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0 (살세다)
久寧 이효범
메리데(Melide)에서 살데다(Salceda)까지 25km를 걸어왔다. 어제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글을 쓰려고 1층 다용도실로 내려오니까, 한국 할머니 두 사람이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나를 보더니 미리 알았으면 밥만 더 하면 되었는데 하며 미안해한다. 75세, 70세인데, 이번에 세 번째라고 한다. 동생이라는 분은 관절주사를 맞고 왔고, 지금 허리 진통제를 먹으며 걷고 있단다. “나는 한 번도 힘든데, 아프다면서 왜 세 번씩이나 걸어요?” 내가 물었다. 동생이라는 분은 웃으며, 산티아고에 향수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고 했다. 왠지 자꾸 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종교가 60%, 성취감이 30%, 나머지가 10%가 아닌가 싶어요.”라고 부연한다.
어릴 때부터 카톨릭 신자니까 산티아고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는 못 걸을 것 같다가도 하루 일정량을 걸으면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런대로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신자로서 이런 말을 하면 불경죄에 걸릴지 모르지만, 이 할머니들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거대한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누구나 걸어서 목표에 도달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사람은 누구나 걸을 수 있다. 걸을 양도, 걸을 날짜도, 모두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도달하면 자신의 성취가 자랑스럽고, 하늘에 선을 쌓았기 때문에, 죄 사함도 받고,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 게임에는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하루 10유로면 잘 수 있고, 먹는 것도 숙소 주변에 있는 슈퍼에서 재료를 사와 요리해서 먹으면 된다. 혹 자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사실 남녀노소가 떼로 자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언제 외국놈들과 섞여서 이렇게 자본 적이 있는가? 어제 나의 침대 옆에도 덴마크에서 온 뚱뚱한 여자가 잤다. 그녀는 내게 사진으로 코펜하겐에 있는 인어상도 보여주었고, 안데르센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코 곤다면 내가 먼저 잠에 떨어져 코 골면 된다. 노인들에게 이 얼마나 재미난 놀이인가? 물론 젊은이들도 이 길을 걸으면서, 세계의 다양한 종족들과 대화하고 경험을 나눈다면 참으로 유익할 것이다.
오늘 걸은 길도 좋았다. 끝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가로지르는 것처럼, 오르고 내림의 연속이었지만, 어떤 경우는 깊은 산속을 걸었고, 어떤 경우는 마을 길을 걸었다. 종교와 역사와 자연이 만든 이런 고상한 길이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인류가 칭송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길을 걸으며 한편을 시를 썼다.
“걸어보니 알겠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걸어보니 알겠다,
내 발자국이 얼마나 작다는 것을.
걸어보니 알겠다,
그리움이 쉽게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곳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며
그림자와 앞뒤 하며 걷는다.”
2024.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