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인 필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소송 중에 매우 골치 아픈 소송이 하나 있다. 필자의 의뢰인인 A 종중 소유의 토지에 B 종교단체가 몰래 공원묘지를 조성하여 수십년간 제3자들에게 사용료와 관리비를 받으며 한마디로“땅장사”를 해 온 것이다. A종중의 변호사인ㄴ 필자가 B종교단체를 상대로 위 토지를 인도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극히 정당한 판결이었다.
골치아픈 문제가 발생한 건 여기서부터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160조는 “(분묘소유자의 허락없이) 분묘를 발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A종중이 B종교단체로부터 위 토지를 인도받으려면, B종교단체가 그 위에 조성하여 제3자들에게 임대해 놓은 30여기의 분묘를 발굴, 이장해야 하는데, 분묘소유자들은 자신들도 B종교단체 때문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분묘의 발굴 및 이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종중이 토지소유자라고 하여 위 토지위에 조성되어 있는 30여기의 분묘를 발굴, 이장했다가는 형법 제160조에 위반되게 된다. B종교단체는 팔장을 끼고 웃으며 버티고 있다. 1950년대 제정된 형법 제160조로 인해 대법원 판결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참고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쳐 ‘무연고 분묘’를 이장할 수 있지만,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2000년에 제정되어 그 전에 이미 조성되어 있는 이 사건 30여기의 분묘에는 적용되지 않고, 더욱이 이 사건 분묘들은 ‘무연고 분묘’가 아니기 때문에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될 여지도 전혀 없다.)
결국 의 땅을 무단점유하여 수십년간 사업을 해 온 B 종교단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A종중이 떠앉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아까 언급했듯, 1950년대 제정된 형법규정이 시대의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제정된 형법 제160조는 매장방식의 장례절차가 당연하고, 신성시되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고인의 자손들은 시신에 고인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존엄하게 생각하고, 이를 신성시하여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던 것이 우리의 유교식 전통장례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례방식의 신성함, 시신의 존엄함을 1950년대 제정된 형법이 담게 되었고, 이 형법규정은 7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폐지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 장례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시신의 털끝하나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되었던 1950년대가 아니라, 이제는 시신을 화장하여 골분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의 형태로 땅에 묻거나 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형법 제160조는 시대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된 것이다. 이는 2000년에 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역시 매장 방식의 장례절차를 중요시하여 이에 관한 규제에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하고 있다. 장례절차의 현실에 맞는 관련법규의 제,개정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