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에는 장애인들이 1만 명 정도가 있는데
그 중에 지체 장애인들이 70 퍼센트다.
그 외 시각과 청각, 정신 장애인이 30 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들은 각자 별도의 협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들 외에도 별도의 장애인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몇 개의 단체들이 있다.
문제는 이 단체들이
무조건 식의 나눠 먹기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사업을 주면
'이번에는 내가 하고 다음에는 네가 해라'하는 식이었다.
즉, 장애인 콜 벤을 지체 장애가 가져갔으니
작업장은 모 종교 단체가 가져가고
앞으로 나올 장애인 체육관은 또 다른 단체가 하는 걸로 되어 있다.
도와야 할 회원이 70 퍼센트인 지체 장애에게는
콜벤 택시 3대를 주고
한 낮 사 조직에 불과한 모 종교 단체에는 10억에 가까운 시설을 주고
또 다른 단체에는 수 백 억이 넘는 체육관을 준다는 것이다.
장애인 체육관은 필요한 직원 만도 30여 명에 이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운영할 회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외부 인사를 데려 오지 않으면 운영을 할 수 없는 시설이다.
그런데도 차례에 따라서 몇 명에 불과한 단체에 수탁을 하는 것이다.
7천 명에 이르는 지체 장애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데
다른 단체들은 사람이 부족해서
외부 인사를 모시고 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솟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피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피이다.
6, 25동란 때
북한군을 피해서 도망을 갔던 경찰이 나중에 다시 들어 와서
각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북쪽으로 머리를 쓴 사람들을 색출해서
무차별 사살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괴로군이 무서워서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을 친 사람들이
선량한 양민을 사상 범으로 몰아 사살을 하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수치스런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 마을에도 2, 30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줄줄이 밧줄에 묶여서
사형 장인 홍거시 다리로 끌려갈 때
할아버지가 격노하여 경찰의 총부리 앞에서 그들과 싸워서
마을 청년들을 구해 냈다.
그래서 다른 마을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피가 냇물처럼 흘렀지만
우리 마을에는 사상 범으로 몰려 사살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지도자로 가르치다가
내가 병이 나자 상심해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픈 나를 무릎에 앉히고 앉아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 주셨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국민에게 경멸을 받는 자요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이 '우리가 해 냈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지도자니라"
지금도 내 머리에 주홍 글씨처럼 새겨진 말씀이다.
비록 병이 나서 지도자의 꿈을 이뤄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 뜨거운 할아버지의 피가 내 몸에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첫댓글 아 스승님의 배후에는 그런 멋진 할아버지께서 계셨군요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가봐요
어쨋든 일이 어찌 진행되었는지 무지 궁금하세요
할아버지의 피가 스승님 속에서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그 결과가 어찌 나왔는지 얼른 들려주세요^^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