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삶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는 금산교회가 있다. 금산교회는 1997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모악산국립공원과 금산사 등과 어우러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금산교회는 1908년 4월 미국의 남장로회 선교사 데이트가 세운 ㄱ자 한옥교회다. 교회를 ㄱ자로 지은 것은 ‘남녀칠세부동석’이 진리였던 구한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볼 수 없게 하기 위해 남자석과 여자석을 분리할 목적으로 ㄱ자 형태를 택한 것이다.
목사가 ㄱ자의 꼭지 부분에서 설교를 하면 남녀 간에 서로 볼 수는 없지만 설교하는 단상의 목사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만든 구조다. 사료로써의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자료로 지정한 것이다.
외부의 모습은 많이 개조되어 변형되었지만 내부의 ㄱ자 모양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초라한 작은 교회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주변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고 한다. 상량문에 성경구절이 적혀 있어 당시 다른 건축물과는 사뭇 다르다.
남자석은 한문으로, 여자석은 한글로 써 한문을 읽을 줄 모르는 여성들을 배려하고 있는 게 독특하다. 건물자체가 아름답지는 않으나 초기 한국교회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dangdangnews.com%2Fnews%2Fphoto%2F201602%2F26000_55718_4124.JPG) | |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 조세형 의원의 출신 교회이다. |
이 교회는 특출한 신앙인들을 길러냈다. 특히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이야기는 심금을 울린다. 교회 개척에 앞장섰던 이가 조덕삼인데 그는 이자익과 함께 데이트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조덕삼은 양반으로 부농이었고 이자익은 그의 머슴(마부)으로 천한 사람이었다.
교회를 지은 이듬해 누구를 장로로 세우면 좋을까 하는 투표가 있었다. 성도들은 조덕삼이 장로로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부인 이자익이 장로로 뽑혔다. 남녀를 철저히 구별하는 것만큼 반상을 구별하던 시대다.
양반이 아니라 상놈이 장로로 뽑힌 것이다. 결과가 발표되자 교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조덕삼이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이제부터 저는 이자익 장로님을 받들어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교인들은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후 조덕삼 집사는 이자익을 장로로 받들었고, 후에 이자익이 신학교에 가도록 물질로 후원하였다. 이자익이 목사가 된 후에는 장로가 된 조덕삼이 다시 금산교회로 초빙하여 담임목사로 섬겼다.
편견과 남녀구별, 상반의 차이가 엄연했던 시대에 조덕삼 장로는 참으로 깬 신앙인이었음에 틀림없다. 며칠 전 책을 읽다가 그의 손자가 조세형 전 국회의원이란 걸 알았다. 조세형 의원 역시 장로다. 그의 정치철학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한다.
‘화이부동’은 서로 간에 차이는 있지만 대립하지 않고, 인정하고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행동철학을 말한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란 생각이 든다. 다르다고 '종북'이니 '보수꼴통'이니 할 게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날 이런 섬김과 정치가 이 땅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