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3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시온에 서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변함없는 하느님의 집으로 여깁니다.
그 성전은 견고한 성 안에 있어서 세상의 어떤 전쟁이나 이변이 있어도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의 희망과 위로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사실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1).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이사 26,1-2)
구약에서 하느님을 표현 할 때 흔히 ‘바위’나 ‘성채’, 또는 ‘보루’에 비유해서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사람은 늘 음직이고 방향도 잡기 힘든 ‘바람’으로 보지만 그만큼
하느님만이 변하지 않으신 분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견고한 성읍, 보루를 비유해서 겨레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든든함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입으로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을 반석위에 지은 집에다 비유하며 말씀하십니다.2)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마태 7,25)
그러나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을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비유하십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7,27)
바위와 모래의 기준을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기초에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흔들림도 없는 바위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시는
우리의 성실하시고 든든한 분이십니다.
‘가깝고도 먼 길’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머리와 가슴은 거리로는 가깝지만 머리로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참 멀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머리로는 무슨 사랑인들, 또 무슨 선행인들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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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비유할 때, 창을 막아주는 ‘방패’, 성읍을 위험에 보호해주는 ‘성벽’, ‘보루’ 그리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라고 일컬으며 노래한다.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정의 성채이십니다.”(시편 18,2) 이사야에서도 저자는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 26,4) 다윗도 죽음의 위기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청한다.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 저의 피난처, 저를 구원하시는 분, 당신께서는 저를 폭력에서 구원하셨습니다. (2사무 22,3)
2) 동양사상에서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다.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다. 학문은 실천하는 데 이르러 그친다.” 중국 순자(荀子), 유효편(儒效篇)
♣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 ♣
마태오는 주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자리를 마련하여 앉으시고 제자들에게
‘참행복’(5,1-12)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가르침의 산상설교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르침의 말씀으로 산상설교의 대다원이 마무리 됩니다.
유대인들도 율법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오늘의 복음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하느님 나라는 입으로만 ‘주님, 주님!’이라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려는 뜻은
바로 입으로 하는 신앙은 무너지기 쉽고 실행을 바탕으로하는 신앙은 강물이 밀려오는
시련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쓸어 지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실을 이런 말씀으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24-25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막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확고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그런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견고한 성읍을 세우신 분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 바로 그런 말씀을 실의에 빠진 백성에게 전하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 26,1-4)
신앙인은 가슴에 변하지 않는 하느님을 모시고 삽니다. 신앙인은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입으로만 되내이는 실천하지 못하는 삶의 한 귀퉁이를 거닐 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인인 우리는 사실 행복한 사람이고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또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문뜩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쓰신 글을
아끼는 분으로부터 전해 받고
저도 전해드립니다.
‘근심을 덜어가는 삶’
내 인생에 문제가 생겼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이것 또한 지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문제였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인생길에 내 마음 꼭 맞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나라고 누구 마음에 꼭 맞겠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내 귀에 들리는 말들이
좋게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릴 때가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세상은 항상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
마땅찮은 일이 있어도
세상은 다 그렇다고 하고 살면 됩니다.
다정했던 사람도 항상 다정하지 않고,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온 것처럼 가는 길이니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무엇인가 안 되는 일 있어도
실망하지 맙시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일이 잘 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마음 쓰고 아파하지 맙시다.
세상은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집착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됩니다.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첫댓글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