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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설 준비의 최우선 과제
시 51:1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은
특정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와주실 그 날을 최우선적으로 기다리며,
매일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성경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은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마치 산모가 겪는 산통처럼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여러 나라들의 전쟁, 사건/사고와 재난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한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어떤 이유들에 의해 건강했던 사람들, 심지어 젊은이들도
예상치 못한 중병으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일들이 잦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중에 누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도 자신이 죽는 시점을 예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위험한 일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 없이 담대하게 설 수 있으려면,
그 날에 하나님께로부터 칭찬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확정되어
하나님께서 하사해주시는 생명나무 열매를 받아먹은 후
다시는 애통하는 것도, 아프지도, 괴롭지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히 고통만 받으며 존재하게 될 지옥을 예수님의 은혜로 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시작될 진짜 인생의 첫날을 기쁨으로 맞이하려면
오늘의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나에게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하나님께 여쭈고, 그 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을, 각자 자신의 인생의 결말을 잘 준비해야만 합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 없이 믿고,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존경하며 두려워하는(경외하는) 겸손한 모습과
무엇을 명하시든지 기쁘게 순종하려는 마음을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아갈 옳은 길을 반드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늘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하게 여겨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우리는 안심하며,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잘 마치길 소망합니다.”로서
저와 진리의성령교회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잘 준비하여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되기를 소망하며, 간구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들을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먹을 것도 없네.”
이 말은 저희 집안 어른들이 자주했던 말입니다.
명절에 모여서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면 집안 어른들은 “먹을 것도 없네.”라는 말을 종종 했었습니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저는 어른들 옆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쁜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집안은 독실하다고 자부하는 기독교 4대째 집안이며,
집안의 어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장로/권사/목사/집사들이었고,
또한 한 자리에 모일 때마다 늘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예배 직후의 식사에서 하는 그 말이 악한 말이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네.”라는 불평의 말을 한 뒤 배부르게 실컷 먹어 배가 임산부처럼 나온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의아하기도 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말 없이 시중을 들던
부인들의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별로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신은 평소 고급식당을 즐겨 찾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자라고
공개적으로 표현을 함으로서 스스로의 육신적 가치를 높이고 싶었던 건지
그 말의 의미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그 못된 말은
집에서도 아버지가 종종 했던 말이기도 했기에 (어머니가 지적하셔서 나중에 고치셨음)
그 말을 잘 기억해둔 저는 같은 유치원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주고 싶어서
가난한 살림 중에도(제가 살던 곳은 신림동 달동네) 거금을 들여
80년대 과자가게에 있던 센베 과자나 젤리 등이 들어있는 유리 상자를 집에 설치했고,
떡볶이 등 여러 가지 귀한 음식들을 어렵게 준비했을 텐데도
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 후에 맛있게 먹다가
아무 생각 없이 “먹을 것도 없네.”라는 말을 했습니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당황스럽고 놀란 표정이 기억났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아이가 지극히 무례한 말을 하고선
그 말과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보였을 때 그들의 기분이 얼마나 상했을까를 이제야 생각해보니
저는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존함에 먹칠을 한 큰 죄였습니다.
(지금은 그 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부디 제가 준 그 분들의 상처가 이제는 치유되었기를,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를, 지금은 저를 용서하고 구원의 길을 걷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유치원 시절의 저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그 날의 불편했던 감정, 당황스러워하며 기분 나빠 하는 반응에 대한
이상한 기분을 해소하지 못한 채, 회개도 하지 않은 채 까마득히 잊고 살았지만
얼마 전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그 날 있었던 일을 다시 생생히 기억나게 해주셨고,
저는 부끄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머리를 조아리며,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 일 외에도 과거 누군가를 미워했거나 마음속으로 무시했던 교만의 죄,
예수님의 사랑을 닮지 못한 이기적인 마음의 죄, 음란한 생각을 했던 죄 등등
어릴 때부터 성장하기까지 범하고선 잊고 지냈던 죄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나게 해주셨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젖을 주고, 단단한 음식은 성장한 자에게만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때에 깨닫게 해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인입니다.
