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삼국지를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 삼국지를 세번 이상 읽어본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번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물정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이고, 또한 세번 이상 읽은 사람은 세상물정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거래했다간 판판이 당함으로 인해 상종하지 말라는 속담이 생긴 것 같습니다. 삼국지를 한두번 정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이제 다시 옛날을 회상하시면서 다시 한번 읽어 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박종화, 정비석, 이문열씨 등이 출판한 삼국지가 있고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가 있습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만 하더라도 한권이 약 500 페이지가 되며 10권이며 약5,000 페이지가 됩니다. 이것을 다 전재(轉載)할 수가 없고,위,오 촉한의 중요한 인물을 중심으로 편집하려고 합니다. 과거에 삼국지를 읽어보셨던 분들은 다시 한번 삼국지의 의미를 되새겨 보시고, 안보셨던 분들은 새로운 지식으로 받아 삶의 지혜로 삼아보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삼국지에 들어가기 전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고사(故事)를 한편 소개합니다. *우한(武漢))코로나 19로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어진 요즘, 삼국지라도 읽어시면서 잠시라도 인간사(人間事)를 잊어 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김문조(고11회) 르네상스여행사 대표이사 👺 三國志 人物列傳 😎 절영대회(絶纓大會)<1> 초(楚)나라는 남방의 큰 나라. 중원의 문화권에 대해서 초는 남방의 독자적인 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원에서는 “만이(蠻夷)의 나라”라고 여겨져서 주(周)나라에서 주어진 작위는 고작 자작(子爵)에 불과했다.그들은 높은 작위를 요구했으나 주실로부터 거부당한 이래로 주(周)나라 이외에는 “왕”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 없이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초는 주변의 소국을 차례로 점령하여 성왕(成王)시대에는 흔들릴 수 없는 대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성왕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신(尙臣)을 태자로 책봉하지만 그 후 다시 폐적하려고 하였다.이에 상신은 성왕을 살해하고 왕위 목왕(穆王)에 즉위하였으며 목왕을 이은 것이 장왕(莊王):BC613~591)이다. 장왕은 즉위한 지 3년 동안 정령(政令) 하나 발표하는 일이 없이 밤낮 놀기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포고했던 것이다. “감히 간하는 자는 사면이 없이 사형에 처한다”(有敢諫者死無赦) 그러나 간언하는 신하는 있었다.우선 오거(伍擧 )가 장왕에게 알현하고자 했다 장왕은 왼팔에는 북쪽 정(鄭)나라 미희(美姬)를,오른팔에는 남쪽 월(越)나라 미녀를 안고 악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오거를 맞이했다. “수수께끼를 하나 풀어 보십시요.” “말해 보오.” “언덕 위에 새가 한마리 있습니다.3년 동안이나 날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무슨 새입니까?” “3년을 날지 않았어도 한번 날으면 단숨에 하늘 꼭대기에 이를 것이며 3년을 울지 않았어도 한번 울기 시작하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다.그만 물러 가거라.” 그로부터 수개월간 장왕의 놀이는 더욱 심해져서 음란이 극에 달했다.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나섰다. 장왕은 그에게 말했다. “간언하는 자는 사형이라고 포고한 바 있겠다. 알고 있겠지?” “군주께서 제 정신을 되찾으실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죽음을 당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伍擧入諫, 莊王左抱鄭姬,右抱越女,坐鐘鼓之間,伍擧曰願有進隱 曰有鳥在於阜 ,三年不蜚不鳴,是何鳥也. 莊王曰三年不蜚 蜚將沖天,三年不鳴 鳴將驚人,擧退矣. 吾知之矣,居數月淫益甚, 大夫蘇從乃入諫,王曰若不聞令乎 對曰 殺身以明君,臣之願也) *굳이 이 한문 원문을 모두 기록하는 이유는 옛날 생각이 나서 입니다.