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김인현 명예교수, “선장교수가 체험한 바다이야기” 특강
영덕출신
김인현 고려대 교수는 영덕노인대학이 주최하는 실버아카데미(원장 조용택)에 강사로 초대되어 “선장 교수가 체험한 바다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24.11.8. 오후특강을 했다.
김교수는 자신은 축산면 염장의 안동김씨 집성촌이 본가이고, 달산 인곡이 외가임을 소상히 밝혔다. 축산항에서 수산업을 하던 집안(조부 김용한, 부 김세동)에서 태어나 영해중 영해고를 졸업하고, 1982년 한국해양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후 일본의 산코라인이라는 상선회사에 근무했다. 그 후 고려대 일반대학원 법학과에 들어가서 법학석사와 법학박사를 마친 다음 1999년부터 국립목포해양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부산대학을 거쳐서 2009년부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로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금년 9월 1일부터는 고려대 명예교수 겸 해상법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김교수는 이어서 자신이 체험한 재미있는 바다이야기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자신이 출간한 “바다와 나”, “선장교수의 고향사랑”, “바다와 배 그리고 별”이라는 세권의 수필집에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고기잡이에 사용되는 어선이 김교수의 집안에서는 6.25. 동란에 울산 방어진 및 부산으로 선원들과 가족들이 피난가는 운송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선으로 고기잡이를 하면서 피난생활을 비교적 쉽게 넘겼다. 고마운 어선이다.
(2) 어릴 적 선원들이 시운전시 뱃머리에 나가있으라고 하였다. 어선이 심하게 흔들려 멀미를 조금 했다. 이것이 나중에 한국해양대 3학년 실습을 할 때 멀미를 오히려 하지않게 된 비결이 되었다. 덕분에 동기생들에게서 김인현은 아주 강인한 친구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3) 동해안에 나는 생선중 가장 맛있는 것은 꽁치 회이다. 꽁치는 살결이 너무 부드러워서 시간이 지나면 회를 만들어 먹을 수가 없어서 영덕사람들만 꽁치회를 먹을 수 있다. 물곰, 도루목도 맛있는 생선이다. 미역은 돌미역과 자연산이 있다.
(4) 동해안의 오징어 건조는 농촌에서 송아지 키우기와 비교된다. 10월에 100만원을 투자하여 오징어 생물을 사서 건조를 하면 3월에 400만원으로 판매가 된다.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이 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위해서 오징어 다리를 하나 떼어낸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오징어 다리는 10개가 아니라 9개라고 알기도 했다.
(5) 적도(赤道)는 한자로 적으면 붉은 띠가 된다. 상선을 타면 선장이 항해사에게 적도를 지날 때 붉은 띠를 찾으라고 지시를 한다. 아무리 찾아도 바다에 붉은 띠가 없다. 선장은 말한다. “이 친구야, 그 넓은 바다에 어떻게 띠를 치겠느냐. 적도는 해도(지도)에 그려져있다. 붉은 색칠이 된 선을 찾으면 된다”. 이것은 바다에서 철모르는 초임자를 놀려먹는 방법이다.
(6) 적도에는 바람이 없다. 그래서 옛날 범선은 항해할 수가 없었다. 적도지방은 무덥다. 그래서 선원들이 견디기가 어려웠다. 용왕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짐승을 바다에 제물로 바치고 바람을 만들어 달라고 빌었다. 적도제의 유래이다.
(7) 현재는 자신의 위치를 쉽게 구한다. 네비(Navi)라고 불리는 GPS이다. 이것은 바다에서 시작된 인공위성 항법에서 유래했다. 옛날 옛적에는 별자리를 보고 고도를 재어서 위치를 내게 되었다. 안개가 끼면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8) 등대는 소중하다. 사람들에게 위치를 알려준다. 그런데, 등대의 주위는 또 위험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좌초사고가 난다. 등대는 반짝이는 주기가 모두 다르게 되어있다. 반짝이는 주기를 알면 그 등대가 후포 등대인지, 축산항 등대인지 구별하여 알 수 있다.
(9) 상선은 크기 때문에 연료로 사용되는 기름이 많이 필요하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아지므로 기름이 딱딱해진다. 그래서 열기를 가한다. 그 기름이 들어있는 공간 바로 위에 화물이 실린다. 화물로 실린 옥수수가 봄이 온 것으로 착각하여 싹을 티우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불량 상품이 되어 수입자가 받지를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10) 파나마 운하는 호수를 지난다. 호수는 비중이 1.000이기 때문에 비중 1.025인 해수에 있던 선박이 호수로 들어오면 20센티미터 정도 더 가라앉게 된다. 부산항을 떠날 때 이런 성질을 알고 여유분을 가지고 떠나야한다.
(11) 고향이 바닷가인 영덕이었기 때문에 장점도 많았다. 파도를 통해서 성실함을 배웠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부딪치는 파도는 끊임없이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한다. 참으로 성실하다. 바다는 변화무쌍하다. 이를 통해서 상상력을 키웠다. 수필을 잘 쓰는 토양을 고향에서 배웠다.
(12) 나는 고향 영덕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다. 영덕군지를 공부한 바가 있었다. 지도교수님의 조상님이 17세기 영해부사를 지냈다. 지도교수님 집안은 “영해”가 어딘지 몰라서 다른 집안으로부터 족보가 가짜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 조상님의 영해부사 기록을 지도교수와 평해온천 방문시 영덕문화원에 들러서 내가 찾아주었다. 그 후로 지도교수님께서 나를 무척 좋아하고 수제자로 삼아주셨다. 고향을 사랑했기에 영덕에 대한 역사를 했고, 그 결과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김교수는, “저는 늦게나마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고려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영해고를 다닐 때에는 고려대는 견주지도 못한 일입니다. 꾸준히 목표를 삼아 성실하게 생활한 결과 좋은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고향에 자란 후배들은 누구나 저와 같은 잠재력이 있습니다. 영덕에 있는 고등학교를 보내도 훌륭하게 자랄 수 있으므로 자녀들, 손주들, 영덕의 학교로 많이 보내주십시요”라는 호소로 강의를 마쳤다.
고향의 아들인 김교수의 고향과 바다를 중심으로 한 강의에 참석한 수강생 70여명은 그의 에피소드에 크게 공감하면서 환호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는 영해중고 총동창회장을 역임하고 영덕군 장학회 이사, 영덕교육발전위원회 이사, 재경영덕군 향우회 상임부회장으로 고향을 위한 활동하고 있다. 김교수는 후배 8명과 같이 12.27. 4년째 지속되는 “영해중고 학생들을 위한 진로특강”을 진행한다. (captainihkim@korea.ac.kr, 02-3290-2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