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날
모든 것이 어느 날 밤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1955년 나는 미주리 주립대학교 언론학부 2학년생이었다. 그해 10월초 <쇼우 미>라는 교내 잡지가 실시한 단편소설 공모에서 나는 1등을 차지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미주리 대학교의 언론학부는 스스로 그 지역 4대 명문 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터였으므로 그 상은 정말 자랑거리였다. 당시 상금으로 받은 백 달러는 꽤 큰 돈이었다. 이 돈에다가 제대군인 학자금으로 매월 받는 110달러를 합치니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나는 저 유명한 문예지 <뉴요커>에서 졸업 뒤의 일자리를 약속하며 앞으로 내 문학작업을 지켜보겠다는 소식도 들었다. 가장 비싼 보석에 어울리는 보석이 티파니이듯 <뉴요커>도 초특급의 세련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바바라라는 아름다운 아가씨와 약혼한 상태였고 이듬해에 결혼할 계획이었다.
보통의 스물한 살짜리 청년들은 갈피를 못잡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확실한 상태였겠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해병대를 거친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출세와 은은한 사랑의 노래가 나를 감싸고 흘렀다. 나는 분별력이 있었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기에 부드럽게 노를 저어 갔다. 내가 다른 동료들보다 한 수 위이며 그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직 철없고 어린 내 또래들, 무거운 옷가방을 이리저리 바꿔 들며 옮겨 다니는 그들과 나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터에 그 꿈이 찾아와서는 잘 나가던 내 배를 육지로 밀어 올려놓고 말았다. 그 꿈이 찾아와서는 나는 캐딜락을 몰고 높은 언덕 꼭대기에는 방 열네칸짜리 대목장 스타일의 저택이 아래의 계곡 전체 경치를 굽어보고 있었다. 꿈속의 장면은 현실보다도 생생했다. 언덕 꼭대기에는 방 열네칸짜리 대목장 스타일의 저택이 아래의 계곡 전체 경치를 굽어보고 있었다. 우편함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진입로에는 링컨과 포르쉐가 주차되어 있었다. 집 안에서는 바바라가 빵을 굽고 있었고,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네 명의 아이들이 내게 인사하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나는 자동차 운전석 거울을 들여다보며 흰머리를 좀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는 마흔다섯에서 쉰 살가량 되어 보였다. 현관문을 열자 벽에 걸려 있는 특이한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받은 노벨문학상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깨어나 외쳤다. "오, 하나님, 그것말고 무언가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25년 동안이나 쏟아부어 명성과 성공과 돈과 행복한 가정을 위해 씨름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그 깨달음 앞에 엄청난 불안이 덮쳐 왔고 깊은 실망이 찾아왔다. 그때 왜 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평범한 기쁨에 만족하지 못한 것일까? 무언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인가 더'에 왜 그토록 갈급하고 절박해 했을까? 그러나 되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불안정하고 혼란한 상태로 나는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중략) 2월에 펜실베이니아의 로레토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신학교에 들어가겠다는 내 계획을, 크리스마스 때 가족에게 알렸다.
수도원은 내가 상상한 최악의 경우보다 더 끔찍했다.
-사자와 어린양(브래넌 매닝)-
나는 이 형제의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것이 최고의 목표인 사람들은 어리석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성경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서 성공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절구에 넣어 빻아도 그 어리석음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삶이 매우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나는 얼마전 그저 아무일 없이, 무사히 명예퇴직하는 것만이 소원이라고 하던 어떤 선생님의 말도 생각난다.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것이 정말 자신에게 최고로 행복하게 되어도 허무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다.
브래넌 형제가 하나님을 만난 날은 내가 하나님을 만난 날과 비슷하다.
나는 임용고시 재수끝에 교사가 되었고 어쩌다 낸 연구대회에서 도 1등급 수상을 하게 되었고, 교육방송의 사이버선생님으로 활약을 하고 있었고, 각종 연구대회나 자료전에서 금상을 탔고 내 커리어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너무나 허무해서 밤마다 12층 배란다 창문을 내다보며 죽고 싶었다. 나는 그때 하나님을 만났다.
우리는 가장 망했을 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가장 성공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브래넌 형제의 이 책이 좋아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첫댓글 꼭 물질적으로 망해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성공한다해도 그 영혼의 망함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망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법칙처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과 구원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아멘!
복음 전파에는 여섯 가지 노선이 있는데 사람은 사랑, 공의, 형벌, 죄, 세상, 공허 등의 측면으로부터 말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것으로 시작하든 모두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성령의 역사의 결과는 오직 한 가지, 곧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복음은 사람으로 거꾸러지게 하고 부드러워지게 한다.
자신이 하나님을 선대하여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옳지 않다.
사람이 진실로 복음을 보았다면, 사랑을 만났든, 공의를 만났든 혹은 형벌을 만났든 그는 반드시 부드러워질 것이다.
아멘...체계적인 정리 감사합니다. 복음 전파에 여섯가지 노선이 있군요. 저는 쑥스럽지만 수준 이하인 공동체에서 좀 지내다가 다시 제정신이 돌아왔네요. 에휴 존번연처럼 죽을때까지 순례길을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하나봐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