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시험 때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하는데,마침 이대학원에서는 한문이 있어 저는 한문을 선택했습니다.그런데,4문제 중 한 문제가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사기(史記)를 원서로 대학시절에 공부를 한 관계로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이 때를 기해서 장왕은 향락을 뚝 그치고 언제 그런 행동을 했느냐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정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인사(人事)를 쇄신하였습니다. 단번에 간신 수백명을 처단하고 신인을 새로 등용시켰고, 오거(伍擧)와 소종(蘇從) 두 신하에게 모든 국정을 맡겼다. 진(陳)나라 영공(靈公) 14년의 일이다. 영공은 하희(夏姬-정나라 목공(穆公)의 공주로 진나라 대부 하씨(夏氏)의 부인)와 내통하고 있었다. 영공뿐 아니라 공영(孔寧), 의행부(儀行父) 라는 두 사람의 대부도 각기 하희와 재미를 보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희의 속곳을 얻어 그것을 조의(朝議) 석상에까지 입고 나와 서로 자랑하는 판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대부 설야가 영공에게 간언했다. “위에 선 사람들이 이지경이어서는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영공이 곧 설야의 간언을 두 대부에게 전했다. “당장 죽여 버리지요.” 두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자 영공은 말릴려고도 하지 않았다. 두 대부는 설야를 살해했다. 그 이듬해,영공은 공영과 의행부를 거느리고 하희의 저택에 가서 연회를 가졌다. 영공은 하희의 아들이며 대부인 징서(徵舒)를 주흥(酒興)의 노리개로 삼아 두 사람의 대부를 야유했다. “정서 얼굴은 아무래도 자네들을 닮았군 그래.”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 군주를 닮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징서는 안색이 변했다. 그는 큰 활을 들고 마구간 문 옆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영공이 주연을 끝내고 돌아갈 때에 그를 쏘아 죽이고 말았다.공영과 의행부는 그대로 초나라로 도망쳤고 또한 영공의 태자 오 (午-훗날의 성공(成公))는 진(晉)으로ㅊ 피했다.하징서는 스스로 진(陳)나라의 군주임을 자처했다. 이듬해 겨울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은 영공 암살의 죄상을 들어 제후들을 거느리고 진(陳) 나라 토벌에 나섰다.그 때 장왕은 진나라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포고했다. “안심하라.이번의 토벌은 역신(逆臣) 징서를 정벌하는 이외에 다른 뜻은 없다.” 그러나 장왕은 하징서를 주살한 다음 진(陳)나라를 초나라의 한 현으로 만들고 말았다. 신하의 무리들은 모두 모여 축하했다.제나라에 사자로 갔던 대부 신숙시(申叔時)가 그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만은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장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서 비유하기를,소를 끌고 남의 밭을 지나가면 그 밭 주인에게 소를 빼앗긴다고 합니다. 소가 밭을 밟아 헤치는 것은 틀림없이 나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는 것도 지나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초에 군주께서는 주군을 암살한 하징서의 죄를 징벌한다고 제후들의 찬성을 얻어 정의의 이름 아래 토벌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나자 진나라 영토 전부를 소유해 버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어찌 천하를 호령하시겠습니까?그래서 저는 축하의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음, 잘 말해 주었다.” 장왕은 서둘러 진(陳)나라의 영토를 돌려주고,진(晉)나라로 피신하고 있던 영공의 태자 오(午)를 맞이하여 진군(陳君)의 자리에 앉혔다.그가 바로 성공(成公)이다. *이 고사(故事)에서 “혜전탈우(蹊田奪牛)”라는 사자성어가 유래되었다. 남의 소가 자신의 밭을 밟았다고해서 그 소를 빼앗는다는 뜻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을 주거나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공자는 사관(史官)의 기록을 읽다가 초가 진(陳)을 재건시킨 대목에 이르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초나라 장왕이야말로 훌륭한 인물이다. 