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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횡단
Chapter 1
메마른 사막
이 글을 쓰기 전, 머릿속 에 생각이 메말라 잇던 나의 철없던 중학교 생활을 뒤 돌아 본다.
내가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갔을 때이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게임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 게임이 나의 중학교 생활을 좌지우지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한 채로 그 게임을 시작했다. 평소에 게임을 즐겨하던 나는 그 게임을 쉽게 익혔고 단 시간에 그 게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매일 PC방에 앉아서 3시간은 기본으로 게임을 했고 주말에는 그 이상으로 게임을 했다. 그렇게 갈수록 페인에 가까운 수준까지 갔었다. 내 중학교 1학년은 게임에 시간을 허비했다. 중학교 2학년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제 2의 페인 인생이 시작 되었다. 그 친구들은 요즘 흔히 말하는 ‘양아치’ 였고 그런 친구들과 친해지니 나도 자연스럽게 친구들처럼 변해갔다. 학교는 잘 가지 않았고 친구들과 주로 모여 술도 마시고 일탈도 하며 남들이 보기에 좋지 않은 일들을 많이 했다. 그 시절에는 행복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놀기만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저 멀리 미루어 두고 지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후반기에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는지 결과가 나왔을 때이다. 나는 그동안 좋지 않은 행실에 대한 죄 값을 치루는 듯 했다. 내신은 거의 바닥을 치는 급이라서 내 집과 가깝던 고등학교를 떨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넘게 걸리는 학교를 통학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참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 했다. 다른 사람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고 후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 후로 내 인생을 좀 바꾸어야겠다고 다짐하고 게임도 줄이고 학원도 다니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 해보았지만 전에 즐겼던 행복을 쉽게 버릴 수 없었고 틈만 나면 전 생활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애매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동군아 너 한국에서 이런 생활 그만하고 세계여행이나 하고 올래?” 라고 말이다. 철 없던 나도 평소에 친구들과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해외여행을 꿈꾸던 때 였는데 아버지께서 마침 ‘세계여행’ 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았고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설명을 들어보았다. 10개월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스키, 윈드서핑, 스쿠버 다이빙, 승마, 서핑 등 다양한 스포츠를 배우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역사가 있는지 8년이나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곳에서 경험을 하며 스팩을 쌓고 꿈을 찾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 ‘세계여행’ 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 했다. 하지만 반면 어머니는 내 한국에서의 생활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나를 믿지 못하시고 가봤자 바뀌지 못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세계여행’ 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한국에 남아 있으면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어머니를 설득 했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라는 말이 있듯 허락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하반하 세계여행 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여러 다짐을 했다. 부모님이 큰 마음 먹고 보내 주시는 여행이고 10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해외에만 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180도로 바뀌어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생애 처음으로 가는 나라들과 ‘하반하 세계여행 학교’라는 곳에서 무엇을 하게 될질에 대해 상상도 품었다. 그렇게 메마른 사막처럼 생각이 메말라 있던 나의 머리 속에서 꿈과 열정과 가치관이 있는 오아시스가 있을지 호기심을 가지며 나는 메마른 사막에서의 횡단을
시작했다.
