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옥동네의 전설]은 네 가지 소설이 연작형식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그 네 가지 소설을 거의 동시에 연재되기 때문에 읽는 이들에게 그 소설들 각각에 대한 정체성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그것들 각각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자료를 제공합니다. 애독자들께서 계속 읽어내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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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1. [외팔이 심문모]는
일본에서 4년제 중학과정에 해당할 수 있는 4년제 기술학교를 마치고 해방을 맞아 귀국해서 고향 대구 집 부근의 메리야스 공장의 기계기술공으로 취업했다. 그러다가 노조원들과 갈등이 생겨 격투가 벌어지자 노조원 지막철이 휘두르는 낫에 왼팔의 팔목 아래를 잘리게 된다. 원래 문모는 학생 시절 검도를 익혀 일본 검도 공인 2단을 인정받은 실력이라 귀국하고도 검도 수련에 몰입해 있었다. 그런데 팔이 잘려서 제대로 검도를 할 수 없었지만 나름 외팔로도 검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가면서 계속 수련했다. 그러나 불구자의 삶이 여의할 수 없었다. 사고를 저질러 학생을 다치게 하여 구속되어 심문을 받다가 여러 달만에 풀려났으나 열등감과 자괴감 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가출했다. 가출해서 팔공산 아래 산골 마을에 막 개척된 금암리교회에 몸을 의탁해서 지냈다. 담임 목회자인 김주식 전도사/조사가 거두어 줌에 따라 교회 안팎에서 봉사하면서 그의 권함으로 신학을 공부했다. 성경학교와 신학교에 다니게 된다. 신학교는 신학을 한 시내 목사가 개인지도함으로써 체계적인 신학을 지도받게 된다. 그렇게 지도 받아서 교단의 인정을 받아 목회자가 된다.
그러는 동안 전쟁이 터지자 교수 지도해 준 목사의 소개로 불구자 재활 사업을 하는 교회에 조사로 취업이 된다. 그 재활 사업장이 전쟁과 함께 상이용사들을 대상으로 재활 사업장으로 바뀐다. 문모는 바로 그 사업장을 관리 경영하는 책임 목회자가 된다.
한편 그의 팔을 잘라먹은 지막철과 함께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끌어온 곽양수를 원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인연이 묘해서 전쟁이 나자 곽양수는 아내와 아들을 버려두고 정부인 전매리와 함께 공산당 활동에 몰입해서 인공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전쟁이 역전되자 지리산 공비가 된다. 한편 버려진 아내와 아들은 그들이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고향 진주 쪽으로 피란하겠답시고 나섰다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미군 군목이 구출한다. 그 구출된 곽의 아내 함안댁 옥미우 모자를 문모가 거두어 보호하다가 가정을 이룬다.
전설2. [세포와 풍경화]는
6년제 중학교 상급반 중학생들인 황준호, 김종대, 이윤옥, 조숙자와 조철자 자매, 민곡지, 등과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또래인 심길자 등이 해방 조국의 대구의 중학교(경구중, 경구여중, 공업중 등)를 중심으로 좌우익으로 시민 의식이 나뉘고, 정치적 단체가 양분되어 투쟁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학교에도 그대로 침투되어 학생 사회가 그런 식으로 나뉘어 갈등이 빚으면서 학창생활이 이루어진다. 그들을 둘러싼 경찰, 신문사, 교회, 학교, 정당, 노조 등에 속해 있는 기성세대의 사회가 일제 식민지를 벗어났으나 미-소 양국 군대가 진주해서 군정을 하는 체제 아래 자주 독립 국가, 민족 자주성 확보를 위한 투쟁, 새로운 국가 형태와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쪽과 분단이 불가불이라 이를 현실로 받아들여 선 국가 건국, 후 통일 모색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일방 일제의 잔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일어나면서도 일제의 잔재가 생활 도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으로서 학제의 변경과 교육과정의 변화가 배우는 학생은 물론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대단한 혼란과 짐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언어교육인 국어와 국사 교육과 교사의 양성은 초미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해방 초기에는 반탁과 친탁으로 좌우 이념적 대립이 투쟁적으로 나타나더니 삼팔이남의 단독 정부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단정(이남 단독정부) 반대와 찬성 진행으로 좌우 투쟁이 격화된다. 그 사이에 대구 십일 폭동이 일어나고 그 여진으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지하운동으로 변하면서 오히려 더 악질성 반사회적 행동으로 나타나다가 단정 반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좌익활동은 극성화한다. 그런 사회적 혼란 속에 청소년들도 적응과 반적응, 호응과 불응, 지지와 반대 등의 활동으로 나타난다.