나라 하나를 얻는 것 보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으니.” 초장왕은 투월초와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영도(郢都)의 궁궐 안에 있는 점대(漸臺)위에 큰 연회를 열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궁궐의 비빈들을 모두 나오게 하여 같이 어울리도록 하였다. 장왕이 말했다. 「내가 가무를 즐기지 않은지 이제 육 년이 되었다. 금일 역적의 목을 쳤으니 나라안이 이제 안정이 되었다. 오늘은 여기 있는 모든 경들과 같이 하루종일 즐겨 볼까 하여 내가 이를 태평연(太平宴)이라 하였다. 문무대소 관원들은 모두 들어와 자리에 앉아 음식과 술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마시기 바란다.」 군신들이 모두 장왕에게 배례를 올리고 순서에 따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요리사들은 음식을 내오고 태사들은 음악을 연주하였다. 초나라의 군신들은 음식과 술을 즐기던 중 해가 어느덧 서산으로 떨어져 천색이 희미하게 되었으나 연회의 흥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장왕이 내시들에게 명해 등불을 밝히도록 명하고 그가 총애하는 허희(許姬)를 시켜 여러 대부들에게 술을 한잔씩 따르게 했다. 대부들이 모두 일어나 서서 술을 받아 마시던 중 갑자기 일진광풍이 불더니 당내의 등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좌우에서 미처 불을 켜지 못하고 있던 중에 연회석 상에 어떤 사 람이 있어 허희의 미모를 보고 마음이 동하여 어둠을 이용하여 그녀의 소매를 손으로 잡아 당겼다. 허희가 왼손으로는 자기의 소매를 끊고 오른손으로는 그 사람의 관끈을 낚아채어 떼어 내자 어둠 속의 그 사람이 놀라ㅊ 손을 놓았다. 허희가 관끈을 손에 쥐고서 어둠 속을 더듬어 장왕 앞으로 걸어와서는 귓속말로 고했다. 「첩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백관들에게 술을 따르고 있는데 무례한 자가 하나 있어 등불이 꺼진 틈을 타서 강제로 첩의 소매를 잡아 당겼습니다. 첩이 이미 그의 관끈을 끊어 손에 가지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불을 켜시고 그자를 잡아들이십시오!」 장왕이 서둘러 등불을 밝히려는 자에게 명하였다. 「잠시 등불을 켜는 것을 멈추어라! 과인이 오늘 연회를 베푼 것은 여러 경들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서이다. 제경들은 모두 머리에 쓴 관끈을 끊고 마음껏 마시기 바란다. 관끈을 끊지 않은 자는 내가 마련한 연회가 달갑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겠다!」 그러자 백관들이 모두 자기가 쓰고 있던 관끈을 끊어 버렸다. 장왕은 여러 신하들이 모두 관 끈을 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등불에 불을 붙이고 술과 음식을 계속 내어 백관들로 하여금 마음껏 즐기게 하였다. 결국은 허희의 소매를 잡아당긴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연회가 끝나고 궁궐의 침전으로 돌아오자 허희가 불만을 말하였다. 「첩은 남녀지간에는 서로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군신 간에는 더욱 불가 할 것입니다. 오늘 대왕께서 첩으로 하여금 여러 신하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여 제가 공경하는 태도로 대했는데 어떤 무례한 자가 어둠을 이용하여 제 소매를 잡아당겨서 제가 그의 관끈을 끊어서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대왕께서는 무례한 자를 찾아내시지 않으셨으니 앞으로 어찌 상하간의 예의를 밝혀 남녀 간을 구별하도록 하시겠습니까?」 장왕이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일은 부녀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옛말에 군주와 신하가 술을 마시며 같이 즐기는 것은 석 잔을 초과하면 예가 아니라고 했다. 그것도 단지 낮 동안만 가능하고 밤에는 같이 마실 수 없게 되어 있다. 오늘 과인이 군신들에게 마음껏 즐기라고 명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등불까지 밝히라고 하였다. 술을 마시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만약에 내가 무례한 자를 찾아내어 벌을 주었다면 부인의 절제는 빛나게 되었겠지만 반대로 나라의 사대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군신들의 마음이 모두 불쾌하게 되면 그것은 과인이 연회를 베풀어 군신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했던 바가 아닐 것이다.」 허희가 탄복했다. 