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회 문장 신인 작가상 시 당선작 김부명
시 심사평
성공적 형상화와 서정적 개성을 깃발로 꽂은 갈까마귀
안윤하(글)
이번 겨울호 신인상에 제출된 원고 중 한 분의 원고가 130편이었다. 지금까지 5년간 시 창작 교실에서 쓴 시라는 메모가 있었다. 먼저 읽기도 전에 시 창작의 열정이 묵언으로 전달되는 듯했다. 또한 빠르게 읽으며 그의 시심의 맑고 아름다운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갈까마귀’-공군 K2의 관제사로 대구 팔공산에서 근무하였다. 근무 중 느껴지는 비로봉의 긴장감과 텅 빈 하늘과 태풍 같은 바람이 거칠은 외로움을 느끼게한다. 우레 같은 전투기들 사이에 먼 이어폰으로 들리는 비행기들의 작은 소리에도 국적을 구별한다는 대목에서 한국의 하늘을 지키는 전문성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근무 중 이어폰의 지속적 착용으로 말미암아 고막의 기능 저하로 보청기를 훈장처럼 받았다. 이어폰과 보청기의 대칭이 대유법으로 성공했다. 지금은 보청기를 끼고 비로봉의 안테나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살아가는 갈까마귀로 형상화하였다. 작가만이 경험으로 쓸 수 있는 개성적인 시이다.
‘장독’-작가는 옹기의 태생과 기능을 생명 순환으로 풀어간다. 황토에서부터 숨 쉬는 옹기로 태어나는 탄생을 서정적 필체로 표현하였다. 거기에 된장을 담아 전통 장으로 발효되는 과정을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의 불룩한 배로 은유하며 자연과 생명과 조화로운 삶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된장이 익으며 나오는 기체 소리에 ‘바람도 돋음발로 지나간다.’는 표현은 새 생명의 탄생을 성스럽게 느끼게 한다. 그런 철학을 품는 장독을 자신에게 이입하며 참선하는 노련미를 나타내고 있다.
‘6월 개구리’-유월의 시골 저녁의 풍경을 개구리 울음소리를 매개로 어린시절 신발에 가득 고인 추억에 젖는다. 작가는 지금은 잘 들리지 않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그리워하며 유월을 반추한다.
‘반야월 오일장’-시가 잘되지 않을 때 사람들과 소리와 향기를 느끼러 장터에 간다. 사람과 농산물과 해산물이 가득한 반야월 장터, 이 시의 성공은 마지막 연에서 볼 수 있다. 오일장에 가서 들고 오는 것이 사람 목소리이고 그 ‘목소리를 두팔 아프게 담아 온다’에서 작가가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며 그리워하는지 절절한 감성이 배어나는 대목이다. 또 이 문장으로 시인의 감성이 아주 세심하며 시적 이미지 증폭에 성공하고 있다.
‘가을에는’-작가는 자신의 삶을 늦가을 풍광에 감정 이입하였다. 풀씨의 뒷모습을 보기도 하고, 떠나는 철새 날개의 무거움을 보기도 한다. 황홀한 순간에 이룬 씨앗을 봄 토양에 뿌리내려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윤회의 소망을 가꾸며 자신의 생을 희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작가의 한 권의 책은 바로 묶을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부디 열정을 키워 새 지평을 이루기 바란다.