Chapter 2
길 잃은 낙타 한 마리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갔었을 때이다. 3박4일 동안 밖으로 나가서 운동도 하고 낮
잠도 자며 하루종일 자유롭게 즐겼다.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이곳이 해외 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던 중 슬로바키아로 떠났다. 우리가 지냈던 ‘쟈스나’ 라는 마을은 자연이 잘 보존 되어있었고 동화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마을 풍경, 윈도우 배경화면에서 볼법한 푸츤 언덕의 조합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평소에 게임 할 때를 제외하고 혼자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아직 여행의 초반이고 괜히 시간낭비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내 자신을 자제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타트라’ 라는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게 되었다. 나는 이 스키장을 본 그 순간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좋아하는 스포츠가 바로 ‘스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통해서 동영상을 찾아보았고 영상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산에서 자연설에서 멋지게 내려오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꿈을 가졌다. 이 ‘타트라’ 스키장을 본 그 순간 꿈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한 번에 받았을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스키장이었다. 일주일간은 스키를 즐겁게 타고 오면 낮잠을 자며 편안하게 지냈다. 그러다보니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점점 나의 다짐들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쯤 하반하에 ‘정산 프로그램’이 시작 되었다. 이 ‘정산 프로그램’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해드리자면 이 ‘정산 프로그램’은 하반하 학생들에게 시간 개념과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학생들의 공부 습관을 잡아주는 수단이다. 일기, 독해, 영어단어를 필수로 하며 그 외 수업들을 들으며 내 할 일을 스스로 해야 한다. 수업에는 창의력을 길러주는 창작 수업, 오카리나, 영어수업, 독서록, 스피킹, 디베이트 등이 있다. 각 수업에는 모두 숙제가 있기 때문에 숙제를 열심히 해서 지시 사항을 이수 하면 그에 마땅한 돈을 각 수업의 선생님들이 주시고 만약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거나 시간을 지키지 않은 학생에게는 패널티, 즉 벌금이 부과 된다. 그 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예를 들어서 기타 연주나 노래 암기 등을 해서 보여드리면 거기에도 마땅한 돈을 주신다. 하지만 나는 이 정산 프로그램에 적응 하지 못해서 큰 어려움을 격었다. 그래서 내 할 일들을 자꾸 미루게 되었고 그래서 정산에서 빚(패널티)이 쌓여만 가면서 내 스트레스 또한 쌓여만 갔다. 그러던 도중 ‘신승환’ 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 또한 나처럼 자유롭게 노는 것을 좋아했던 친구이다. 서로 공통점도 있고 대화 코드도 잘 맞아서 우리는 꽤 짧은 시간 내에 친해졌다. 승환이와 놀며 정산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듯 했지만 서서히 내 목적을 잊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내 목적을 가지고 나의 길을 향해 걷던 도중 버티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그 후 정산을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승환이는 밤 하늘에 별 같았고 나는 길 잃은 낙타가 아니었나 싶다. 승환이는 정산을 잘 하지 못했지만 ‘기타’ 라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에 기타를 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반면에 나는 목적을 버리고 열정도 쏟아서 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냥 빛나는 별을 쫓으며 정작 본인의 방향은 잃어간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던 도중 써니쌤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가 요즘 정산을 하지 않고 방황하는 모습이 보이는 구나 그렇게 방황만 하다가 10개월을 낭비할테니 어서 정신 차리고 정산을 열심히 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간을 관리하는 법과 공부습관을 들이는 법을 알려주셨다. 거기서 나는 느꼈다. “내가 이렇게 방황 할 것이 아니라 내 갈길을 가야하는 상황이었지! 이대로 놀기만 한다면 한국에서처럼 시간을 낭비 할 거야....“ 라고 느꼈다. 그 후로 노는 시간을 줄이고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시 내 갈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슬로바키아에서 느낀 점은 이 유혹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있을 터이니 굳은 마음으로 내 갈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Chapter 3
오아시스를 찾다