소설 제목의 ‘세포’는 좌익 학생활동을 ‘풍경화’는 우익 학생 활동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전설3. [일루전ILLUSION]은
성악가이면서 해방되기 이전부터 독립운동은 좌익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좌익 활동을 해온 곽양수가 일제 말기 일경의 추적을 피하여 고향 진주를 떠나 대구에 숨어들어 메리야스 공장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있다가 해방이 되자 조공 경북도당에 가입하여 노조 운동에 앞장선다. 대구 시내 각 섬유공장마다 노조를 결성하는데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시내 사립여중의 음악선생으로 취업이 되어 신분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그 여중의 젊은 처녀 국어선생 전매리와 눈이 맞아 내연의 관계가 된다.
그런데 전매리는 성문교회 담임목사였던 전다위 목사의 딸로서 곽양수와 불륜의 관계가 되면서 신앙도 버리고 애인의 사상을 좇아 그가 하는 좌익 활동을 적극 돕게 된다. 그의 아버지 전 목사는 일제 말기 왜정의 신사 참배와 동방요배의 강요에 굴복한 흠결로 인하여 해방이 되자 교회 담임직을 내려놓고 교회의 설교 목사로만 재직하고 있다가 딸의 문제가 드러나자 교회에 있지 못하고 사임하고 고향 수원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처녀 전매리와 유부남 곽양수는 함께 대구 폭동에 공장 노조원들을 동원하는 활동을 하였고, 폭동이 잠자자 체포망을 피하여 상동광산 부근에서 은신했다가 다시 대구로 잠입하기도 하는 등 지하 활동을 하다가 전쟁을 맞는다.
이러한 내용은 전매리가 전쟁이 끝날 무렵 공비 토벌 작전 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면서 전향하고 수기를 써서 출판했는데 그 제목이 ‘미망(迷妄)’이었다. 소설은 그 미망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여 옮겨 쓴다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거의 태반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그 미망을 옮겨 쓸 때는 화자가 자연히 매리가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매리가 화자가 되는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부분과 작가 전지적 시점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엇갈리면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좌익 활동가의 생명 낭비적 허망한 생활과 활동을 불륜 관계인 두 남녀를 통해서 그려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전설4. [비행운이 아름다워]는
6.25 전쟁이 발발되던 아침부터 소설이 시작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전쟁 기간 동안 대구 사회의 독특한 상황을 그려갈 것이다.
그 전쟁 때 대구는 다른 지역처럼 인공 시절을 겪지 않았다. 그 말은 적의 침노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낙동강을 경계로 반도 동남부에 해당하는 영남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인공 시절을 면하고 있었지만, 피란 임시정부가 있던 부산은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최후방 도시였으나, 대구는 반대로 국군과 유엔군의 지휘탑의 총집합소였으면서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선에 위치에 있어서 가장 위급한 상황으로 절체(絶體)절명(絶命) 또는 시민 전체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긴장 속에 지내야 했던 곳이다.
그러니까 대구는 당시 두 가지 말로 압축된다. 국군과 유엔군의 총 집합소를 연상하게 하는 군사도시이면서, 전국 피란민이 집결했던 피란민 도시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전쟁은 국민 전체 개개인의 인생이라는 장막극에서 아무 연고없이 무작정 중단시켜 버리기도 하고, 잘 전개되던 인생극을 터무니없게 왜곡시켜 버리게 한다. 행 불행의 의미를 전도시키고, 선악의 개념을 뒤집어 놓아 도대체 가치를 전도시켜 놓는다. 진실과 전설이 뒤죽박죽이 되게 하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없게 한다. 신념이나 소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절대 다수가 삶의 조건과 환경이 파멸 상태인데 그런 중에도 치부하는 역설적 삶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전쟁 정신의 일단을 말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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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옥동네는
현재 대구 북구 고성동에 자리하고 있는 KT 대구 고성빌딩과 그 주변은 원래 대구방송국이 있었다. 그 방송국은 일제 강점기 말엽에 개국해서 일본인이 경영했고, 일부 조선인 직원이 있었다. 그 조선인 직원의 대부분은 서울 쪽에서 온 사람들로 대구 토박이 직원은 아마도 없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래서 그 일본인 직원과 타지역에서 와 있는 조선인 직원을 위한 사택 단지가 그 방송국 가까운 자리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 위치는 아마도 현재 달성초등 부근에 있는 대원 타운 아파트 일대였으리라 짐작이 된다.(그 동네가 실존해 있었다.)