심사위원 박윤배, 박태진, 조명선, 손진은, 안윤하
신인상 시/ 김부명
갈까마귀 그곳은 가팔진 꼭대기 바위 덩어리 제멋대로 뒹구는 폭풍치는 하늘만이 살아있는 곳 나는 그곳에 관제사로 청춘의 깃발을 꽂은 갈까마귀였다 레이다 망에 뚫어지게 시선을 꽂고 고성능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박제되었다 이어폰 속 K2에서 뜨는 우레 같은 독수리 굉음을 넘어 천 리 밖 작은 비행기의 소리만으로 북한기인지 일본, 중국, 팬텀긴지 구분해 내는 갈까마귀 하늘! 텅 빈 하늘! 태풍 전야 같은 하늘! 숨막히는 하늘을 지키며 내 전 생애는 비로봉 바위 위 안테나에 꽂혀 풍장되었다. 훈장으로 받은 보청기는 늙어가고 나는 귀 먹고 눈 먼 팔공산 갈까마귀로 헛헛하게 낡아가고 있다 장독 애초에 나는 감자밭의 붉은 흙 황토 층층이 쌓여 불구덩이 속에서 터지지 않고 숨 쉬는 장독으로 살아남았다 불룩한 아랫도리의 곡선을 자랑하며 전통 장을 잉태하여 햇살과 구름을 움켜쥐고 깊은 호흡을 한다 내 품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숨결을 교환하고 맥을 맞추기도 하고 맛을 품기도 한다 내 들숨이 쌓이며 그들은 순도 높은 날숨을 뱉기 시작한다 바람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돋음발로 지나간다. 나는 햇살 가득 먹고 누런 장을 분만할 때까지 참선하며 단전 호흡한다 고.요.하.다. 유월, 개구리 짙은 숲속에서 졸다가 놀란 꿩이 푸드덕 날고 뻐꾸기 산향에 취해 노래하는 유월 시골집 늦은 저녁 마당 멍석 위에 차린 두레 밥상에 뛰어들던 울음소리 개구리참외의 검푸른 등껍질에 떠돌던 울음소리 마실 길에 지천으로 밟히던 울음소리 논둑 미루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열리던 울음소리 이슥한 밤 번쩍이다 잠 속까지 뛰어들던 그 울음소리 발길에 차여 비명처럼 나뒹굴던 울음소리 뜨락에 벗어놓은 신발 속에 눈물처럼 고이던 개구리 울음소리 나는 혼자서 들리지 않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생각 가득하게 채우며 유월의 한가운데 오래도록 서 있다 개굴개굴개굴개굴 반야월 오일장 사람이 그리울 때 시집을 덮고 반야월 장에 간다 잘 익은 포도에서 포도주 향이 날린다 주렁주렁 쌓인 능금과 감 붉은 고추를 파는 아낙네가 정겹다 가을 해 품은 늙은 호박 덩이를 리어카에 싣고 콩과 팥과 고구마를 팔고 잔돈 내어주는 농부 고등어 갈치 조기를 늘어두고 바다 내음을 풀어내는 낯선 어전 상인도 반갑다 당근 총각무 돌미나리 좌판 앞에 시름없이 쪼그리고 앉은 노파의 손등에는 인고의 세월에 젖어 얼룩진 검버섯이 애련타 사람 향기 가득한 반야월 오일장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목소리 시끌벅적하게 담아 두 팔 아프게 들고 온다 가을에는 가을볕이 내리비치는 자작나무 숲 바람에 흔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손잡고 타박타박 낙엽을 밟으며 걸어보리라 볼 붉은 맨드라미의 작은 풀씨가 더 멀리 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른기침 삼키며 쇠잔한 일기를 쓰리라 남녘 철새들이 쓸쓸하게 남긴 자리에서 달빛에 흔들리는 강물처럼 머뭇거리다가 빛바랜 이별을 준비하며 그들의 무거운 날개에 공감하리라 가장 황홀한 순간 익어가는 붉은 능금의 껍질 속에서 나는 봄에 피는 꽃씨로 익어가리라 |
당선 소감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제 작품을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문학에 대한 꿈을 꾸면서
백 년 전 시인들이 쓴 명시를 주로 읽었다
시인 100명이 추천한 한국인의 애송시 100편은
주로 1920~30년대의 시이다
백석과 상화, 소월과 영랑, 윤동주와 이 육사 등을
닮아가려고 했다
6년전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김수영과 김춘수를 배우고
현대 시의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날로 새로워지는 시의 패턴을 연구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기회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혼자 공부했더라면 과거의 시 창작 방법을 답습했을 것이다
힘이 달려 주저앉고 싶었을때, 용기를 북돋아주는 좋은 소식이 왔다
제 시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안윤하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문학은 제2기 인생의 시작으로 만들어야겠다
의성 생
의성초등학교 졸
안동경안고 졸
공군30 방공관제단에서 군 복무
영남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 5년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