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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살릴 신앙의 강력한 원동력
행 9:1-22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 학습의 동기를 갖게 되면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의를 가지고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어 성적향상을 이루기에
선생님들은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의 어떤 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하게 된 학생,
그리고 지금은 아직 확고한 꿈이 없지만 나중에 꿈을 가졌을 때
선택지를 늘리길 원하는 지혜로운 학생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놀고 싶은 마음, 더 쉬고 싶은 마음 등을 뒤로하고
자신의 의지로 성적을 올리기 위해 스스로 성적향상을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영어단어나 암기과목의 내용을 외우며,
자신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익히고 넘어가기 위해 반복학습을 이어가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변형 출제될 문제에 대비합니다.
그렇게 남들이 현재 즐기고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낸 학생들은
공부하는 학생신분으로서의 성실함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여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여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반면 꿈만 크게 가졌거나, 수고하지 않고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여
동기와 의지가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남들과 비슷하게 적당히 하다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면서 더 많이 놀고 싶은 마음, 더 쉬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 모습으로
성적향상을 위한 시간은 어떻게든 최소로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놀면서 쉬는 것에 사용한 학생들은
자신의 약한 의지와 게으름을 증명한 모습으로 진학에 실패하거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취업을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기피하는 직업을 갖게 되거나,
일확천금의 요행만을 노리는 사람이 되거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죄와 관련된 음지의 일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게 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예를 든 이 두 사람 모두에게 하루 24시간이라는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은 동기와 의지의 유무입니다.
학습의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위해 학업에 힘쓰는 학생,
그리고 동기와 의지가 없거나, 혹은 동기만 있을 뿐 의지가 없는 학생은
일상생활의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인다 해도
머릿속에서는,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학업의 동기와 의지가 확고한 학생은
일상생활 중에도 성적향상을 위한 생각을 떨치지 않기에
짬이 났을 때 그동안 외운 단어들을 머릿속으로 되뇌기도 하고,
혼자 있을 때에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지만
의지가 없는 학생은 성적향상의 소망만 크게 가졌을 뿐
학습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싫어하여
다른 학생들이 쉬면서 노는 것처럼 보일 때 마음 편히 같이 놀고,
다른 학생들이 집에서 혼자 학습을 하고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렇게 최종결과는 하늘과 땅이 차이로 벌어지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던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본
생애 최고의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나태함을 버리고, 성실하게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이기에
어딜 가서 무얼 하든지 좋은 의지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노력을 다했어도
결국 이루지 못하는 부분은 누구에게나 분명히 존재하며,
또한 동기와 의지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결국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으며,
스스로도 만족하는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학력이 어떻든지, 직업이 뭐든지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중심과 신앙과 순종을 보시는 분이기에
우등과 열등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시지만
아시다시피 세상 사람들의 기준은 철저히 학력과 재능과 재력이기에
출세/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열등하게 여기며, 쉽게 하대하고, 조롱합니다.
그렇기에 학생 분들은 지금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보이겠지만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훌륭한 직업을 가져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어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되지만
학력이 좋지 못하고 직업이 없어서 세상에서는 무시를 당해도
늘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가장 사랑하면서 순종하면
그 인생은 분명히 성공한 인생이라는 이 명확한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다들 경험해본 학창시절의 학업을 통해 예를 들었지만
살아가면서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동기부여’와 ‘의지’는 강력한 추진력의 근원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 7:55-8:1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바울(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을 재판도 없이 불법으로 처형한
증오와 살인의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다가 나중에 유대교로 개종한 유대인 중의 한 명이 아니라
혈통적으로도 순수한 유대인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켰으며,
그 당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산헤드린의 지도자,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산헤드린 - 당시의 입법, 사법을 모두 관장했던 최고기관으로서
왕과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이곳에서 제정된 법은 이스라엘 전체에 공표되었으며,
다른 나라와의 전쟁도 선포할 수 있었던 사실상 최상위 권력을 가졌던 곳)
다시 말해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율법을 수호함에 있어 그 누구보다 철저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심하게 박해한 동기는
그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경외였습니다.
하나님은 경외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알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성실하게 처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신실한 경외와 복종의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함과 복음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그를 택하셨고,
예수님의 존함을 위하여 고난 받게 될 종으로 삼아주시며,
그를 친히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갑자기 멈추고,
이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증언하기 시작한 바울의 모습을 본 유대인들은
그를 배도자로 여겨 죽이기 위해 공모했습니다.