슬로바키아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나의 길을 걷던 때이다. 우리는 스키장에 눈이 모두 녹아서 스키를 못 탈 때까지 열심히 스키를 탔다. 그리고 그 다음 나라인 ‘폴란드’로 이동했다. 우리는 폴란드에서 ‘아우슈 비츠’ 라는 최악의 나치 수용소도 가서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정도로 소름 끼치고 죽은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 했다. 우리가 지냈던 동네는 꽤 잘 꾸며진 동네라서 밖으로 나와서 산책을 할 때면 이곳이 유럽이라는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슬로바키아 때처럼 놀기도 했지만 정산은 놓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시간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항상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독해를 하고 아침 먹기 전까지 끝내고 영어 단어장을 틈틈이 들고 다니면서 외웠다. 수업에 숙제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끝냈다. 그러다보니 남는 시간이 생기면서 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폴란드에서 문제 없이 지낸 후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나라로 이동했다. 그 나라는 바로 세계에서 미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 ‘우크라이나’였다. 한국에 있었을 때 인터넷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그 명성을 익히 들었던 나는 매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떠들석 했다. 우리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리비브’ 라는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숙소를 향해 걸었다. 길고 긴 이동을 하고 도착한 ‘리비브’ 라는 동네는 한국의 시골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혼자 나와서 리비브의 길 거리를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힐링이 된다. 그런데 미인들은 모두 어디에 잇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서 알려드리죠! 우리 숙소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꽤 발전 된 시내가 나온다. 이곳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시장, 큰 고층 건물 등 볼거리들이 많다. 바로 그 도시에! 미인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뒤돌아보게 만드는 미인들이 너무 많아서 뒤로 걷는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과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명성이 붙혀 진 이유를 알 듯 했다. 숙소에서는 바람을 느끼며 힐링을 하고 30분 걸어 나가면 미인들이 널린 리비브의 시내.... 우크라이나는 나에게 힐링의 나라였다. 하지만 힐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대장님께서 양손에 고기를 들고 오신 것이다! 학생들은 기쁨에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했다. 그 날 우리는 밥 대신 고기를 배 터지게 먹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한번 더 고기파티를 했는데 이 고기파티는 더 특별했다. 야외에서 나무를 구해서 불을 만들고 그 불 위에서 고기를 굽는 바비큐 파티였던 것이다! 각자 꼬챙이를 만들어서 고기와 채소를 재주 것 끼워서 불 위에 올렸다. 처음에는 모두 고기를 태우기 일 쑤 였지만 곧 감을 잡고 잘 구웠다. 나는 야채보다는 고기를 듬북 끼워서 불 열기로만 잘 익혀 한 점을 먹는 그 순간!! 와우... 고급 레스토랑에서 구워준 최고급 고기의 맛이 났다.... 이렇게 행복한 고기 파티를 즐기고, 예쁜 누나들도 보고, 신나게 놀기도 하고, 가끔 바람을 느끼며 힐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시간을 낭비 하지 않고 열심히 내 할 일을 임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시간 개념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놀기만 하며 시간을 낭비 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내가 노력해서 사용한 시간의 대가로 즐겁게 놀 수 있었고 성취감도 있으니 행복감이 더욱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시간을 잘 활용하면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 난 우크라이나에서 나의 첫 번째 오아시스를 찾았다.
Chapter 4-1
운명의 길
‘리비브’ 이후 우리는 ‘오대싸’ 라는 곳을 갔다. ‘흑해’와 접해 있는 오대싸에서 4박5일 동안 지내다가 다음 나라인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동을 하기 위해 항구로 갔다. 이번에는 특별히 비행기가 아니라 24시간 동안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여객선을 타는 것이라 기대를 품었다. 우리는 배를 타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 항구를 돌아다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힘들게 이동했다. 그러던 중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기 위해 어떤 항구 건물에 들렀고 우리는 그늘 아래에 몸을 맡기고 쉬고 있었는데 눈이 크게 벌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배가 하루 지연 되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패닉 상태에 ᄈᆞ져 몇분 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던 중 대장님이 숙소를 찾으러 가자고 하셨다. 일단 잠자리는 구하고 봐야 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넷을 통해 찾은 최대한 가까운 숙소로 향했다. 그 숙소는 수영장도 있고 깔끔하여 1박을 하기에는 최고의 숙소였다. 그런데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숙박비를 흐리브냐(우크라이나 돈)로 받으려 하지 않고 달러로 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혹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계산을 해보니 달러로 내는 값이 흐리브냐로 내는 값보다 더 높은 것이었다. 아마도 달러로 받아서 이익을 볼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흐리브냐로 낸다고 했었고 결국 손님을 놓칠 수 없는 아주머니는 흐리브냐로 받았다. 별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숙소에 들어왔지만 괜찮은 숙소를 잡았다는 것에 내심 기뻣다. 그곳에서 정산 프로그램은 하지 않아서 우리 학생들은 기쁨에 도취 된 채 열심히 놀았다.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자며 편안하게 지내다가 하루가 플렀다. 아침이 되고 우리는 다시 배를 타러 가야하는 시간이 되어서 체크아웃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숙소 아주머니가 우리의 발목을 잡더니 이불이 사라졌는데 우리가 훔쳐 간 것이 아니냐고 우기는 것이다. 