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31 (산티아고)
久寧 이효범
산티아고까지는 25km 남았다. 오늘은 15km만 걷고, 내일 새벽 동녘에 붉은 해가 뜰 때 개선장군처럼 포부도 당당하게 입성해야지 하고 계획했다. 그런데 숙소를 예약한 라바콜라(Lavacolla)에 오니 점심밖에 안 되었다. 오는 길이 상대적으로 파도가 잔잔했고, 내리막이었다. 그리고 알림판에 20km 남았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등에 멘 배낭이 초등학교 때 허리춤에 찼던 도시락같이 가볍게 느껴졌다. 이 시골에서 하루를 썩을 수는 없다, 그냥 직진하자. 내가 누구인가. 개구멍이 전공이 아닌가.
산 마르코스(San Marcos)에 오니 길옆에 조그맣고 깔끔한 성당이 있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기 위해 모자를 벗고 들어갔다. 성당 안은 꽃들로 가득하여 화려했다. 중년 여성 두 분이 성모님 앞에서 오래 기도하더니 헌금을 넣고 간다. 나도 그들의 진지한 표정에 감동을 받아 성모님 앞에 섰다. 한참을 보니 색이 바랜 성모님은 관세음보살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관세음보살은 어머니의 얼굴로 바뀐다. 아, 어머니. 평생 동안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신 분. 나는 왜 이 먼 이국땅 순례길의 마지막에 어머니를 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길이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산티아고가 5km 남았다는 표지석에 오니 넓고 편안한 고개 정상에 이르고, 고개 밑으로 멀리 빨간 지붕을 한 산티아고가 펼쳐졌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산타아고로 내려가는 길은 바늘구멍이 아니었다. 넓게 난 길로 순례자들이 가볍게 떠들며 기쁜 얼굴로 내려간다. 순례의 종착점인 대성당은 이 순례길에서 볼 때는 도시의 끝에 있었다. 도시 입구는 현대식 건물들로 이어져 있어 의아스러웠다. 이런 풍경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계속 가니 풍경이 달라진다. 멀리 성당의 지붕이 보이니 길이 과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좁고 고풍스런 건물들을 한참 지나니 한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블랙홀처럼 성스러운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바로 성당 지역이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내가 마음속으로 찾았던 것이, 동굴 같은 어두운 문을 지나니, 바로 왼쪽으로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대성당 앞 광장이다. 순례자들이 환희에 차 어떤 사람은 배낭을 번쩍 들어 올리고, 어떤 사람은 눕고, 어떤 사람은 성당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혔고, 눈물을 내며 엉엉 울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두 발과 신발에 감사했다.
오는 길을 회상해 보았다.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전공을 바꿔 신학을 공부하는 선한 얼굴을 가진 한국 교민 청년을 만났다. 부디 이 길에서 신앙이 확립되기를 희망해 본다. 어떤 도시에서 페루에서 온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다는 그 청년은 숙소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으쓱한 골목도 있어 의심이 들었다. 선의를 가진 청년에게 미안하다. 어떤 구간에서 나이 든 아버지와 딸이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을 한적한 저녁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아버지는 따뜻한 습만 먹고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계속 쓸어내리며 한숨만 쉬었다. 저녁 먹는 긴 시간 동안 아버지와 딸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들의 사연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슬픔이 내게도 전해졌다. 부디 그들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내가 산티아고를 다시 올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무엇인가 인생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순례자들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곧 프랑스 파리에 가서 아내를 만날 것이다. 내가 너무 초라해졌다고 아내는 얼굴을 돌릴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스런 아내여, 나는 이 길을 걷는 동안, 서양의 금발 여자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당신만 생각했다오. 그러니 제발 얼굴을 돌려 웃어주세요. (마지막 글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정리하려고 했지만, 혹시 현장에서의 이 긴장과 분위기를 놓칠 것 같아. 어설프게 마무리를 합니다. 모든 분들게 좋은 운들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끝)
2024.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