즉 바울은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모든 지위와 인맥과 평판과
사회적 성공과 재산을 모두 포기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예수님을 증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철저히 경외하며, 충성하면서 사랑했던 그의 마음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더해져
그의 동기는 더욱 확고해졌고, 이후로는 천국복음의 전파 사명에 평생을 바쳐
모든 의지를 쏟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평가 받는 자,
비록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함께 다녔던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대위임령에 가장 충실히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고후 6:4-10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에 속한 모든 좋은 것들을 이제는 다 배설물로 여김으로서
쉽게 손에 쥘 수 있었던 권력과 재물과 유명세의 성공가도를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 생각지 않으며,
오로지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고백하는 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아감으로서
바울의 생애는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전 7:18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신앙에도
바울이 품었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동기부여와 의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태초부터 나를 먼저 사랑해주셨고,
지금도 여전히 뜨겁게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와주시어
나를 죄악에서 구해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며 대신 죽어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나의 평생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들과 회개의 기회들,
나에게 임해주신 성령님께서 오늘도 나를 위해 해주고 계신 모든 일들,
그 하나님을 이제는 나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최우선 할 수밖에 없는,
이제는 그 복종이 즐거워진 마음의 동기를 가진 사람은
누가 억지로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기도’로 예를 들어보면
너무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도, 밤 깊은 새벽에 자다가 깼을 때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하라고 명하시면 “네, 알겠습니다.”하며
즉시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품은 자로서
신앙의 동기가 부여되어 있기에 스스로 품은 의지를 가지고 지혜롭게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고만 있는 상태로
낮이나 밤에도 기도하지 않고, 새벽에 깨서도 기도하지 않은 채
그저 육신의 욕망을 따라 다시 잠을 청해버리는 사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과 복종의 마음이 없거나
극히 부족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진 자입니다.
신앙의 동기부여가 되어있지 않고, 의지도 없기에
육신적 선택을 서슴없이 하는 것입니다.
방금 예를 든 기도와 관련된 부분 외에도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잠 6:9-11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진지하게 상상해보십시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심판의 그 날에 하나님과 천사 분들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한 후 하나님께로부터 책망과 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
마귀와 귀신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당하며 괴성을 지르면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 자들 중에
만약 내가 포함된다면?‘
지금의 내 영적상태, 즉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으며 미지근하게 세상에 한 다리를 걸친 채
불순종과 죄 가운데 머물고 있는 지금의 이 삶으로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데도
여전히 동기부여 없이, 어떤 의지도 없이 끝까지 게으르고 나태하게
육신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어도 정말 괜찮은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십시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랑이 아니라
그저 지옥이 무서워서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의 출발과 동기가 잘못된 것이기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이 무서워서라도 신앙생활을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생각조차 품지 않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습니다.
출발은 잘못되었을지라도 말씀묵상과 기도와 순종을 통한 참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을 고치고,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뉴스에서 전쟁소식이 보도되거나, 전쟁소문이 들리거나,
지진이 발생하는 등의 마지막 때 징조들이 보이면
두려운 마음에 회개하고, 당분간 죄 짓는 걸 꾹 참고 지내다가
다시 잠잠해진 것 같으면 안심하면서 또다시 죄 가운데로 돌아가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심각한 영적 질병이지만
그래도 아무런 마음의 변화도 없이 ‘그게 지금의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며
오직 자신의 육신적 욕망과 탐심만을 따르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변화되어 돌이킬 기회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눅 13:23-24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우리가 반드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모든 학생들이 전부 다 좋은 성적을 이룰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직업을 가질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하신 예수님 말씀의
‘못하는 자’ 중의 한 명이 될지,
끝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 자, 자신을 쳐서라도 복종시키는 자,
어떻게 해서든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될 자 중의 한 명이 될지는
각자 자유롭게 오늘, 지금부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유의지도 모두 갖고 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의 시간, 그 은혜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 말씀을 많이 배웠기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구원의 길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사람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타락한 존재가 맞습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 멱살을 잡고서라도, 저를 많이 때려서라도(고난),
즉 강제로라도 다만 저를 악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저를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고 기도한대로 하나님의 인도해주심에 복종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빌 3:11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해가 되든지 되지 않든지, 좋든지 싫든지, 무엇을 명하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에 변명 없이 복종하는 것을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삼아
각자의 삶속에서 한 가지씩 변화 되어가며 성장해가야
예수님을 닮은 자로 장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옥을 면하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에는 어떤 후회도 없으며,
나중에 감사만 가득할 것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늘 기억하면 순종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너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지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일단 한 발을 떼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내 나아가지 못한 채 주저앉을 것이고,
소수의 사람들만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끝까지 통과하여 구원에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그렇습니다.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다른 큰 교회 목사님들은 ‘안 그래도 세상살이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평안하게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며,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구원 받을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를 자주해주는데
왜 자꾸 사람들 불안하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수가 적을 거라는 불편한 말을 강조해요?
그러니까 교회가 작고, 성도들도 적지...쯧쯧. 평생 그렇게 사세요.“ 하며
불만의 기색을 나타내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주신 경종의 말씀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편안하게 해줄 대형교회를 찾아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묵상해 봐도,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종합해 봐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경고해주시는 말씀들을 들어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할 것이고,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만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며,
또한 이것이 확실한 성경적 가르침입니다.
더불어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확실히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고 있는 분들은 이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좀 더 불편한 마음을 가지며,
거룩한 근심을 항상 해야 합니다.
