다양한 개별 작품의 변주를 틀에 담는 데 실패했고, 시조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퍼뜨리는 데 일조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통쾌했다. 시조는 3장의 ‘시노래’였다는 데서 마디와 마디가 만나 동기를 이루고 동기와 동기가 만나 작은악절을 이루듯, 음표(음절=1mora)와 쉼표(장음=1mora, 정음=1mora)가 모여 각 마디의 음량을 채우듯, 눈에 보이는 글자의 음량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음과 정음이 모여 네 마디의 음량을 채운다는 음량률의 실상까지 이해한 학생들이 고마웠다. (중략)
이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학생들은 많은 시조가 “왜! ‘3 4 3 4’라는 자수율이 적용되지 않는지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에서 시조의 형식적 유연성을 알아보기보다는 “그냥 외우고 마는 식으로 시조 공부를 마쳤고, 그래서 시조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하이쿠에 비해 그 구성이나 유연함이 월등한 시조가 “정작 우리나라에서도 찬밥 신세인 것은 장르의 본질을 무시한 시조교육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비이성적인 시조 교육을 개선하고 대중에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현대시조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다. 문제는 시조 교육에 있다. 학교 교육도 그렇고 학교 밖의 교육도 시조라는 정형양식이 가진 본질적 이해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 (중략)
나는 백수 정완영 시인이 설파한 ‘유流 곡曲 절 節 해解’의 시조관時調觀을 이 시조 3장의 형식미학으로 해명하였다(「단시조의 미학」). 한시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다면 시조에는 유곡절해流曲節解가 있다.
이 책이 문학적 형상화를 방해하는 자수율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현대시조가 감각을 혁신하는 상상력과 시어 운용으로, 유연한 율동으로 도식성을 벗어난 평이平易하고 자연스러운 시詩로서 독자 대중이 애호하는 한국의 정형시가 되기를 바란다. 시조는 있는데 시는 없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올 수 없기를 바란다. 강호제현의 질책과 독려를 바라며 시조에 대한 편견과 의문에 대한 늦은 화답으로 이 책을 삼가 세상에 내놓는다.(하략)
첫댓글 [시조시학의 현대적 탐구] 학술서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송년회 자리, 반갑게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년간 써온 논문 가운데 20편을 골랐습니다.
좋은 시간, 따뜻한 시간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