지금은 목사로서 꽤나 성장했다고, 세상 사람들보다는 나은 거룩한 자라고 큰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저는 처음부터 원래 죄인이었고, 세상 사람들보다 크게 나은 것도 없으며,
또한 저의 죄들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없는 자입니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전혀 제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임을 다시 확실하게 인정합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다만 악에서 구해주세요. 하나님, 죄송합니다.“
요일 1:8-10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저를 대신하여 무거운 죄의 값을 지불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보시어
저의 회개를 받아주셨으며,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너의 정체와 너의 죄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과 의롭다함을 얻은 바로 그것이 구원의 길이다.”
라고 말씀해주시며 이것을 여러분들에게도 알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위한 구원의 길인 이 회개의 핵심은
자신이 범했던 죄들을 줄줄이 열거하여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습니다. 다 용서해주세요.“
‘아, 이제 모든 죄를 회개했으니 나는 안전해졌다.’가 아니라
자신이 바로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일 때에는 죄를 계속해서 범할 수밖에 없는 ‘죄 공장’과도 같은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근본적인 죄의 존재임을 고백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원죄와 자범죄(스스로 지은 죄)를 모두 지닌 자신의 정체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인정하는 이 부분을 위한 회개라는 의미입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딛 3:4-7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자신은 원죄를 품고 태어난 채 자범죄까지 범하여 하나님을 배신한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며,
자신의 의로움이나 행위로는 결코 구원 받을 수가 없는 자라는
그 명백한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은 이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끄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진심으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사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자신도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
이 방법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지 않을 수가,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 14:6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인, 그 당사자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한 사람은
그 이후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피 흘리기까지 애쓰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의 중요성,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고자 애쓰는 믿음의 행위,
행함이 있는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라는 내용이 성경말씀에 강조되어 있는 것입니다.
눅 3:8-9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약 2:14, 17, 22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마귀는 교활하며, 기억력이 좋은 참소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들을 들추며, 정죄합니다.
성실하게 우리를 관찰해온 정보를 토대로 각 사람의 치부를 정확히 짚으며,
“하나님, 이 자가 이래도 그리스도인입니까?”하며 우리 영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악령입니다.
이와 같은 참소 앞에 사람은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반응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얼마 전 하나님께서 주신 설교내용처럼
핑계와 변명으로 어떻게든 책임회피를 해보려는 자세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하나님 저 말이 맞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하며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적타락과 죄악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의 보혈을 통해 용서를 받아 우리의 모든 죄들은 도말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덧입어 의롭다 해주심을 얻게 되지만
다른 사람 핑계나 상황의 특수성 등으로 변명을 하면서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울왕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최악의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경우 “저희 집안 어른들과 아빠가 그런 말을 자주해서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려서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린이가 뭘 알겠습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혹은 제 잘못도 조금은 있겠지만 어른들이 더 문제입니다).“
이렇게 면피해보려는 핑계의 말, 어떻게든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님의 지적하심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우선하여 변호하는 노력,
전적타락한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려는 고집으론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계 2:4-5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기 위한 회개기도’를 함으로서
마귀의 정죄나 하나님의 꾸중이 아직 우리가 살아있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그 때 우리가 자신의 죄를, 타락한 자신의 정체를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로 참된 회개를 하여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어 마음과 행위를 완전히 돌이킨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의롭다 해주심을 얻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설 준비, 즉 회개와 돌이킴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여전히 남 탓, 부모 탓, 환경 탓, 사회 탓만 하면서 유효한 회개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거나
혹은 자신의 일시적 죄 행위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정체는 사실 의로운 자라는 영적교만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아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의 정죄나 하나님의 꾸중이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마지막 심판대 앞이라면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를 잃은 상황이기에 이것은 가장 절망적입니다.