그때 너무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생 사람을 잡아서 이런 매너 없는 행동을 하다니..... 심저어 영어도 못하는 아주머니라 더욱 답답했다. 그렇게 1시간 가량 실랑이를 벌이다가 끝내 무사히 돌아 갈 수 있었다. 늦었지만 급히 가면 시간 안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서둘렀다. 꽤 먼 거리라서 중간에 인원을 확인 할 겸 한숨 돌리는 중이었는데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거기에 타고 있었던 분은 우리가 타는 여객선 직원이셨다. 선생님들 중 ‘찬희쌤’ 이라는 분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고 우리는 배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서 찾아 다니셨다. 우리는 그 덕에 편하게 차량으로 배까지 이동 할 수 있었다. ‘Sea Line' 이라는 여객선에 들어가니 시설이 잘 되어 있었고 레스토랑에는 우리를 위한 과자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자와 티를 즐기고 있었는데 써니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만약 그 숙소 아주머니가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았으면 우리는 과연 직원을 만나서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었을까? 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 아주머니가 우리를 1시간가량 붙잡았기에 우리는 주유소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그 직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듯 모두 준비 되어 있는 운명에 우리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더 큰 좋은 일이 일어나기 위한 준비 단계 일 뿐이니 좌절하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차분히 일을 풀어간다면 운명의 길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 할 것이라는 깨닫음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막횡단을 하면서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이 경험을 토대로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히 내 길을 계속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Chapter 4-2
사막을 초원으로 만드는 법
배를 타고 24시간 동안 긴 이동을 한 후 우리는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 짧게 4박5일 머물고 우리는 윈드서핑을 배우러 ‘페티에’라는 지역에 갔다. 이스탄불과 똑같이 바다가 있었지만 이스탄불은 관광지로 유명한 항구도시이고 페티에는 수상 스포츠를 즐기기 좋은 휴양지이다. 나는 페티에에서 윈드서핑과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교훈을 얻었는데 이 관계에 대해서 알려준 세 분이 있다. 바로 찬희쌤, 써니쌤, 대장님이 계신다. 먼저 찬희쌤에게는 ‘아쉬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찬희쌤은 나라의 부름(군대)으로 터키에서의 여행이 우리와 마지막이었다. 요리를 매우 잘하셨던 찬희쌤은 평소에 우리에게 맛있는 것들을 해주셨지만 페티에에서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히 신경 써주시고 맛있는 간식들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가시기 전까지 항상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들에게 무언가 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찬희쌤이 가실 때 정말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고 함께 계속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찬희쌤께 배울 점은 많았지만 그 중 중요한 부분인 ‘관계’를 배웠다. 남에게 정성을 쏟으면 상대도 그 정성을 알아주고 잘해주게 된다. 내가 떠났을 때 남에게 보내기 아쉬운 사람으로 남고 나중에 연을 더 쉽게 이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다른 ‘관게’를 배운 것은 써니쌤과 대장님이다. 우리가 배우던 윈드서핑 센터 분들은 우리 학생들이 윈드서핑을 열정적으로 배우고 뺀질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인지 많이 친절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들의 친절에 보답을 해드렸다. 대장님이 저녁을 한식으로 만들면 그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서핑 센터 분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여러 게임들을 함께 즐겼다. 그러면서 서핑 센터 분들과의 연은 점점 끈끈해져 갔다. 그렇게 한달 간 윈드서핑을 즐겁게 배우고 어느 새 떠날 날짜가 되었다. 윈드서핑 센터 분들이 우리가 썻던 보드 20개 값으로 안 치루어 주시고 10개 값만 치루어 주셨다. 그분들의 사랑에 우리도 마지막 사랑으로 그분들에게 북 공연(하반하에서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전통 북으로 공연을 한다)을 해서 감사에 대한 보답을 하자는 써니쌤의 제안으로 북 공연을 해드리고 공연을 마무리 하면서 서투르지만 영어로 짧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찬희쌤이 만드신 특별한 영상으로 마지막 선물을 해드렸다. 서핑 센터 분들과 좋은 연이 되었고 하반하 학교에서 찾아오면 언제든지 환영이라 하셨다. 숙소에 돌아와서 써니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그 분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으면 그 분들이 이렇게 싸게 서핑을 타게 해주시고 그렇게 친절하게 해주셨을까?” 라고 말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살아 가는데에는 ‘관계’ 라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문제는 없지만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상대가 사랑을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하며 서로의 인연을 이어 나가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나 홀로 걸어가는 사막에서도 ‘친구’ 라는게 있으면 그곳은 더 이상 사막이 아니라 푸른 초원이 아닐까 싶다.
