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마태17,22-27)
<때로는 기다려주자>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맞서지 않는 너그러움이 요구됩니다.
성전 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은 로마 총독이 로마제국을 위해 거둬들이던 세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징수하던 인두세, 사람의 머릿수에 맞춰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의 임금들은 관세나 인두세를 남에게서 받아내지 자기 가족에게 부여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십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 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엄격하게 정도를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아량,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같이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아우슈비츠 감방에서 가족이 있으니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한 사람을 대신하여, 굶겨 죽이는 감방에 들어가 처절한 옥중생활을 하다가 감방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생전에 성모승천 대축일에 죽고 싶다고 한 그의 소원이 비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그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습니다. 콜베 신부는 의연하게 다른 포로들에게 “우리는 곧 천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일에 하느님 안에서 여유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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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준다
아름다운 말씀으로 한주가 열립니다
체칠리아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