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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산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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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 산행사진 (2017년 4월~) 11월 5일 황학산-싸리산-명성황후생가(여주여강길 5~10~10-1코스)
산신령(전성민) 추천 0 조회 23 24.11.06 08:2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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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1.08 20:22 새글

    첫댓글 ●황학산-싸리산-명성황후생가(여주여강길 5~10~10-1코스), 잘 봤습니다.
    ◆‘명성왕후’ 와 ‘명성황후’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기에 찾아봤습니다.
    ‒‘명성왕후’와 ‘명성황후’는 거의 200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를 둔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
    ▶명성왕후(明聖王后, 1642~1683)는 조선 현종의 유일한 왕비로 숙종과 세 공주를 낳았으며, 성은 김(金)씨입니다.
    지능이 비상하고 총명하였으나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 현종이 후궁을 한 명도 두지 못했다고 하고, 대비가 된 후에도 아들 숙종이 총애하던 궁인 장옥정(희빈 장씨)이 남인과 연통한다는 이유로 내쫓기도 했습니다.
    정사에 관여하며 노골적인 언사와 감정 표현으로 사가와 유림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는 조선 고종의 비(妃)로 성이 민(閔)씨이고, '민비'라고도 합니다.
    명성황후는 대원군의 집정을 물리치고 고종의 친정(親政)을 실현하였습니다. 또한 통상ㆍ수교에 앞장서 1876년 일본과 외교 관계를 맺게 했으며, 임오군란 후에는 청나라를 개입시켜 개화당을 압박하고 친 러시아 정책을 수행하다가 을미사변 때에 피살되었습니다.​
    .................

  • 작성자 24.11.08 23:07 새글

    감고당에서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를 생각하며
    200년 세월을 뛰어넘는 두왕비중 명성황후가
    조선의 현대사에 끼친 역사적 의미와
    일본인에 시해당한 운명적 삶에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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