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강(Rio Nabão) 서쪽에 만들어진 템플기사단의 도시
투마르는 템플기사단의 주둔지로 12세기 후반에 건설된 도시다. 1118년 만들어진 템플기사단은 십자군의 일원으로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템플이라는 이름은 그들이 한때 주둔했던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에서 나왔다. 템플기사단이 유럽으로 철수하면서 구알딩 파이스(Gualdim Pais)가 1157년부터 포르투갈 군대를 이끌게 되었다. 그는 1160년 투마르 성채를 완공하고, 거점을 그곳으로 옮겼다.
이어서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를 모방해 그리스도 수도원 교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1190년 원통형의 로툰다(rotunda)가 중심이 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완성되었다. 1319년에는 템플기사단이 해체되었고, 투마르 성채와 교회를 1318년 창립된 그리스도 교단이 관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사단원과 재산이 그리스도 교단으로 편입되었다. 1357년에는 그리스도 교단이 성채와 교회의 주인이 되어 수도원을 확장해 나갔다. 먼저 서쪽의 기도실을 성가대석으로 개조하고, 로툰다의 기둥과 아치를 시대에 맞게 변화시켰다.
해상왕 엔히케 왕자가 지배권을 행사하던 1417년부터 수도원에는 두 개의 회랑 건물이 지어졌다. 1426년에는 로툰다 동쪽에 상 조르지 경당을 새로 만들고, 수도원 아래 강가에 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484년에는 주앙 2세의 사촌인 마누엘이 수도회장이 되어 성구실을 마련했다. 1492년에는 수도원 확장에 들어갔고, 1495년 왕이 된 마누엘 1세의 도움으로 1499년 사제들의 생활 공간, 주 제단, 벽감, 기둥과 아치의 그림과 조각에 대한 대대적인 확장과 개조가 이루어졌다. 1504년에는 미사에 참여하는 신도들을 위한 교회가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신앙의 공간 로툰다, 신도들이 미사를 보는 교회, 회랑과 중정으로 이루어진 사제들의 공간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주앙 3세 때인 1557년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회랑 건설을 시작했다. 투마르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시작해 고딕, 마누엘, 르네상스 양식이 차례차례 덧붙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투마르 성과 수도원은 포르투갈 건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영토회복운동(Reconquista)에서부터 대항해시대에 이르기까지 포르투갈인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건축이어서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나방강변에 형성된 투마르는 크게 보면 테주강의 중류에 위치한다. 나방이라는 강 이름은 이곳에 형성된 고대 도시 나방티아(Nabantia)에서 유래했다. 해상왕 엔히케 왕자 때인 15세기 전반 댐을 만들어 홍수를 방지하고 수리시설을 만들면서 투마르 주변이 옥토로 변했다. 이를 통해 도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났고, 도시계획을 실시해 도로와 건축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나갔다. 1492년부터 에스파냐로부터 박해를 받던 유대인이 개방적인 투마르로 이주해 오면서 기술과 무역을 통해 도시의 부를 증대시켰다. 지금도 15세기에 지어진 유대인 교당이 잘 남아 있다.
1503년부터 1614년까지 그리스도 수도원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교가 만들어졌다. 투마르는 18세기에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그것은 수력발전으로 기계를 돌릴 전기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해통(Jácome Ratton)이 직물공장을 차려 내수는 물론이고 식민지(국가)에 수출까지 했다. 이와 함께 제지공장, 주물공장, 유리공장, 비누공장 등이 생겨났다. 1834년에는 그리스도 수도원이 해체되었다. 투마르에는 현재 2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고, 외곽지역까지 포함하면 인구가 4만 명 정도 된다.
투마르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유산
투마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 공화국 광장이다. 이곳에 17세기에 지어진 시청 건물이 있고, 세례 요한 성당이 있다. 광장 한 가운데는 투마르에 성채와 수도원을 처음 세운 파이스(1118~1195)의 동상이 서 있다. 파이스는 알퐁수 엔히케 왕의 명령을 받고 1139년부터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포르투갈 장군이다. 1157년 토마르로 귀환해 템플기사단의 군대를 이끄는 네 번째 대장이 되었고, 1160년 투마르 성을 완성한 후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곧이어 로툰다 성당을 봉헌하고 1190년까지 그리스도 수도원 교회를 완성했다. 그는 1195년 투마르에서 세상을 떠나 올리브의 산타 마리아 성당 템플기사단 묘지에 묻혔다.
