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례식장 100% 흰 국화 사용한다.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
장례문화 개선이라는 구호는 홍보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는 자들의 사대주의
지난 17일 사단법인 대한 전통명장협회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전통명장을 뽑는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을 뽑는 심사과정에서 장례식에서 국화꽃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흰 국화 하면 흰 국화는 장례식장에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흰 국화의 꽃말 의미는 "애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흰 국화의 꽃말은 감사, 성실, 진실, 3가지로 구분되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장례식과는 전혀 무관한 꽃이라고 봐도 된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흰 국화꽃을 장례식에 사용하게 되었을까? 흰 국화는 인본 천황을 상징하는 꽃인데 왜 장례식에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꽃을 우리는 사용하게 되었을까? ”1934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만든 조선 의례 간소화 정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전통 장례문화에는 상여를 꽃으로 치장을 했다. 상여 말고는 장례식에 꽃으로 표현하는 예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평이다 다만 전통적인 불교국가에서 불교를 상징하는 뜻에서 상여를 장식하든 꽃은 연꽃이 대부분이었다. 연꽃의 꽃말은 순결 또는 청순한 마음이다.
우리나라 가정의례준칙은 전통적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번잡 성과 허례허식虛禮虛飾을 지양하고 의례의 간소화를 위하여 제정・공표한 의례에 관한 규칙. 이 법률은 1957년 국민 재건운동 본부의 「표준 의례」와 1961년 보건사회부의 「표준 의례」를 모태로 하여, 1969년 1월 16일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반포되면서 시행되었다.
굴건 상복 대신 양복을 입었고 완장을 착용하여 가족/상주/문상객/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바람직한 변화였다. 하지만 이런 간편하고 합리적인 변화를 일제 잔재니 민족말살이니 하는 주장으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일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전통을 고집하여 2021년에도 굴건제복을 입고 상여를 타고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인가? 가정의례준칙이 자리 잡으면서 그나마 완장이라도 착용해야 문상객인지, 가족인지, 상주인지, 파악하고 조문을 할 것이 아닌가?
일본의 단발령 (斷髮令)은 김홍집 내각 이 고종 32년인 1895년 12월 30일 (음력 11월 15일)에 공포한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 식 머리를 하라는 내용의 고종의 칙령이다. 단발령에 따라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다 전통을 앞세워 2021년에도 상투를 틀고 양복 대신 비단옷을 입고 다니길 바라는 사대주의를 따르는 자들의 주장에는 역사왜곡까지 담겨있다.
사단법인 대한장례인협회(이상재 회장)은 특히 우리나라 전통 장례문화 속에 수의에 관하여 가장 왜곡이 심하다고 수의를 입는 것이 고인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왜곡이 있다며 강하게 어필했다.
이 회장은 수의(壽衣)는 사람이 죽어 염습(殮襲) 할 때 시신에게 입히는 옷으로 우리나라의 염습 제도는 3∼4세기에 도입된 중국의 유교사상에 의하여 『예기』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고려 말 주자학의 도입 이후 14세기부터 주희의 『가례』가 본격적인 조선시대의 예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 성종 1년(1470) 불교식 화장 금지와 성리 학식 상례와 매장을 권장하였고, 성종 2년 『경국대전』이 완성되면서 성리 학식 상장례(喪葬禮)가 포함되었다. 성종 5년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의 완성에 따라 사서인(士庶人)의 상례 절차 및 그에 따른 염습의·염습 제구를 신분에 따라 법적으로 규정해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의(壽衣)라는 용어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나오는 때는 광해군 즉위 년(1608)이며, 부의(賻儀)의 뜻의 사용된 수의(襚衣)가 순조 대의 기록에는 염습의 로사의 수의(壽衣)로 사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수의는 출토복식을 통해 살펴보면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평상시 입던 의복이나 혹은 새로 장만한 의복을 사용하였고, 후기에 오면서 형태나 크기로 보아 염습의 용도로 수의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난 수의[염습의]를 살펴보면 조선 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옷의 명칭을 바뀌었지만, 생시의 예복을 사용한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수의(壽衣))]
이 회장은 장례문화는 문헌에 기록된 것처럼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되었었다 변화된 장례문화를 잘못된 장례문화라고 주장하면서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상술로 장례문화를 왜곡 시키는 장례용품 업자들과 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억측이 더욱 청산해야 될 잘못된 장례문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