아직은 기회가 있는 지금, 예수님께서 언급해주신 세리의 자세로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의롭다하심을 얻는 자만 살 수 있습니다.
눅 18:13-14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회개를 한 이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더럽지만
천국에 가고 싶어서, 지옥이 무서워서 행위만 착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죄를 스스로 선택하여 범함으로 하나님을 배신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스럽기에,
그래서 이미 회개한 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을 자신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을 실제로 삶에서 이루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그 인도하심에 순종을 하면
그 때부터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동안 도저히 되지 않던 것들,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놀랍게도 되어 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밉던 원수 같은 사람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베풀게 되고,
그동안의 억지로 했던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며,
또한 자신이 그토록 옳다고 생각했던 굳은 가치관과 고정관념 등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님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됩니다.
마치 천국에 이미 들어간 사람이 이 땅을 내려다보는 마음처럼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능력이나 선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임해주시어 우리 마음속 주인의 자리에 앉아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연스럽게 열매 맺는 일들이 진행됩니다.
이런 것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참된 회개를 한 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미 마음에 천국을 이룬 하나님 나라의 기쁨입니다.
눅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가 마귀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마귀는 분노하며 우리를 또 참소하고, 어떻게든 넘어뜨리려고 유혹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영의 싸움을 싸워야합니다.
적당히가 아니라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이제는 이겨야 합니다.
그러다가 또 어이없게 넘어지는 날이 온다면 좌절하여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즉시 하나님 앞에 달려가서 “하나님, 저 또 이랬어요...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부디 도와주세요. 다만 악에서 구해주세요.”하며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하고,
다시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 힘쓰는 것이 바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점점 성장하여 죄의 종이 되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없어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좁은 문과 협착한 길, 구원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최상위로 중요한 것,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로운(의로운 척하는) 행위도, 거룩한(거룩한 척하는) 삶도,
완벽한(완벽해 보이는) 신앙생활도 아닙니다.
바로 참된 회개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어
그 분께 나를 내어 드린 채 순종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참된 신앙생활과 구원의 길,
이 모든 일들은 오로지 진정한 회개,
다시 말해 자신의 근본적 타락을 겸손히 인정하는 회개로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 4:17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도 가장 먼저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사람의 의로운 행동과 거룩하고 완벽한 신앙이 구원의 최우선적 핵심이었다면
“너희는 거룩하게 행하라. 의롭게 살아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하셨을 것입니다만
예수님께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진리의 메시지를 최우선적으로 선포하심으로서
구원을 위한 최우선 과제이자 그 출발점인 진정한 회개의 중요성을 온 세상에 천명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
죄를 계속 생산하는 죄 공장, 그 자체임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진정한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구원의 핵심이며,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 설 준비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는 때 한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날까지
계속하여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보면서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은
징조들이 나타나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낄 때만 급하게 회개하고,
나중에 다시 슬그머니 죄 가운데로 돌아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매우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따라서 자기 욕심과 기분에 따라 같은 죄, 비슷한 죄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렇게 점점 영적으로 어두워져가며,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거나
큰 죄를 작은 죄로, 대수롭지 않게 인식하는 ‘양심의 화인’을 맞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려는 자세가 없는 자들은
자신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래도 자신은 남들보다는 나은 자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영적교만의 마음을 품은 채
매번 핑계를 대며 변명하는 모습으로 면피하기에만 급급한 태도를 보이거나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선한 행위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앞에 내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용서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와 같은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해주심을 얻어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될 것이라는 이 분명한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들은 부디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매일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십시다.
