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 있는 기쁨 (빌립보서 4:1-4)
며칠 전 아는 목사님이 연락이 와서 통화를 했다. 목사님은 감독에 출마했다.
어디 잘 돼 가는지? 감독이 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아니요 안될 것 같애요..
안돼도 괜찮다고 했다. 이 목사님은 종종 전화를 걸어와서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위로하고 격려해 주고...
지난날을 이야기 하다가 한 30년 전에 목회를 시작할 때, 교통사고가 난 이야기를 했다. 차량이 전복하여 같이 타고 있던 사람이 죽기도 하고 식물인간이 되기도 한 큰 사고였다. 목사님은 병원에 6개월간 입원을 했다.
사고 후에 어떤 변호사가 와서 소송을 하라 했지만....결국 소송을 해서 보상금 일억 이천만을 받았다. 그것으로 일산에 땅을 샀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자 땅값이 올라 육억에 팔고, 이곳저곳에 다시 땅을 샀는데 그만 속아서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너무나 화가 나서 사기꾼을 찾아 다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 그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위암 수술을 하고 먹기도 어려워서 몸에 살이 빠져서 바싹 야위어 있을 때였다.
이 목사님은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오기도 하고 암으로 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믿었던 교회 집사님에게 사기를 당해 몇억을 날리기도 하고...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사고가 나고 큰 병에 걸리고, 사기를 당해 재산을 모두 날리고.. 이런 일을 당하면 기쁘지 않고 낙심이 되거나 우울하거나 분노가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이런 것들을 초월한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감옥에 있으면 어떨까? 그런데 바울은 내가 기쁘다고 하면서 여러분들도 기뻐하라고 한다.
기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기쁘다고 하고 여러분도 기뻐하라고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우리들이 때로는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나를 두르고 있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자신을 조절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뻐하라..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주제이다. 오늘의 말씀은 환경을 초월하여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사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되고.. 두려운 마음이 기쁨과 찬송이 되는 은혜가 충만 하기를 바란다.
첫째, 그러므로 주안에 서라 했다.
바울이 긴 글을 쓰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주 안에 서라고 했다. 주 안에 서야 기쁜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 주 안에 서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안에 서라는 말씀은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6: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라고 했다.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이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예수님을 믿었다. 특별한 은혜도 체험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날 사업차 거래선의 중요한 김사장과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사장이 ‘자네 교회 다니나? 예수믿나?’ 하고 물었다. 김사장이 교회 다니지 않는 이 사람이 내가 교회 다닌다 하면 사업에 손해가 날 것 같아서 적당한 말로 얼버무렸다. ‘머 옛날에는 한두번 교회 다녀 봤지만 머 지금은...’
저녁 식사하면서 김 사장과 술도 하고 담배도 피면서 내가 교회 다닌다 하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자 이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일까? 주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일까? 주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뭐라고 하실까?
베드로가 이런 비슷한 일을 했다. 예수님이 잡혔을 때, 너도 예수의 제자지? 이때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저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당신이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고 하자. 더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저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울었다고 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내 믿음이 고작 이거로구나.. 주님의 실망한 눈빛, 그것을 베드로가 보았다. 자, 그런데 이것이 베드로 만의 일일까?
믿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다윗은 많은 전쟁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다. 시편 20:7에 사람들이 혹은 전차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했다.
시편 18:29에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용감하게 적진을 달리며 성을 뛰어 넘었다고 했다. 골리앗은 칼과 단창을 의지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나갔고 승리했던 것이다.
믿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요14:1)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을 때 근심이 사라진다.
에브라임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엘가나는 브닌나와 한나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 남편이 한나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조롱했다.
한나는 브닌나로 인하여 마음이 많이 아팠다, 또한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처지에 대해서 울고 먹지도 못했다. 어느해 한나는 성전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들었다.
엘리가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한나가 이 말을 듣고 ‘아멘...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한나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졌다. 밥도 잘 먹었다. 근심이 없어졌다고 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였더니 하나님이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다. 태어난 그 아들이 위대한 사무엘이었다. 한나의 근심은 하나님을 믿을때에 사라졌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던 사람이다. 다니엘의 적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다. 앞으로 한달간 왕 외에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는 왕의 어명을 내렸다.