그 주택은 당연하게도, 왜식이다. 그러니까 왜식 주택(倭屋)으로 이루어진 동네라고 해서 ‘왜옥동네[와야마찌;和屋町]’이다.
이 동네 서쪽에 팔달교에서 자갈마당 쪽으로 달리는 국도가 있었고(현재는 폐쇄), 동네 동쪽 이웃에 ‘남선메리야스공업주식회사’라는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에서 주 생산품이 타월과 양말이었으므로 속칭 ‘다오루 공장’이라고 불렸다.
이 동네의 거주자는 또한 당연하게도 절대 다수가 일본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렸다.
이 주택단지의 주택들은 왜식으로서 반듯한 주택에 동네 구조 자체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반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주변 조선인 주민들의 동네와는 확연하게 구별되고 있었다.
해방 조국은 미-소 양국의 군대가 진주해서 군정을 실시했다. 미군정 당국은 일제의 재산은 일제히 몰수해서 관리하다가 유권적 판단에 따라 우리 조선인에게 차근차근 불하했다.
왜옥동네의 20여 호 주택들도 적몰(籍沒)했다가 기득권적 유관 조선인에게 우선 불하하고, 남는 것은 군정 당국이 임의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인사들에게 분양 불하했다.
아마도, 해방 후 새롭게 편성된 방송국 직원들(모두 조선인)에게 우선권이 있었고, 일제 시대 일본인 주인 밑에서 일하던 조선인에게 일본인 주인이 귀국하면서 재산권을 그 조선인 하인에게 물려준 경우, 그 물려받은 사람에게 그 다음 우선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몇 채는 대구 시내 무주택 언론인, 무주택 목사, 군정청에 근무하는 조선인 관료나 군속 민간인으로서 무주택자 들에게 공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로서 달구신보 편집국장인 황현준이 일본에서 귀국해서 무주택자로 있었으므로 한 채 불하받았고, 성문교회 은퇴목사가 은퇴하면서 교회 사택을 반환하고 무주택자가 되어 교회 소유 관사로서 한 채 불하했다.
이 동네 주민들이 소설의 주요등장 인물들이다. 따라서 배경도 이 왜옥 단지 일대가 주요 무대가 된다.
한반도 전체가 왜색으로 칠갑이 되어 있는 상태로 해방이 되었다. 그 왜색 문물들은 우리 조선인의 상처의 흔적으로 치욕적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들은 현대 문물로서 상당히 유용한 것들이어서 이용가치가 있거나 높은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왜옥동네를 포함해서 당시 대구의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곳은 바로 그러한 왜색 문물의 흔적이 강한 곳으로 꼽힐 만하다. 우선 공장지대였다. 전국적인 직물 공업지대로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곳이기도 했다. 방직(紡織), 방적(紡績) 공장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었고, 관련하여 왜색 문화와 생활 흔적이 ‘넘쳤다’고 하면 과장되겠지만 뚜렷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왜색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면서 몸에 밴 왜색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현실적 시기가 광복 후 10여 년간이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 사이 정부가 섬으로써 동시에 자립 공화국이 건국되고,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거쳤음에도 그러한 왜색을 우리는 탈피했다고 볼 수가 없다. 친일파를 몰아내고, 친일의 잔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숱하게 있었고, 7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이런 캠페인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겪고 또 치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그러한 현상적 사회 모습을 드러내면서 민족자주성을 확립하기 위한 젊은 세대의 몸부림을 그려내보려고 시도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라 하겠다.
‘왜옥동네’는 그러한 소설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는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