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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11-17 울지 말라 (울어도 못하네) (일어나 걸어라) 2016년 1월 24일 주일오전
(서론)
1. 전 국민당 총재이며, 경제계의 대통령이라는 정주영 현대그룹 전회장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역경과 고난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곧 그 말이 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자기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평소의 철학입니다. 그러므로 성공 자가 될 수 있는 인생철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예를 들면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므로 나의 무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예수님의 두 제자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좌우명을 가지셨습니까? 인생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함정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한 여인이 남편이 죽고 홀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이 여인에게는 생명 자체 입니다. 이 아들이 엄마의 기대대로 잘 자라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된 그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애기치 않은 사태, 황당한 상황, 상상 하기도 싫은 일들이 우리들이 평안할 때, 우리들이 안일할 때, 갑자기 나에게도 일어납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힘이 들 때, 더 힘들게 폭풍처럼 겹쳐오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할 힘도 없어져 버렸고, 믿음도 잃어 버렸을 때 어찌해야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픔과 낙심에 빼지게 됩니다. 한숨만 쉬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긍휼을 베풀고 계십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주고 계십니다.
(본론)
1. 본문의 배경
1) 전도하러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는 예수님께서 수넴 지방에 있는 나인성에 들어가십니다. 이 지방은 그 옛날 엘리사 선지자가 자기를 위하여 방을 준비하여 쉬게 하며 대접했던 여인의 어린 아들이 죽자 그 아들을 살린 기적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자 쉽게 받아들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님을 큰 선지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6절) 예수님께서 이 마을에 들어오시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들어오는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감격과 흥분의 표정인데 반하여 마주 오는 사람들은 슬픔과 비통의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도 죽고 어린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던 여인의 아들이 죽어 장례식을 하는 행렬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관을 붙들고 울부짖는 여인의 통곡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과부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13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시더니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이 떨어지자 말자 죽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납니다. 말도 합니다. 다시 살아 난 겁니다. 할렐루야. 이 광경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며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14절에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라고 외치게 되고 이 소문이 온 유대 땅과 사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오늘우리에게 까지 증거 되어 오고 있습니다.
2. 울지 말라
1)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이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의도가 뭘까요? 인정머리 없는 사람처럼 왜 울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가) 징징대는 소리가 싫어서 일까요? 아니면 시끄러워서 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로 향할 시선을 빼앗겨서 일까요? 이런 이유로 울지 말라고 하시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 이런 의미였다면 고함을 지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들어 있을까요?
나) 13절의 ‘불쌍히 여기사’라는 단어에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미 죽었으니 울어봐야 아무 소용없다’라는 냉정하고 차가운 인간미가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연민, 위로, 긍휼, 자비, 사랑을 표현하시는 음성이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울음을 멈추어라 내가 왔다.” 이런 의미의 음성입니다.
2) 인생은 마라입니다.
가) 우리 인생은 울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쓰다’라는 뜻을 가진 ‘마라’라고 합니다.
a. 구약성경에 보면 나오미 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기근이 오자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 나라 모암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러나 거기서 남편이 죽습니다. 얼마 후에 모압에서 결혼까지 한 두 아들도 죽고 맙니다. 세 명의 과부만 남게 됩니다. 결국 이민 생활에도 실패한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큰 며느리는 친정으로 가고 둘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따라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이가 누구냐? 나오미가 아니냐?” 그때 나오미는 “이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마라라 불러 주십시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우리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마라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다. 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우리는 죄의 대가로 마라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피해보기 위하여, 고통과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 보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오미는 없고 마라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 지난 주간에 67세 된 기러기 아빠가 여관에서 생활을 하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국에 이민 갔던 아빠는 10년 전에 홀로 돌아왔습니다. 공부를 마치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내 맘대로 됩니까? 하는 일이 잘 안됩니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있는 것까지 다 말아 먹었습니다. 집이 없어서 여관에서 잠을 자고 밥은 인근 식당에서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제육 복음을 사 먹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힘들게 되자 마침내 유서 3장, 현금 15만원과 10원짜리 동전 몇 개 남기고 지난 월요일 오후 12시 30분경(1월18일)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유서에는 “잘해주신 여관 사장님께 죄송합니다. 날이 춥지 않았다면 물에 빠지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조금 남은 현금은 사장님과 청소부 아줌마께 드렸으면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주변에 친, 인척이 있었지만 도움 한 번 구하지 못했답니다. 남의 집안 사정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참 가슴이 아픕니다. 남의 일 같지도 않습니다.