다니엘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사자의 밥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하루에 세 번 기도를 하였다. 다니엘이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세상일에 초연하여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가 있다.
둘째,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져야 기쁘고 행복한 성도로 살 수 있다. 한 마음이 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모두 얼굴이 다른 것만큼이나 생각이 다르고 마음도 같지 않다.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은 우리 모두가 마음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 교회 성도로서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한마음이 될 수 있을까?
빌립보서 2:1-8절에 보면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여기서 한마음이 되려면 겸손한 마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자기를 낮추는 마음,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아야 같은 마음, 한 마음이 되고, 기쁜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할 수가 있다.
지난 목요일에 교역자 회의가 있었다. 주최하는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했다. 젊은 목사님이 조그마한 교회에 와서 지난 몇 년간 목회를 열심히 했다. 그 목사님이 자신의 간증을 했다.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어떻게 목사로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
교역자 회의를 마치면서 내가 그 목사님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은 음성도 좋고 설교도 잘하고 목사 훈련도 잘 받았고... 앞으로 큰 목회를 할 것 같다..’ 하고 격려를 했다. 누구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높여 줄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다.
겸손한 마음...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를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 이 초연한 마음, 겸손한 마음속에 기쁨이 우러나온다.
우리들은 스스로 낮아져야 주님이 높이신다. 마태복음 20:26-28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셨다.
셋째, 너희 동역자들을 도우라 말씀하셨다,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일했던 여인들과 클레멘드와 같은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했다. 교회에서 일하는 성도들을 도우라... 목회자를 도우라는 말씀이다.
여기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은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루디아와 기도로 돕던 여인들이다. 루디아가 강가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루디아가 바울 일행에게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우리 집에서 머물러 달라 했고 바울 일행은 루디아의 도움을 받았다. 루디아가 바울을 돕는 것처럼 도우라는 말씀이다.
동역자들을 돕는 일은 섬기는 일이다. 섬기는 일에 기쁨이 있다.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의 옥바라지를 했다. 성도들이 영치금을 마련하여 바울이 쓸 수 있도록 했다. 동역자들을 돕는 것은 물질로 돕는 것이다.
빌립보교회에서 모은 영치금을 모아 가져왔던 빌립보 교회의 담임목사 에바브로 디도가 병에 걸렸다. 이제 죽고 살지 못할 것 같은 중한 병이었다. 이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합하여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에바브로 디도를 살려 주셨다. 동역자들을 돕는 방법은 기도로 돕는 것이다.
2013년 4월 16일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작곡한 쉐아가 하나님의 나라로 갔다.
캐내다 출신의 젊은 음악도였던 그는 23세 되던 해 뉴욕시티 음악 오디션에 합격하여 라디오 전속가수로 채용됐다. 그는 음악 방송 담당자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방송에서 찬송을 불러도 되겠느냐 였다.
방송국에서는 합의된 노래만 부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한 참을 고민하다가 어머니와 상의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도로 응답을 받자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아노에 앉았는데, 피아노 건반 앞에 낯선 시 한 편이 놓여 있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이 읽기를 희망하면서 갖다 놓은 ‘밀러 부인의 시’였다.
그 시를 읽는 순간 아들 조지는 눈물을 흘리며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답고 영감이 넘치는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가 탄생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로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그는 방송국 계약을 거절하기로 결심 했다. 그리고 다음 주일 그가 나가는 교회에서 그 찬양을 처음으로 불렀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성가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조건으로 시카고 방송국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그 방송국에서 조오지 쉐아는 자기보다 열 살 아래의 젊은 전도자를 만났다. 그 전도자가 자기 전도 집회에서 찬양을 해 달라고 부탁했고 쉐아는 오케이 했다. 그 전도자가 바로 위대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였다.
그 후 쉐아는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전 세계를 다니면서 찬양을 했다. 주에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쉐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한 가수로 기네스북에 기재되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과 도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