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완장로님께 드리는 공개편지2
이정완 장로님 오늘도 무척 청명한 날씨입니다. 환절기에 몸 건강은 어떠신지요! 한로를 앞둔 절기여서인지 조석 기운이 선선합니다. 새벽녘에는 한기가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개울가에 핀 물억새가 갈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이장로님 첫 번째 편지 후 기획위원회의 결정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페이스북도 “죄송합니다. 현재 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만 보입니다.
오늘은 기획위원회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기획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번복하므로 우리 용두동교회에 얼마나 큰 피해와 상처 그리고 갈등을 유발 시켰는지 장로님들만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기획위원회에서 선교원 매각 결정을 하고서도 번복하므로 교회에 큰 금전적 손실을 끼치고 전임목사님 사임건도 기획위원회에서 결정하고서도 또 다시 번복하므로 장장 9개월을 갈등과 혼란 속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렇듯 기획위원회 장로님들이 결정한 사항도 스스로 지키지 않고 번복하시는 장로님들의 결정을 교회 누가 신뢰하고 따르겠습니까?
기획위원회의 권위와 신뢰가 이제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실추 되었다는 사실을 장로님들만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임목사님이 새로운 임지로 떠나시고 새롭게 부임하신 담임목사님이 오시고 기획위원회 장로님들이 신뢰와 권위를 회복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스스로 발로 차버리셨음을 모르십니까?
전임목사님을 보내드리고 새로 부임한 목사님을 맞이하며 장로님들이 조금만 더 생각하고 기도하며 팩트에 근거하여 행동하셨다면 그나마 조금씩 신뢰와 권위가 회복되었을 텐데 한쪽으로 편향된 이들의 말에 동조한 기획위원회 장로님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명령하고 협박하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어린에 겁주듯 하신 장로님들의 행동을 돌아보십시오.
팩트에 근거한 결정이 아니라 한쪽으로 편향된 이들의 말에 동조하고 그들이 작성한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을 내용증명으로 보내셨던 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기획위원회에서 협상하시라고 하신 장로님들과 협의하여 용두동교회자유게시판을 예수사랑커무니티라고 바꾸고 언로를 열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었지만 이 또한 번복해 버린 장로님들의 결정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임목사님나가시는 조건으로 합의 하신 내용 중에 용두동교회 자유게시판의 폐쇄를 권고한다고 합의 해놓고서 폐쇄한다고 합의 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 끝임 없이 패착을 두다가 1/4분기 임원회 때야 합의를 끌어내신 장로님이 권고한다고 합의 했다고 말씀하시며 일 달락 된 사실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장로님이 저에게 교회 혼란을 일으켰으니 교회에 용서를 구하라고 하신 말씀은 어떻게 목사님의 설교를 비평할 수 있느냐 네가 설교를 비평하므로 교회가 혼란에 빠졌다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그럼 장로님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전임목사님에게 편향되어있던 이들이 최목사님에게 어떤 짓을 하며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는지 누구보다 잘 아실 이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목회자의 설교를 비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고 저에게 사과를 요구하신 장로님이라면 최목사님의 설교를 비평하며 은혜가 안 된다 영적이지 않다며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에게는 따끔하게 충고 좀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이정완 장로님께 들이는 공개편지는 누군가의 잘 못을 따져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취지는 아닙니다. 이런 나눔을 통해 서로를 돌아보고 지난날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용두동교회가 주님보시기에 함당한 교회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성을 회복하여 가는 교회를 위하여 서로 합심하여 복음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자는 취지입니다.
"목사(장로)를 비롯한 모든 사역자에 대한 성경의 지침은 분명하다. 사역자로서 목사(장로)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의 계명을 준행해야 하는 ‘주의 종’이다. 그렇다면 ‘주의 종’으로서 목사(장로)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수 없다. 목사(장로)가 스스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높은 자’를 자처하는 한 목사(장로)의 직분은 결코 성경적인 직분일 수 없다는 말이다. 세상의 ‘집권자’는 권력을 쥐고 세도를 부리지만, ‘주의 종’은 작은 자를 섬기라는 주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낮은 자’가 돼야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목사(장로)는 교회의 주인이나 지배자가 아니라 예수께서 그랬듯이 생명을 바쳐 교회를 섬기는 종이 돼야 하며,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재물이나 권력이 아니라 희생이며 헌신이다. 목사(장로)로서 자기가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말하려면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바라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장로)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겸손한 종의 자세를 저버린 목사에게 ‘반성경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성경적인 판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장로)가 성경적인 직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은 목사(장로)라는 호칭의 기록 여부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낮은 자가 되라고 명령하신 주의 계명을 기꺼이 지키는 순종 여부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주의 뜻에 따르는 자는 성경적인 직분이며, 주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반성경적인 직분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책이라면, 성경의 원저자는 응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목사의 직분뿐만 아니라 장로라는 직분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장로의 자리는 교회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자리가 아니라 목사의 직분처럼 작은 자를 섬기라는 주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낮은 자가 돼야 하는데 교회를 지배하는 권력자이며 높은 자라고 착각하는 장로들이 우리 용두동교회에도 있는 듯합니다. 장로의 자리가 작은 자를 섬기라는 주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용두동교회 장로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장로님 저는 이번 추석연휴에 정말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석모도 섬에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집에서 정호승의 시집 <<여행>>을 펼쳤습니다. 인상 깊게 읽었던 <발에 대한 묵상>을 가만히 읊조려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발을 씻을 수 있는/기쁜 시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여기까지 길 없는 길을 허둥지둥 걸어오는 동안/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뜨거운 숯불 위를 맨발로 걷기도 하고/절벽의 얼음 위를 허겁지겁 뛰어오기도 한/발의 수고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이제 비로소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발에게 감사드립니다"(<발에 대한 묵상> 부분). 문득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마음이 고스란히 추체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고단한 삶 전체를 그렇게 가만가만 감싸주며 '애썼다'고 격려하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요?
이장로님 우리 용두동교회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감싸주며 ‘애썼다’고 격려하며 복음의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첫댓글 과연 기획위원회가 과연 권위와 신뢰와 섬김이 있습니까?
전임 목사시절에 한 개인 장로에 의해서 흔들렸던 시절은 잊으셨나요 장로님 여러분!
언제 어디서나 담임목회자를 향한 잣대는 엄정하며 일정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가 중심을 못잡는 것은 기획위원들의 중심없는, 신앙을 벗어난 아집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기획위원회에 묻고싶습니다.
전임 목회자가 떠날 때 3분 의 장로님이 은퇴하시고 3분의 목양장로가 생겼습니다.
과연 목양장로가 감리교 장정에 있는 겁니까? 교회내부규정도 없는 용두동교회 어디에 있는 겁니까?
목양장로의 근거를 기획위원회는 만들어야 하는데 주보에는 시무장로에 포함시켜놓고 기획위원회의에는 배재시켜버리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요.
최소한 감리교장정범위 안에서 교회내부규정을 만들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획위원회 자체 내에서 자신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획위원회는 성도들이 교회공동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