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 다시 늘고 있다?… 영업점 축소 속도 조절하는 이유는
(조선비즈)
코로나19 시기 분기마다 지점 45개씩 줄어
소비자 47%, 지점+디지털 채널 선호
지점, 소형·경량화되고 고부가가치 창출 역할
지점 통폐합을 급격하게 추진하던 은행권이 영업점 축소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점포 폐쇄 절차를 까다롭게 만든 영향도 있지만, 은행이 이제는 고객과의 접점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업점을 활용하려는 전략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은 영업점을 소형·경량화하고, 대형 점포의 경우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13일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4대 은행은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 2분기부터 작년 1분기까지 점포 통폐합을 통해 535개의 지점을 줄였다. 과거 10년간 축소한 지점 수의 44%를 단 3년 만에 줄인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점포 축소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분기마다 평균 45개씩 영업점 수가 감소했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2분기 영업점 감소 수는 27개였으나 같은 해 3분기에는 5개, 4분기에는 4개로 줄었다. 올해 1분기에는 11개의 영업점이 줄어들었고 2분기에는 오히려 4개의 영업점이 늘어났다.
은행이 영업점 축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영업점이 필요하다는 고객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은행은 무조건 영업점 수를 줄이는 대신 방문하는 고객의 성향에 따라 영업점의 역할을 변화하고 있다.
이수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급격한 점포 폐쇄에 따른 소비자 불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 5월부터 점포 폐쇄 공동 절차가 시행되며 은행들의 영업점 폐쇄 절차가 까다로워진 영향이 있다”라면서도 “코로나19 이후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채널 조합은 지점과 디지털이 47%, 디지털만 이용이 23%, 지점만 이용이 17% 순이기 때문에 (은행이) 손님 니즈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점의 역할 변화를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은행이 역할을 바꾸고 있는 지점의 형태는 ▲소형·경량화 ▲고(高)가치화 ▲고령 친화로 요약할 수 있다. 고객의 접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포의 크기, 인력, 기능을 축소하고, 디지털 점포도 확대하고 있다. 대신 영업점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던 출장소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기업전문 인력을 배치해 기업 채널로 활용하거나 고령손님에 집중하는 등 특화 채널로 쓰고 있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하나은행 클럽원한남 프라이빗뱅커(PB)센터의 라운지. /김수정 기자
대형 점포의 경우 고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한다는 게 은행의 영업점 활용 전략이다. 은행은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 점포와 서비스를 강화해 비이자이익을 높이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부유층 중에서도 초고액 자산가, 영리치 등에 집중하는 추세다. 은행은 이들을 대상으로 패밀리오피스, 상속·증여, 신탁, 비상장 투자상품 등 제공 서비스와 상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또, 일반 영업점에서는 예약 상담 서비스를 확대하고 챗봇·모바일앱의 활용을 높이는 등 저부가가치 업무를 비대면화하는 대신 대면일 경우 상담과 판매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고 있다.
특히 은행은 지점을 자주 이용하는 고객군인 시니어층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금융거래 편의성을 높이거나, 은퇴 자산관리를 위한 전문적 상담을 제공하는 상담 센터를 지점 내 개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은행의 영업점 축소 속도 둔화 트렌드는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은행은 지난 1년간 지점 수를 유지하거나 확대했다. 특히 JPMC는 500여개 지점 신설을 포함한 지점 확대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은행은 지점의 판매 역량을 강화해 지점의 종합 판매 채널화를 진행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상위 은행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이후 지점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캐나다의 TD뱅크는 ‘손님이 차로 10분 안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접근성을 높이고, 영업점을 ‘핵심예금 조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채널’로 인식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디지털화에 따라 영업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나, 그동안 양적 축소에만 집중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은행별 영업점 전략의 차별화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라며 “은행은 영업점 역할에 대한 재정의와 함께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고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연구위원은 “각 사에 적합한 차별화된 영업점 운영 전략을 고민함과 동시에 영업점별 입지, 방문 손님, 지점간 연계성 등을 고려한 점포 유형 다변화, 특화점포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조 기사]
증권사 점포 정리 가속화…갈 곳 잃은 고령층 (데일리안)
4년 반 만에 증권사 점포 수 24%↓
핵심 지역 중심 통·폐합 사례 증가
소외층 투자 접근권 악화 대안 부재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밀집란 서울 여의도 전경. ⓒ연합뉴스
주식 거래나 펀드 가입 등 투자 환경이 급속도로 디지털화되면서 증권사들의 점포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영업 효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조치이기 하지만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서 고령층의 투자 소외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전체 증권사 점포 수는 788곳으로 작년 말(816곳) 대비 28곳 줄었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 점포 수가 3927곳에서 3919곳으로 8곳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큰 감소세다. 전체 은행 점포 규모가 증권사보다 5배 수준 더 많은데 비해 줄어든 점포는 증권사가 더 많아 감소율은 더 높다.
이런 현상은 올해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 2019년 말 기준 전체 증권사 점포는 1026곳으로 약 4년 반만에 238곳(23.2%) 감소했다. 반면 5대 시중은행은 같은 기간 4661곳에서 3919곳으로 742곳(15.9%) 줄어든 것으로 집계돼 증권사들의 점포 감소세가 더 크게 나타났다.
특히 기존에 점포를 많이 운영하던 대형 증권사들의 감소 폭이 컸다. 신한투자증권은 2019년 말 125곳으로 집계됐지만 올해 6월 말 기준 65곳으로 5년 새 점포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삼성증권 역시 63곳에서 29곳으로 점포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하반기 들어서도 해당 흐름은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 KB증권은 8월 말 이천라운지를 용인지점과 통합했으며 대신증권도 광주센터와 상무WM센터를 통합해 광주금융센터로 변경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주식거래나 펀드판매 등 주요 업무가 대부분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를 통해 진행되고 있어 대면 거래 수요가 적어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점포 대형화를 통한 통합 자산관리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점도 점포 통폐합을 가속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점포 통폐합은 비대면 영업과 모바일을 통한 금융투자가 강화되는 상황 속에서 영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분산된 지점을 통합해 거점 지점을 대형화하고 고액자산가 영업을 강화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속화 될 것”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점포 감소가 여전히 비대면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등 소외계층들의 투자 접근권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은행의 경우 점포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거쳐 폐쇄 여부를 결정하고 점포 폐쇄를 결정한 경우 대체 점포를 먼저 마련해야 하지만 증권사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지난해 10월 ‘금융앱 간편모드 활성화 TF’를 구성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은행 애플리케이션(앱) 내에 고령자 등을 위한 간편 모드를 서비스할 수도 있도록 한 것을 증권사·보험사·카드사 등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현재 국내 은행 중 모바일 뱅크 앱을 서비스하는 모든(18개사) 곳에서 간편모드를 출시한 반면 증권사들 중에서는 실제 해당 서비스를 출시한 곳을 찾기 쉽지 않다. 금융당국에서도 증권업의 경우 은행업권과 업무 성격이 달라 도입이 쉽지 않다며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 점포 역할의 방향성이 핵심 중심 상권 기반의 대형화를 통한 전문적 자산관리로 향하면서 점점 점포 수가 감소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라면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고령층의 투자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