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노예의지, 로보트라고 보면 된다고?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이루어주시리로다"(시37:4)
우리 안에 참된 욕구들을 만드시는 분은 예수님이지만 이것을 행할지 행하지 않을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성령은 살려주시는 영이고 우리의 영도 거듭났다. 살아있는 분과 살아있는 영이 연합되었다.
물론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죽은 것으로 여긴다.
새영+성령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내가'가 나타나거나 '성령께서'가 나타나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으로 사도 바울도 "내가"를 의지적으로 썼고 '나' 또는 '성령'으로 쓰기도 했다. 성경에 '내 영'과 '성령'은 구분하지 않고 쓰였다.
전철곤목사 말ㅡ
감사하네요.
아마도 지인은 침례교계통의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일 겁니다.
즉 펠라기우스와 알미니니안 계통에서 배우신 분으로 생각되는데요.
핵심은 구원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부패했느냐?에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기절했느냐? 죽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자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개념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믿음을 결정한다면 죽은 것이 아니고, 사단의 지배아래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짐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어도 심판은 가능합니다. 조직깡패 밑에서 자라서 깡패생활을 해도 심판은 가능합니다.
심판은 벌하는 것이 아니라 깡패 밑에서 살도록 버려두는 것입니다.
즉 사단에게 포로된 의지인데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며 살도록 버려두는 것이 심판입니다. 심판을 받으면 지옥이 되고 지옥이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집니다.
영을 좇는 것은 자아가 영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로 영의 지배를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육을 좇는 자도 자아가 육을 좇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육의 지배아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두가지 지배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의지가 육의 지배를 받는 존재냐? 의지가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냐?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자신을 어떤 존재로 아느냐? 그것을 믿느냐?가 믿음입니다.
자신을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알아지고 믿어지면 영이 나타납니다.
나의 말. ㅡ 저도 지난 주 토요일에 자유의지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있었어요. 전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분들은 "자기 존재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다 하신다"고 간증하시곤 합니다. 새피조물의 의지는 성령께 순종할 수 있다고 하며 전 목사님의 말씀이 아주 심각하게 우려스럽다는 어떤 자매님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다가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새피조물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알고 성령에 순종하는 새로운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혼의 죽음을 강조하다보니 어떤 분들은 자기 존재가 없다고 얘기를 하시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내 새영 안에 성령이 오셨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살려주시는 영이고 그래서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났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새영을 좇아 행하면 내 생각, 의지, 감정이 새로워집니다. 물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전철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존재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얼핏 들어서 오해라고 하기엔 자주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새로워진 의지, 성령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의지 부분이 전철곤 목사님 말씀에서 좀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 토요일 심각한 토론을 했는데 하여간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ㅡ그는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말씀을 일부러 전하고 있다.
어떤 형제의 간증 ㅡ자유의지도 없고 모든 사람 속에 성령이 계시다는 말씀을 들으니 이런 종류의 간증이 나온다.
전도가 쉬워졌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영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원주에서 아내가 만나는 귀여운 자매님이 모시고 온 사람과 교제를 하던 중 귀여운 자매님이 영접을 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귀여운 자매님에게 직접 영접을 시켜 보라고 권하자 귀여운 자매님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혼을 지배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 영접이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혼을 지배하도록 허락하겠느냐? 물으니 새로 오신 분이 성령님께서 혼을 지배하도록 허락한다고 하시며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님이 혼을 지배하도록 영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신선했다.
그리고 오늘 항상 함께 2층에서 식사를 하는 부장님이 1층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하여 혼자 식사를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보부장이 찾아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여 식사를 한 후 운동장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춘천 교회 자매님들의 간증을 나누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치매 어머님을 보살피는 자매님께서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 중 내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말씀은 알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가 되지 않아 “난 안죽었어!” 그러자 옆에 있던 자매님이 “그래도 넌 죽었어!” 그리고 집에 돌아 오니 그날 따라 어머님의 치매증상 더 심하게 나타나 짜증과 화가 막 올라오자 “봐 나는 안죽었어!” 그런데 반전이 일었났다고 한다. “그래 내 마음에서는 화와 짜증과 어려움이 올라오지만 그래도 나는 말씀대로 죽었어!” 이렇게 내가 죽었다는 것이 인정이 되는 순간 아주 심하게 치매 증상을 보이던 어머님이 사랑스럽게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간증하던 자매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밝게 보였다. 정보부장에게 갈라디아서 2장20절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간증을 나누는데 신이 났다.
그래서 다음 간증을 또 전했다. 공부하는 문제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자매님이 자녀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잘못한 것들 때문에 죄책감에 잡혀 지냈던 것과 딸에게 심하게 대했던 것으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갖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자신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 부활 생명에서 나오는 새 마음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가 임하고게 되었다고 하며 자신이 상처를 준 그 딸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이 알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딸의 말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말이 되어 이번 어린이날 딸이 함께 레고랜드에 가자고 하여 만사를 재처 놓고 가족과 함께 레고랜드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는 간증을 나누는데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정보부장에게 들려준 손녀 이야기를 하며 할아버지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손녀를 혼을 내 줄까? 훈계를 할까? 생각하던 중 이런 나는 죽었지 그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새마음으로 “나는 사랑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좋아해!” “네가 있어 너무 행복해!” 손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니 손녀도 “나는 매일 자기 전에 할아버지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나도 할아버지 사랑해.” “할아버지 미안해.” 사랑을 고백하여 서로 즐겁게 놀고 헤어진 간증을 나누는데 시간이 후딱 가 버렸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교무실로 오는 중에 아! 전도가 쉬워졌구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나타난 일들을 전하는 것이 전도요,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전도구나! 이것이 확실하게 알아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회개가 되었다. 전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은 잘 들어야 해라고 생각을 했지만 교제 나눔은 소홀히 들었는데 이 마음이 교회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란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교회 안에 흐르고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간증으로 어디를 가나 말문이 터질 것 같다. 특별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하는 것이 전도가 된 교회 이 교회가 우리 춘천 교회요, 우주적인 교회임을 알게 해 주신 은혜가 참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