Chapter 5
중간 점검
터키에서 윈드서핑과 관계에 대해서 배운 후 우리는 이집트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합’ 이라는 동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게 되었는데 물 속에서 숨을 쉬고 아름다운 바다 속을 구경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저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비밀병기’ 란 타이틀 답게 자격증까지 따기로 했다. 오픈워터,어드벤스,레스큐,마스터,인스트럭터까지 있는 자격 중 우리는 어드벤스까지 따기로 했다. 산소통을 메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 아름다운 산호초드로가 물고기들 사이로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느낌을 정말 엄청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쿠버 다이빙을 다녀오면 나도 모르게 쌓인 피로에 침대에 누워서 기절을 하곤 했다. 한 달간 자격증 2개를 따고 몇몇 학생들은 거기서 레스큐 자격증까지 도전 했다. 그 후 우리는 하반하에서 ‘시즌’ 이라는 것을 맞게 되었다. 시즌이란 방학과 비슷한데 한국에서 여름방학을 한 학생들이 하반하에 놀러오고 우리는 그 학생들과 함께 한달을 함께 보낸다. 정산 프로그램 중 수업은 사라지고 독해와 영어 단어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우리 정 기수 학생들에게는 자유가 온 것과 다른 없었다. 그런데 시즌이 오기 전 써니쌤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시즌이 오는 것은 방학이 왔다고 말 할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너희들을 점검하는 기간이기도 해, 시즌 학생들에게 정신 팔려서 이야기 나누느라 정산이나 하던 일을 소홀히 하지 말고 정 기수 답게 한국 학생들과 다른 모습을 유지해 나갔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내가 노력 한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 하면서 시즌을 맞았다. 시즌 학생들 모두 한국에서 학교 끝나면 학원을 다니거나 아에 놀기만 했던 학생들이 오니 예의나 일에 대한 센스나 개념이 없없다. 그럴수록 우리 정 기수 학생들이 일을 더욱 잘하고 자기 할 일을 지켜나갔다. 그러다 보니 정산도 놓치지 않고 잘 해내었다. 시즌이 오고 우리는 카이로에 가서 피라미드도 구경하고 ‘시와’ 라는 곳에서는 모래사막에 가서 하룻밤 자보고 ‘The Three Corners' 라는 하반하 역대 최고의 숙소, 3스타 호텔에서 자는 등 내 인생에 일어날까 말까 한 경험들을 했다. 40명이 넘는 학생들과 팀을 나누어서 함께 스포츠도 즐겨보고 장기자랑도 하며 좋은 추억 또한 쌓았다. 그렇게 이집트에서 시즌과 함께 하며 나는 나의 중간점검을 잘 거쳤다. 나는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고 뿌듯했다. 여행의 절반에 온 만큼 나의 사막 횡단도 절반까지 왔길 바라면서 이집트에서 여행을 마쳤다.
Chapter 6
신 기 루
이집트 이후 우리는 ‘인도’에 가게 되었다. 인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저분하고 잘 못사는 나라였다. 그런 인도를 간다고 생각하니 기대보단 거부감이 조금 들었지만 새로운 문화를 배우러 간다고 생각했다. 인도 ‘마테란’ 이라는 동네에 가서 ‘승마’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산꼭대기에 위치 한 특별한 마을이었다. 네셔널 파크로 지정 된 마을이라서 입구부터 차 출입이 금지 되어 있었고 마을에는 동물들이 많이 보였다. 개, 소, 원숭이, 말 등 평범한 마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런 곳에서 한달 간 승마를 배우게 되었다. ‘말’이라는 생물을 타고 달리는 느낌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달 간 승마를 타고 마을에서 조금 걸어서 포인트를 가면 마테란에 있는 색다른 자연에 감탄했다. 절벽과 폭포, 그리고 나무들까지 어울려 장관을 만들어 내니 아름다움에 취해버렸다. 그런 마테란에서 잘 즐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사건이 터졌다. 우리 학생 모두가 정산 낙제를 한 것이다. ‘정산 낙제’ 란 말 그대로 정산을 ‘낙제’ 한 것이다. 일주일 중 토요일에 내가 했던 숙제나 수업 결과들을 정리해서 표로 그리는데 주어진 시간 내에 작성 하지 못하면 정산 낙제를 하게 된다. 정산 낙제로 인해 -124$라는 빚을 지게 되면서 우리는 패닉에 빠졌다. 그러던 중 우리는 ‘오르빌’ 이라는 동네로 이동했다. 오르빌에서 빚 삭감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 해보자! 라고 다짐을 했었지만 그곳에서 지내면서 -124$ 라는 빚에 대한 생각에 의욕도 잃었고 그러면서 60일 밖에 남지 않은 여행에 나는 다른 잡 생각들을 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 관해서 였는데 한국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놀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서 자주 멍 때리기 일 쑤였다. 그러다 보니 정산에 신경쓰지 않게 되었고 빚은 오히려 쌓여만 갔다. 