후세 사람들은 장왕이 베풀었던 그 연회를 절영회(絶纓會)라고 이름지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장왕의 처사를 칭찬했다. 暗中牽袂醉中情(암중견메취중정) 어둠 속에서 소매를 잡아당긴 것은 취중의 인지상정이라 玉手如風已絶纓(옥수여풍이절영) 섬섬옥수가 바람과 같아서 관끈을 이미 끊어 버렸네 盡說君王江海量(진설군왕강해량) 다만 군왕의 마음이 강과 바다처럼 넓다고 말할 뿐이다. 畜魚水忌十分淸(축어수기십분청)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초장왕은 진(陳)나라를 정벌하여 초나라의 세력권에 넣었으나 아직 복종하지 않고 있는 정나라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여러 대부들을 불러 의논하게 했다. 영윤 손숙오가 일어나 말했다. 「우리가 정나라 정벌군을 출동시키면 당진은 틀림없이 구원군을 보내 정나라를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군을 보내야만 당진군을 물리치고 정나라를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장왕이 대답했다. 「과인의 뜻도 경과 같소.」 장왕은 즉시 삼군과 양광(兩廣)의 군사를 일으켜 호호탕탕 정나라의 형양(滎陽)에 이르렀다. 형양은 정나라의 도성 신정성의 인후에 해당하는 요해지다. 장왕이 신정성을 향해 출전할 때 윤양로(尹養老)에게 전대(前隊)를 맡겨 앞서가 본대의 행군을 돕게 했다. 윤양로가 전대를 이끌고 출전하려고 하자 젊고 늠름한 체격의 당교(唐狡)라는 장수가 찾아와 청했다. 「정나라는 소국이라 대군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장에게 백여 명의 군사를 딸려 주신다면 하루를 앞서 나가 전군을 위해 길을 열겠습니다.」 윤양로가 그 뜻을 장하게 여겨 허락하였다. 당교가 있는 힘을 다하여 만나는 정나라 군사들을 모두 무찌르고는 매일 저녁때가 되면 영채를 세울 수 있도록 깨끗이 땅을 청소해 놓고 대군을 기다리곤 했다. 장왕이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정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으나 중도에 단 한 명의 정나라 군사들로 구경할 수 없었었고 단 하루도 군사들의 진격을 지체시키지도 않았다. 장왕이 군사들의 행군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생각하여 양로를 불러 치하의 말을 했다. 「뜻밖에 경이 노익장(老益壯)하여 용기를 내어 이렇듯 본대의 전진을 용이하게 하셨습니다.」 장왕이 치하하는 소리에 윤양로가 말했다. 「그것은 신의 힘써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바로 제가 데리고 있는 부장(部將)에 당교(唐狡)라는 장수가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운 것에 힘입은 것입니다.」 장왕이 즉시 당교를 불러 후한 상을 주고자 했다. 당교가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이미 대왕으로부터 후한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금일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다시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장왕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과인이 전에 경을 본적이 없는데 어찌 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가?」 「대왕께서 절영회(絶纓會)를 열었을 때 미인의 옷소매를 잡아당긴 사람은 소장이었습니다. 군왕께서 저를 죽이지 않은 은혜를 갚고자 목숨을 걸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장왕이 탄식하며 말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그때 과인이 촛불을 밝혀 죄인을 잡아 들여 벌을 주었던들 어찌 이와 같이 목숨을 바쳐 힘써 싸우려는 훌륭한 장수를 얻었겠는가?」 장왕이 군정에게 명하여 당교의 공을 일등으로 기록하게 하고는 정나라를 평정한 후에 돌아가 장차 중용하려고 하였다. 당교가 장왕 앞에서 물러 나와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군주에게서 죽을죄를 지었으나 군주가 이를 감추어 주어 죽임을 면하게 해주어 내가 이를 갚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그 일을 이미 밝혔는데 어찌 감히 죄인의 몸으로써 후일에 그 상을 다시 탐할 수 있겠는가?」 당교는 말을 마치고 그날 밤으로 사라져 숨어 버렸는데 아무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왕이 듣고 탄식하였다. 「참으로 열사로다!」 월위무병선(月爲無柄扇) 달은 손잡이가 없는 부채가 되고 성작절영주(星作絶纓珠) 별은 끈이 끊어진 구슬이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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