우리가 그렇게 참된 회개를 했다면 즉시 변화되면서(혹은 조금씩 변화되면서)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을 닮아가기에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 성령의 열매가 바로 회개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믿음구원, 행위구원을 따로 구분하여 대립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진리를 모르는 자들의 헛수고인지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바로 알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또 한 가지 기억해두면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생활의 햇수가 쌓일수록
자신이 거룩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자세가 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약 3:1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구원의 길을 걸을수록, 좁은 문과 협착한 길로 나아갈수록, 예수님과 더욱 연합할수록
나의 존재는 점점 옅어지고,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만 남으시며,
따라서 그 분께서 나의 삶을 주도하시게 되면(온전한 순종) 갈수록 겸손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묵묵히 기도만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고, 영적으로 도와주는 사명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임해주신 성령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종의 자세, 지극히 낮은 자세가 되어갑니다.
마 20:16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것이며,
자신은 그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으로서
예수님의 공로 100%에 의해 거저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라는 사실,
‘의인’이 아닌 ‘무료로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았기에
낮은 마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 23:10-13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해주신 겁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한 모태신앙인들, 기독교 가정의 가장들, 목회자들,
성령님께 받은 은사로 사역을 하는 자들이 필히 점검해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타 교회와 교단을 무차별적으로 비난만하면서
동시에 지극히 높아진 영적교만을 절대 내려놓지 못하는
저학력 군소교단의 목회자들과 은사 사역자들,
하나님의 부르심도 없이 신학을 시작했으면서도
자신은 거룩하고 위대한(?) 장자교단에 속한 목회자라는 이유 단 하나로
시종일관 거만한 눈빛으로 거드름을 피우는 수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
자신의 능력이 대단하여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었다고 크게 착각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영광도둑들,
목회자는 아니지만 자신은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니 ‘준 목사’나 다름없다고 자칭하며,
교만하게 선생의 자리에 앉으려는 성도들을 비롯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돌아볼 때입니다.
영적 교만은 스스로 자각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교활하기에
이런 권면을 들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얘기로 치부하며 쉽게 넘기지 말고,
즉시 자신에게 적용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하나님의 은혜로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겸손의 열매를 맺은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될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선 무한한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다.
시간도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현재의 감정과 기분과 자기만족을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다가
끝나지 않을 고통만 있는 영원한 지옥을 결국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바르게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정한 회개를 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의 길을 바르게 걸어 나아갈지는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을 때에
속히 선로에서 벗어나는 자는 살 것이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여기가 좋다며 선로에 머물러 있는 자는
피할 새도 없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한 명씩 서게 될 그 날이 갑자기 이르기 전에
‘이 땅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겸손한 자세로 회개하여 이제는 완전히 돌이키기를,
자신의 정체는 완전히 타락한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고백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과 의롭다 해주심을 얻을 수 있기를,
이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거듭난 자답게 죄와 싸워 이기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모습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각 사람의 심령을 밝히 비춰주시기를,
부디 진리를 바르게 깨닫도록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려 진정한 회개를 하십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우리 인생의 초점을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품으며,
하나님 앞에 설 준비의 최우선 과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회개’라는 진리를 깨달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부정한 것들이
이 땅에서 거하는 동안 전부 밝히 드러나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관련된 깨달음을 주실 때에 변명 없이 그것들을 인정하며 아뢰는 모습,
또한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으로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받을 수가 있는 전적 타락의 존재임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인정하는 모습으로
이제 다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여 거역하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면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하나하나 맺어가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지금 행복하게 준비함으로서
아무런 후회나 미련도 남지 않는 최고의 인생을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진리의성령교회에 속한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3:21-22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11.24.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207장 주 나에게 주시는
1. 주 나에게 주시는 은혜가 크도다 그 대속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니
이 타락한 죄인이 중생케 되었네 그 넓고도 큰 사랑 나 어찌 말하랴
2. 이 세상의 사람들 교만한 맘으로 그 진리를 배반한 무리가 아닌가
주 우리의 영혼을 곧 건져주시려 이 세상에 오신 것 참 놀라웁도다
3. 그 보좌를 떠나서 사람이 되시고 그 몸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셨네
나 예수의 공로로 그 나라 들어가 이 연약한 무릎을 주 앞에 꿇리라
[후렴]
말할 수 없는 주의 크신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 놀라운 사랑이 내게 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