그렇게 나는 ‘신기루’ 라는 현상에 빠진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마지 이 여행이 하루 남은 사람처럼 환상에 빠져서 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신기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신기루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써니쌤과 종윤쌤께서 문장시험(이 때는 단어시험이 문장 외우기로 바뀌었다.)을 Pass 못 할시에는 야구 방망이 10대 맞는다는 조건을 거셨다. 하지만 그 조건에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NO PASS 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나는 써니쌤께 야구 방망이로 맞게 되었다. 하지만 써니쌤께서 5대만 때리시고 남은 5대는 내가 또 다시 정신 못 차릴 시 그때 때리시겠다고 하셨다. 5대만 맞았지만 정신이 번ᄍᅠᆨ 든 나는 내가 신기루를 보고 있던 것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았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남았다... 이 사막 횡단이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직 여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내 의지와 목표는 확실히 있다는 것을 일깨우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끝까지 이 횡단을 가자고 마음 먹고 다시 이 메마른 사막 횡단을 시작했다. 나의 사막 횡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PILOGUE
본론부터 들어가자면 나는 이 사막 횡단의 끝을 보지 못했다. 오아시스도 찾았고 신기루에 마음을 빼앗겼었고 관계에 대한 것을 배우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여행의 시작의 나의 모습과 여행에 끝에 있는 나의 모습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른에 대한 예의, 나를 발전 시켜야 된다는 생각, 공부습관 등 발전 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일에 대한 센스나 집중력 부분이 부족하고 꿈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이 하반하 세계여행 학교를 1년 더 다니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오르빌에 있었을 때 써니쌤 친구 분들 중 ‘타로’ 라는 점괘를 볼 줄 아는 분이 있었다. 타로를 매우 잘 보신다는 써니쌤 말씀에 흥미가 생겨서 나는 타로를 보기로 결정했다. 질문은 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작위로 4개의 카드를 뽑고 그것을 보신 후 다른 4개의 카드를 그분이 뽑아주신다. 내가 뽑은 카드들은 정말 완벽하다고 하셨다. 내 미래에는 장애물이 없고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좋다고 하셨다. 다만 내 마음이 자유롭지 않아서 이것 때문에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여행’이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하반하에 다시 와야겠다는 확신을 했다. 한국에 있어도 유혹들로 인해 다시 돌아갈까봐 두려운 것도 있었고 하반하에 와서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사막 횡단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고 내년에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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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군동기생 소집일에 혼자 당당하게 자기소개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스스로 다시 용기내여 준우랑 한학년을 다시 보낸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치 한 편의 인생 역정을 펼쳐내온 아름답고 복된 동든이의 비병 여행^^ 수고 많았다!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아름다운 지혜와 교훈이 동근이의 장래를 환히 비쳐주는 등불이 될 것 같아 든든하구나!
밝은 장래를 맞이할 동근이를 힘차게 성원하마!! 아짜! 동근이 화이팅!!!
10개월 남짓 여행을 통해서 변해가는 아들의 모습에 대견했다. 1년이 남는 사람도 있고 부족한 사럄도 있는데 우리 아들이 후자인 것 같구나. 지금 아들이 고생하고 있는 이유는 네가 과거에 남들이 함들게 노력했던 일들을 안하고 허송세월로 방탕하게 보냈기 때문이란다. 세상에 헛된 노력은 없다는 걸 깨우치고 매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아들이 되어주기 바란다.
동군이의 글에는 씩씩함이 묻어나며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단다~ 비병기간동안 노력하려고 애쓴 모습이 역력하며, 자신을 바꾸기엔 부족하다고 느껴서 1년을 더 노력해보기로 다짐한 그 용기에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