본디 모든 사람은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때 영적으로 나태해지며,
쉽게 욕심과 욕망에 이끌려 결국 죄의 노예가 되는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5:3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롭게 기도하며,
우리의 영혼을 깨워주시는 성경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각성하며,
삶속에선 치열하게 영의 싸움을 싸워 이기면서 자기를 부인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야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마귀도 의미 없어진 정죄를 멈추고, 떠나갈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쏙쏙 골라서 해주며,
집회나 예배 때마다 어떻게든 성도들의 마음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고,
문제해결을 위한 직통계시라며 고민들에 맞춤 응답을 대행해주며,
귀신을 쫓아내주고, 병을 고쳐주겠다고 홍보하면
사람들은 사방에서 구름처럼 몰려들게 될 것이고, 그렇게 쉽게 교회는 양적으로 부흥합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진짜 설교도 할 수 있는 거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 이렇게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귀신이 안 나가거나 다시 들어오거나 병이 낫지 않거나 재발하면
성도의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며 책임을 전가하다가 결국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며 내쫓는,
성도들이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목사들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다만 부유하여 헌금을 많이 하는 성도들에 대해선
어떻게든 끝까지 돌보며, 도와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국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설교자로
이름도, 빛도 없이 가난 중에도 묵묵하게 사역하고 계시는 진짜 목사님들이
대형교회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안하고 계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두려워하며 존경하기에),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자신도 준비하고 있기에
성도들이 듣기 싫어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만을 가감 없이 전달하기를 힘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여러분, 누구나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의 확신만 가지면 됩니다.”라고 설교하여
좁은 문과 협착한 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복종을 경시한 성도들이 늘어남으로서
결국 지옥에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때는 그런 설교를 한 목사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믿으면서 듣기 좋은 말에 속아 넘어간
각 사람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씩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각자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말씀에 확실히 기록된 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선악 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종류의 메시지가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설교인지
마지막 날에 모두가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디 늦어버리기 전에 성경말씀을 스스로 묵상하여 영분별을 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따르시기를 축복합니다.
마 15:13-14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가 마땅히 나아갈 길을 밝히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아무런 의문 없이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각자 자기 신앙의 동기를 점검하고, 스스로 의지를 가짐으로서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한 명이 꼭 되십시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권속으로 확정 받으십시다.
이 선택에는 어떤 후회나 미련도 남지 않을 것이며,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만 하게 될 일입니다.
벧후 3:10-14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이 다 불타서 없어지게 될 것을 지혜롭게 미리 인지하고,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전부 배설물로 여김으로서
각자 마음속의 질기게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며, 자기를 부인하십시다.
도저히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우상들,
영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게으르고 나태한 습관, 잘못된 가치관과 고정관념, 군중심리,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시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안일함 등
하나님 경외함에 대한 동기부여와 신앙의 의지를 틀어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버리고,
이제 새롭게 태어난 모습, 즉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모습’이 되어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경외하며, 사랑으로 복종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엡 5:14-17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촉을 해주고 계십니다.
“늘 깨어서 기도하며, 순종으로 내 앞에 설 것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를 정말로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 가득한 촉구를, 긍휼과 은혜의 권면을 거부하지 말고,
말 그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하십시다.
그 사람들만 살 수 있습니다.
마 18:8-9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떤 점에선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 앞에서, 특히 마음이 무겁고 힘든 일 앞에서
즉시 하나님 중심으로 선택하여 복종하는지,
아니면 욕심과 자아를 따라 하나님의 뜻은 버리고
결국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는 불순종을 하는지에 따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믿음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각 사람이 가진 신앙의 동기부여와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각자 자신이 가진 신앙의 동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홀로 시간을 내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단지 지옥에 가기 무서워서인지,
종교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누리기 위해서인지,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신적 안전을 보장 받기 위해서인지,
즐거운 인간관계를 영위하기 위해서인지, 교인들을 상대로 한 영업매출의 증가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모든 것들은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나를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나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을 사랑해서인지,
그래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복종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를
진지하게 점검해보십시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영원한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이기에
반드시 진지한 태도로 솔직하게 점검해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바르게 정립되고, 정리되어야 참된 신앙생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성공의 인생을 살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복종하는 진실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홀로 위대하신 분,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사랑하며,
충성을 다해 복종함으로 하나님께 속한 권속으로서의 면모를
삶의 모든 곳에서 드러내십시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며,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잘 마치는 저와 여러분들,
언제 갑자기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해도
후회가 없을 인생을 지금 살아가는 우리가 다 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각자의 삶에 즉시 적용함으로서
자신의 마음속 신앙의 동기는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복종할 의지는 있는지,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등을 깊이 고민해보고,
모든 기회가 다 지나가서 늦어버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준비를 후회 없이 완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 24:40-51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5.07.06.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38장 만왕의 왕 주께서
1.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그 보혈 흘렸네
2. 주 십자가 못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3.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후렴]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