동상 뒤쪽에 있는 시청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정면에 세 개의 아치형 현관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소반 축제(Festa dos Tabuleiros)에 사용했던 빵과 꽃장식을 볼 수 있다. 소반 위에 다섯 개씩 6층의 원통형 빵을 만들고, 그 주변을 꽃과 밀로 장식했다. 장식 위에는 왕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를 설치했다. 4년에 한 번씩 7월에 열리는 소반 축제에서 여성들이 짝을 이뤄 빵과 꽃장식을 머리에 이고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인다. 밀과 빵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성령에게 감사하는 일종의 추수 감사 축제다.
시청 너머 서쪽으로는 투마르 성곽이 보인다. 공화국 광장 동쪽으로는 세례 요한 성당이 있다. 세례 요한 성당은 15/16세기 고딕과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당 정문은 화려한 장식의 고딕양식이며, 시계가 있는 종탑은 마누엘 양식이다. 종탑의 시계 아래쪽에는 템플기사단의 십자가, 대항해시대를 상징하는 혼천의, 포르투갈 왕실의 방패형 문장과 왕관이 새겨져 있다. 성당 제단에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화가 로페스(Gregório Lopes)가 1530년대 그린 성화가 걸려 있다. 로페스는 이때 그리스도 수도원 로툰다 홀 벽에도 여러 점의 성화를 그렸다.
그리스도 수도원 들여다보기
토마르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성채와 그리스도 수도원이다. 이들은 공화국 광장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수도원은 성의 북쪽 문을 통해 들어간다. 성은 언덕을 따라 수도원을 감싸고 있다. 수도원은 원통형의 로툰다 교회, 마누엘 본당, 회랑과 정원 그리고 강당과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수도원 건물로 들어가 회랑과 방을 살펴본다. 수도원 건물에는 무려 5개나 되는 중정이 있고, 그 주변을 회랑과 방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중정에서는 분수대도 볼 수 있다.
먼저 세탁(Lavagem) 회랑으로 들어간다. 2층의 고딕식 회랑으로, 항해왕 엔히케 왕자가 이곳을 다스릴 때인 1433년경 지어져 수도사들의 세탁장으로 사용되었다. 이어서 묘지(Cemitério) 회랑을 살펴본다. 기사와 수도사들의 매장지로 사용되었으며, 1523년에는 바스쿠 다가마의 형제인 디오구(Diogo)가 이곳에 묻혔다. 16세기에 건축된 산타 바바라 회랑에서는 수도원 강당의 창문과 마누엘 본당의 서쪽 정면을 같은 눈높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누엘 본당의 서쪽 정면은 마누엘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아래층에 직사각형 창문을, 위층에 원형 창문을 만들고, 그 주위에 그리스도 기사단과 마누엘 1세 국왕의 상징, 밧줄, 산호, 식물 등 다양한 모티브를 새겨넣었다.
그리고 주앙 3세 때 건축이 시작된 회랑이 있는데, 계단을 통해 기숙사와 본당을 연결한다. 방으로는 식당과 주방 그리고 부엌에 들어갈 수 있다. 주방에는 항아리, 도자기 그릇 등이 보인다. 부엌에는 화덕이 있다. 주방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긴 식탁과 의자가 있다. 이곳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물을 저장하고 있는 저수실이 아직도 존재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로툰다 교회는 포르투갈 건축과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들어가는 입구의 아치부터 화려한 조각과 그림으로 치장했다. 내부에 8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로 아치형 공간을 만들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치 위로는 천사들이 예수의 가시면류관, 머리 부분, 의복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기둥 밖으로 신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밖으로 16각형의 벽이 둘러쳐져 있다. 이들 벽에는 예수의 삶을 묘사한 그림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성인과 주교를 그리고 조각한 작품들이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그림은 앞에 언급한 로페스와 그의 장인이자 스승인 알퐁수(Jorge Afonso)가 그렸다. 로페스가 그린 대표적인 그림으로 상 세바스티안의 순교가 있다. 세바스티안 성인은 로마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인 3세기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 그림에서 세바티안으로 기둥에 묶여 있고, 궁수들이 쏜 화살이 가슴, 옆구리, 배에 꽂혀 있다. 세바스티안은 대개 잘생긴 젊은이로 묘사되고 있다. 성인 세바스티안은 운동선수, 궁수,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 수도원을 나오며 묘지 회랑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묘지석을 잠시 살펴본다. 두 마리 소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 십자가, 템플기사단 십자가, 5각형의 별 같은 조각이 눈에 띈다. 수도원을 감싸고 있는 성곽은 회랑을 따라 돌며 살펴볼 수 있었다. 투마르 성곽은 보수를 하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벽 안쪽 일부 구조물이 훼손되었고, 곳곳에 나무가 자라고 있고, 성벽 밖은 내리막이어서 적이 공격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수도원과 성곽을 나온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코임브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