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리라.>
▥ 하까이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1,1-8
1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3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내렸다. 4 “주님의 집이 무너져 있는데, 너희가 지금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냐?
5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6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
7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했던 헤로데 ” ♣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성모님과 성 요셉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위해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예언을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은 치유와 함께 구원의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못 받아들이거나 더 나아가서
배타적인 사람은 결국 시메온의 예언대로 쓰러지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원의 이야기 뒤에 주님의 모친이신 성모님께서는 칼에 찔리듯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루카는 헤로데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뵐 기회는 있었지만 그분을 구세주로
만나기보다는 정적으로 죽이려는 의도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런 바람은 이루어져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는 만납니다.
그러나 그는 구세주가 아니라 죄수의 초라한 모습이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이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가 가장 목숨을 걸고 있는 권력과 재력이
그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났지만 구세주의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루카는 이 사실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에게 재판을 받던
예수님이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헤로데의 관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헤로데에게 보냅니다.
마침 그 때에 헤로데는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즉시
그에게 보냈고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래전부터
그분을 보고 싶어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어떤 표징이라도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로데가 이것저것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루카 23,8-9)
그러자 헤로데는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한 다음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요즈음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있는가하면 지식과 재물을 앞세워 교만의
꼭대기에서 헤로데와는 다른 모양이지만 예수님과 신앙인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셨다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때로는 비웃음으로 때로는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이시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배타의 대상,
미움의 대상이 되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과 이웃으로부터 완전히 이해받고 따르기를 원하는 이 고집불통에서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을 세상 비웃음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선물인 것입니다. 그 분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 마음만 먹으면 말을 타고서라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헤로데의 삶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서 그런 요소는 없는지 반성해야겠습니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