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철은 시력이 그토록 약한데도 음악을 전공했다.
짧은 순간에 복잡한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야 하는 연주가에게는
밝은 시력이 필수적인데도
지성철은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 가수의 꿈을 품고 있는 유열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지금 모습 그대로>라는 노래를 작곡해서
그가 대학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도 유열이 지성철을 위하는 마음은 실로 눈물겹다.
아마 3년 전 쯤 되었을 것이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 문화 회관에서 유열과 지성철의 초청 음악회가 있었다.
"형, 나 이번에 담양 가니까 형 네 집에 갈 거야"
"누추한 곳에 뭐 하러 오려고 그래"
"아냐. 나도 전원주택에서 하룻밤 자 봐야지"
"그럼, 우리 집에서 음악회를 하자.
내가 이웃 분들 모이게 자리 마련해 놓을게"
"알았어. 그러면 가수들하고 같이 내려갔다가 올라오려고 했는데
아내랑 우리 차 타고 내려갈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집엘 오고 싶다는 데
그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대신 나는 이웃 분들에게 저녁 열 시까지 모이라고 해 놓고
꽃다발을 하나 사 들고 아내와 함께 공연이 있는 담양 문화 회관으로 갔다.
마중 겸 공연 축하를 해주기 위해서 였다.
유열이야 가수니까 다들 알지만 지성철이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서 청중의 반응은 뒤바뀌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시력이 약한 친구를 위해서
유열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지성철의 손을 잡고 나와
피아노 앞에 앉게 한 후 자기는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그래서 아무도 지성철이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1 절이 끝나자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열이는 그 박수 한가운데 서있는 것을 사양한 채
무대 옆으로 빠지면서 손으로 피아노 연주 가를 가리켰다.
자기에게 쏟아지던 박수를 모두 친구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그 때야 비로소 청중들은
그의 연주 솜씨가 남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현란한 손놀림.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음률.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유열이는 2절을 부르기 위해 무대 중앙으로 나왔으나
박수 속에 묻혀서 노래를 시작하지 못한 채 서 있다가
자기도 박수를 치면서 다시 무대 한쪽으로 자리를 내 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유열이 얼마나 지성철을
아끼고 사랑하는 가를 알 수 있었다.
참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뜨겁고 열렬했던 연주 회가 끝이 나고
극성스런 지방 팬들을 피해서 유열이가 공연장을 빠져나가면서
팬들에게 붙잡혀서 싸인을 해 준 것은 두 세 번 뿐이었는데
지성철은 아예 처음부터 어린 청소년들로부터
청소하던 아줌마들까지 빙 둘려 쌓여서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빨리 지성철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 10시부터 음악회를 할 텐데
한 시간 이상을 군중에게 붙잡혀 출발을 하지 못했다.
그의 연주는 그렇게 누구나 들으면 금방 빠져들 만큼
굉장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댓글 정말 대단한 실력인가봐요
그가 작곡한 곳을 꼭 들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