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창세13,2.5-18)(마태 7,6.12-14)
제1독서
<너와 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3,2.5-18
2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였다.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도 양과 소와 천막들을 가지고 있었다. 6 그래서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들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과 프리즈족이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9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보니,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1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요르단 들판의 여러 성읍에서 살았다.
롯은 소돔까지 가서 천막을 쳤는데, 13 소돔 사람들은 악인들이었고, 주님께 큰 죄인들이었다.
14 롯이 아브람에게서 갈라져 나간 다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을, 또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 15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16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자라야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7 자, 일어나서 이 땅을 세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고 가로로 질러가 보기도 하여라. 내가 그것을 너에게 주겠다.”
18 아브람은 천막을 거두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는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 생명으로 이끄는 문과 그 길” ♣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마태오는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과 삶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특히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학자들은 이 말씀의 전후의 말씀들이 전혀 다른 내용의 주제를 놓고 주장합니다 주님께서
각각 다른 기회에 하신 말씀을 연결하듯 편집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얼핏보아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개는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개가 사람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개와 같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되는 것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주님께서 표현하신 '개'는 누구일까요? 사실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차원이 다른 개가 하느님과 관련된 '거룩한 것'을 알턱이 없겠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표현하셨던 말씀을 따라봅니다.
가나안의 여인이 호되게 마귀에 들린 자기의 딸을 구해주십사고 주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여기서 주님께서 표현하시는 의도는 그녀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대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모르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가능할 수 없다라는 간접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 여인은 주님을 전적으로 믿음으로써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28절)
그렇다면 말씀하시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은
그 강아지라고 표현한 그 여인이 주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으로서 딸의 치유를
받은 것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류, 다시 말해서 당시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씀은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6절)
그러면 앞 문장의 '개'와 '돼지'는 같은 의미로 봐야 할 것입니다. 개나 돼지가 '거룩한 것'이나
'진주'를 알아 볼 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돼지'도 하느님의 나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당신의 말씀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해까지 입힐 가능성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종래에는 바리사이, 율법학자, 사제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주님을 폭력으로 제제하며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상황을 예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구원에 대한 말씀을 아무리 외쳐 바도 그들은 그 가치를 모를 뿐 아니라
박해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의 글자해석을 삶의 기준으로 삼던 종교지도자들에 방향전환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법으로 법의 제시가 아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법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고집을 버리고 양보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따라 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끝내 주님의 이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율법위주의 판단을
떠나지 못하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당시 바리사이들이 바라는 안일하고 수동적에서 벗어나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좁은 문'과 험한 '길'로 향하라고 독려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머리를 수그립니다. 우리는 '넒은 문'과 '편한 길'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소중한 말씀을 새기며 한 걸음 더 주님 나라로 향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