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여러분 안에 있는 것들을 죽이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6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빠져 지낼 때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8 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행복하여라.” ♣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마태오의 행복선언에 비해서 루카는 행복(6,20-23)과 불행(6,24-26)을 나누어서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쫒겨 나며, 미움 받고, 모욕과 중상을
겪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도 그들의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사람은 가난에 반대되는 부유한 사람, 굶주림에 반대되는 배부른 사람,
우는 사람의 반대되는 웃는 사람, 모욕과 중상에 반대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듣는 사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26절ㄴ)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행복과 불행 선언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가난하고 굶주리는 삶이 행복한 것일까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해서 쫒겨나고 모욕과 중상을 겪는 삶이 행복한 것일까요?
루카가 꼽는 불행한 삶인 부유하고 배부르며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삶이 세상에서는
복이 있는 것인데요.
자칫 잘못 생각하면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과 배고픔과 사람들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것이 행복한 사람일까요?’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의미 있는 말이 있습니다. 뭐가 있어야 베풀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난이나 배고픔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요. 더군다나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까요?
만일 진정한 신앙생활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헐벗고 배고픈 삶이라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루카복음의 이 대목에서 혼란스럽거나 아니면 이해가 안 되어서 머뭇거릴 수가
있습니다.
그 해답은 주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웃고 기쁘게, 또 이웃과 오순도순 모여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지요.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 해결하는 또 하나의 열쇄는 다정하게 눈을 들어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도 상상하지 못하는 고통과 함께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아셨고
또 당신 밖에 없는 제자들과의 이별도 아셨습니다.
그런 마당에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세상의 참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말씀 해주시는
것이지요.
그들은 스승을 위해서 소중하다는 가정도 그들의 이제까지의 삶도 다 내려놓고 때로는
배고 고파 안식일에 밀이삭을 비벼서 먹어야 했고(루카 6,1) 쉴 사이도 없이 군중과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마르 6,31).
물론 그들에게는 ‘즐거운 나의 집’도 없이 때로는 벌판이, 때로는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산기슭이 그들이 머문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했고 가진 것 없이 때로 배고프고 또 몰려다니는 집단의 사람들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특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심지어는 원로들까지도
미워하는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 없이 하느님 없이 살 수 없는 진정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시지만 또한 신앙인들에게도 하신 것이지요.
자기의 웃고 복에 겨워, 재산에 가려, 인기가 좋은 사람들에게 가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을 미처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시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다 좋지요.
그런데 사실은 내가 쥐고 있는 재물도 누리는 권세도 시간과 함께 언젠가는 내 곁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목매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꼭 이세상에만 살 것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좋은 곳에서 가야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 떠밀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세월이 안 가는 것은 아니듯,
하느님 나라도 오지 말라도 오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 준비 없이 맞지 말고
신앙인은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준비하자니 사라지는 지금 누리는 재물, 권세, 쾌락에 온전히 마음 빼앗기지 말고,
연연해하지도 말고 신앙인으로 이웃을 위해 일하다 보면 겪는 모욕과 갈등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빠지기 쉬운 이기적인 세상의 계산에서 벗어 날 줄도 알아야 하고 복음정신대로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배고픔, 목마름, 헐벗고, 세상 이웃과의 갈등과 마찰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오늘 4세기 후반의 성인이신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로 추대되었지만 동로마의 황후 에우독시아의 미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인 테오필루스와도 갈등도 깊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정치상황과
함께 두 차례나 유배를 떠나야 했고 407년 소아시아의 폰투스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성인께서는 설교를 잘해서 ‘황금의 입’이라는 뜻인 ‘금구(金口)’라는 별명을 붙여
‘금구 요한’으로도 불립니다.
교회를 빛낸 성인이시지만 그분이 겪은 가난과 고통 그리고 수모는 오늘 복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과 함께 사도 바오로의 서간을 묵상합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1-3)
그리고 옛 인간의 낡은 악습을 버리고 새로운 삶,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인
기쁜 삶을 살도록 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