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영화 즉 아메리칸 뉴시네마라고 일컬어지는 작품군에 속한 영화들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흔히 이 시기의 영화라고 하면 젊은이들의 패기나 반항의 기운으로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그 외에 모호함, 무언가 감춰져온 비밀을 한순간 깨우쳤을때 느끼는 공황감, 그리고 마침표를 찍을수 없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기분들이 또한 뉴시네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감정적 상태 일 것이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졸업> <컨버세이션(도청)> <더티해리> 등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미드나잇> 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죽음을 지켜보는 친구의 표정, <졸업>에서 결혼식을 뛰쳐나와 버스안에서 짓는 더스틴 호프만의 마지막 표정에 그것들이 잘 드러난다. <더티해리>의 라스트, 이스트우드가 범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얻는 감정은 정의의 승리나 해결의 해방감이 아니다. 오히려 이스트우드의 눈은 범인을 넘어서 그위에 존재하는 구조를 향해있고, 그 눈은 해결되지 않는 분노에 방향감각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도청>에서 진해크만의 시종일관 혼란스러운 표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포인트 블랭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배신자를 처단하고 결국 그 돈을 얻을수 있게 까지 도달하지만, 리 마빈은 그 돈을 선뜻 집어들면서 우리에게 승리의 감정을 전해 주지 않는다. 그는 어두운 공터에 놓여진 돈뭉치를 내버려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살인을 마다하지 않고, 어두운 세력과 손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마침내 얻게된 승리 앞에서 리 마빈은 오히려 주저한다.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결말에서 전해지는 이 모호하고 알 수없는 공허감은 역시 그 시대의 영화와 사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시기 어떤 대자본을 가진 조직은 미국의 역사나 사회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의심해야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조직의 구조를 끝까지 파고들어가 그들의 맨얼굴을 보기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몸을 불사르고 마침내 그것과 대면하지만 결국 그들이 얻는것은 무력감이고 어디로 분출해야 할지 모르는, 해결되지 않는 분노인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첫 세대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예전엔 분노만이 보였는데, 이제 분노뒤에 숨겨진 혼란과 상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첫댓글<더티해리>에서도 그렇고, 이영화서도 누가 나쁜놈,정의로운편도 없이 다 폭력적이고 살인도 잘하고,<컨버세이션>에서 진 핵크만이 끝에 온잡안을 다 뜯어내고서도 발견하지못한 도청장치, 누가 도청하고 누가 도청을당하는건지 알수없는..모든것이 선악이 분명치도 않고,허무한 느낌이 강한거같아요.. 리 마빈은 돈도 가져가지않고 그는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첫댓글 <더티해리>에서도 그렇고, 이영화서도 누가 나쁜놈,정의로운편도 없이 다 폭력적이고 살인도 잘하고,<컨버세이션>에서 진 핵크만이 끝에 온잡안을 다 뜯어내고서도 발견하지못한 도청장치, 누가 도청하고 누가 도청을당하는건지 알수없는..모든것이 선악이 분명치도 않고,허무한 느낌이 강한거같아요.. 리 마빈은 돈도 가져가지않고 그는 어디로 사라진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