마) 우리나라 사람 40%는 다시 태아난다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지진이 그렇게 많이 나는 일본 사람들은 9%가 일본 땅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덴마크는 10%, 브라질은 37%입니다.
사)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울 일만 남아 있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빈부차이는 더 심해집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7포 시대라는 자포자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유층에서는 더욱더 부를 쌓아가고 있으며, 부패와 타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주님을 만나십시오. 우리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마라’에 찾아오셨습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가) 우리 주님은 위로자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시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울지 말라’ 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곧 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 구약성경에 마라 사건이 두 군데 나옵니다.
a. 출 15:23-26 (민 33:8-9)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노예생활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안에서 건너고 수르라는 광야를 지나갑니다. 3일이나 되었는데 물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마라라는 지역에 도착했는데 거기에 물이 있었지만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원망하여 아우성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심으로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즉시로 물이 달게 되어 온 백성의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습니다.
b. 또 한군데는 앞에서 말씀드린 룻기에 나옵니다. 나오미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마라라는 쓰디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 룻이라는 이방 여인 며느리를 통하여 마라가 아닌 나오미 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다) 죽어 관에 갇혀 무덤으로 가던 청년과 슬퍼하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은 식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택하신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도와야 할 때가 되면 도와주십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어린 자녀가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정말로 위험하면 즉시 도와주는 것과 같습니다.
a. 이미 벌써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찾아 오셔서 불쌍히 여기사 살려 주셨습니다.
b. 복 받을 사람은 만날 자를 잘 만나는 겁니다. 인생의 필수적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셨기를요, 아직이면 빨리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따뜻한 음성으로 위로하시며 약속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3. 일어나라(14절)
1) 사람의 말로는 일어 날 수 없습니다.
가) 엄마가 얼마나 울부짖었겠습니까?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비통한 통곡소리로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 가족을 바라보는 이웃 사람들, 이 가족의 딱한 사정을 들은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간절히 일어나기를 바랐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로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나) 인간이 아무리 외쳐도, 까무러치며 불러도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눈 한 번도 다시 뜨지 못합니다.
a. 인간의 노력, 울부짖음, 땀방울이, 과학이, 지식이 마라를 나오미, 즐거움, 단물로 바꿀 수 없습니다. 돈이 죽은 아들을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2)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가) 예수님은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a. 오늘 본문 14절에서 “청년아”라고 부르십니다. 이때 헬라어 원문 문법으로 보면 청년아라는 단어가 힘 있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강조 법을 쓴 이유는요, 예수님께서 이 청년을 만나적도 본 적도 없지만 그러나 이미 알고 계심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우리 성경을 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을 해석하다 보면 헬라어 문법적으로 예수님은 이미 이 청년을 잘 알고 계시고, 잘 아는 청년을 다정하게 부르시는 음성임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b. 예수님은 우리를 만난 적도 없고 우리와 시대도 다른 시대에 사셨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고 계시는 분”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나)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a. 예수님은 먼저는 슬픔에 빠진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고, 다음으로는 오늘 죽어 관에 갇혀 있는 이 청년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일어나라” 이 명령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주님, 주인 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b.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말씀은 생, 사, 화, 복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입니다.
c.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게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까지 어떤 검보다 예리하고,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듣지 못하면 사탄의 음성이나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게 됩니다.
d. 일어나라는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을 지금 이 시간에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죽었던 영혼과 잠들어 있던 영혼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영적인 삶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작았던 믿음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의 불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건강과 체력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경제적인 안정과 사업과 직장의 번창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만남의 복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자녀들에게 지혜의 문이 열리길 축복합니다. 소원의 응답의 문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3) 오늘도 예수님께서 일으켜 쓰십니다.
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있던 80세의 노인 모세를 일으켜 40년간 120세 까지 위대한 지도자로 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 다니 던 다윗을 일으켜 성군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낮고 천하고 무능한 우리를 들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실 줄 믿습니다.
다) 노예로 팔려와 감옥에 갇히기 까지 한 요셉을 30세의 젊은 나이에 일으켜 애굽 제국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자기 민족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을 이 민족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라) 이런 말씀을 들어도 도무지 믿지 못하는 우리들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약 4:2)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빌 4:19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 찬양 - 일어나 걸어라. 오늘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받으시고 찬양을 드리십니다.
(결론)
1. 지금 나에게 와 계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나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귀를 기울이십시오. 울지 말라는 부드러운 위로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일어나라는 능력의 음성을 아멘으로 받으시고 마음에서부터 일어나십시오. 내가 약하고 무능하고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로 결단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