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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논쟁
- ROUND 1 -
강 문 석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우파가 나라 망쳐놓으면 좌파가 겨우 살려놓았지,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 너 같은 영악한 사기꾼의 논리에 이젠 국민들 안 속는다. 허무맹랑한 거짓논리로 국민들 조롱하지 마라.” 100명 넘는 단톡방에 올라온 글치곤 저돌적이면서도 무례하기가 짝이 없다. 칼럼을 쓴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인터넷카페에 올리면서 필자를 별도로 밝혔던 것이지만 좌파이념에 몰입되어 흥분한 이 사람은 글을 올린 사람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소설가 단톡방인데도 짧은 글에서 그는 오탈자까지 몇 군데 보이고 있었다.
직장 은퇴 후, 20년 넘게 수필을 써오면서 <산지기나라> 인터넷카페에다 사진을 곁들여 몇 백편이나 되는 포토에세이를 올렸었다. 직장 떠나온 90년대 말, 뜻한바 있어 부산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소설 창작 이론을 배우고도 바로 소설 쓰기에 매달리지 못했다. 젊은 날 미군부대에서 촬영과 현상 인화까지 손수 했던 사진의 묘미에 흠뻑 빠져 포토에세이 포스팅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난 코로나 직전이었던 5년 전, 뒤늦게 소설가로 나선 때문에 협회 단톡방 초대도 그만큼 늦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 공간에 올린 글로 이처럼 가혹한 공격을 당한 건 80평생 처음 있는 일인지라 똥물을 한 바가지나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무례를 저질렀으나 그 이름만으로도 그가 여성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흥분한 때문인지 한글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두세 군데 어긋났지만 여기에다 세세히 까발리지 않는 게 미덕일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가라는 인물이 필자와 카페지기를 구분할 줄 몰랐다. 시쳇말로 어느 게 된장이고, 어느 게 똥인지 찍어먹어 보지 않고는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위인이었던 것이다.
문제의 칼럼은 단톡방에서 나누기엔 다소 분량이 긴 편이라 글을 옮기면서도 읽는 사람을 힘들게 하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데도 망해가는 나라의 현실을 우려한 내용인지라 포스팅은 미룰 수 없었다. 같은 단톡방에서 공격하는 글을 읽은 소설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그 사람이 쓴 글이 아니란 말을 그에게 해주지 않았다.
“강 선생님과 양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국민을 바른 길로 선도하는 소설가들입니다. 우파 좌파 운운하며 논쟁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정치는 그 결과를 정치가에게 맡기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란 글이 먼저 달렸다. J소설가였다.
J의 글에 대한 응답이었는지 공격했던 여류가 “제 글 위에 올려놓은 ‘좌익의 선동으로 대한민국 망하고 있다’라는 강문석 님의 글을 보고 분개했을 뿐입니다. 소설가는 소설 쓰는 일에만 신경쓰라하셨는데 역사인식이 바로 서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소설을 쓰겠습니까. 정치 판단은 양단점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이런데 올리지 말아야 하는데 엉털없는 잡문의 글이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흥분했습니다.” 난 공격자의 이 '양단점'과 ‘엉털없는’이 도대체 무슨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이해난망이었다.
대구 출신 여류작가의 견해가 이어졌다. “제 남편은 호남에서 출생하여 광주민주화운동 한가운데를 걸어 나온, 뼛속까지 좌파(여보 미안)로 느껴지는 사람, 저는 영남 출신으로 현재 친정 형제들 모두 대구 도심에 살고 있습니다. 시댁 단톡방에서는 윤석열이 나라 말아먹는다며 욕하고, 친정 단톡방에서는 이재명이 나라 거덜 내고 있다며 매일 욕을 한 바가지씩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희 부부는 살 섞으며 잘살고 있습니다.
부부간 정치이념이나 신념이 같을 때도, 다를 때도 있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줍니다.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빨갱이한테 넘어간다며 크게 걱정하시던 저희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습니다만 나라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이쪽, 저쪽, 이편, 저편 모두 한 민족입니다. 우수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자축하는 의미로 베토벤의 <환희의 찬가> 띄웁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
마지막으로 짤막한 글을 올린 M작가는 그의 자질을 의심할 만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ㅋ ㅋ ㅋ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이곳은 문학인들의 방입니다. 꼭 정치이념적인 글을 올리셔서 이렇게 퇴박맞는 분들을 봅니다.” 난 그에게 문학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반문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나라를 잃은 역사 속 윤동주나 이육사 심훈 만해 같은 선각자를 그에게 들려줘도 그가 이해할 만큼의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학세계에도 그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도처에 엉터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칼럼은 며칠 전, 현직 때의 선배가 메일로 보내온 것이었다. 그러고 내용이 현 시국에 시의적절하겠다 싶어 나의 카페에 올렸다. 선배는 경기 분당에 사는 92세 원로로 동란 땐 북한에서 청년에 가까운 고등학생이었을 터인데도 자유를 찾아 삼팔선을 넘어왔으니 지금도 6.25를 떠올리면 선배가 먼저 생각난다.
현직 때, 당시 사옥이 여의도에 있었던 중앙전자계산소에 선배가 사업소장으로 근무할 때 업무출장으로 찾아가 처음 만났으니 그 세월이 실로 까마득하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월남한 선배를 떠올리노라면 선배보다 12년 먼저 태어나 월남한 철학자 김형석 교수도 떠오른다. ‘104세 청년’으로 불리는 김 교수는 요즘도 칼럼을 쓰고 강연도 다니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세인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있다.
선배가 보내온 칼럼에 글쓴이의 직함과 이름이 빠진 게 약간 아쉬웠지만 대신 아호가 들어 있었다. 지금처럼 나라가 뿌리째 좌경화되면서 극도로 혼란한 때에 국민들에게 꼭 필요할 내용 같아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몇 군데 손질한 후 노인세대가 읽기 쉽게 글자의 크기와 굵기도 약간 키웠다. 그러곤 일차로 매일 카톡으로 만나는 쉰 여 명 지인들에게 보냈다.
원래 칼럼 제목은 ‘허주일기’였고 ‘이제 경고도 부질없어졌다’란 부제를 달고 있었다. 난 읽는 사람이 단박에 알 수 있도록 글 제목을 바꿔야할 것 같았다. 내용을 두세 차례 읽고 난 후 ‘나라는 어떻게 망하나’로 글 제목을 바꿨다. 칼럼니스트는 지난 총선 5일 전, 애국충정에서 ‘마지막 경고’라는 글을 올렸고 투표함 뚜껑을 열었더니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먼저 털어놨다. 다음은 부분적으로 약간씩 손질한 그의 글이다.
20세기 들어 잘나가다가 망한 나라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망상에 젖은 좌파권력을 탐닉하는 자, 그를 지지하는 어리석은 국민들. 특징은 딱 이 두 가지다. 이 두 박자가 맞아 떨어지면 어떤 나라라도 배겨내지 못하고 망한다. 구소련은 그 대표적인 나라다. 레닌이라는 희대의 망상가이자 사기꾼이 러시아라는 나라를 졸지에 지옥으로 끌고 갔다. 레닌의 망상과 열정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 폴란드, 헝가리, 체코 같은 나라도 한데 묶어 지옥으로 만들었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레닌이 망상에 사로잡혀 지랄발광을 할 때 러시아 국민들도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이다. 레닌 혼자 나라를 그렇게 지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이 나라를 지옥으로 끌고 갈 때도 그 나라 국민들의 열광적 지지가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더 드라마틱하다. 차베스가 망한 나라 아르헨티나를 본뜨다가 나라를 거덜 냈는데도 국민들은 같은 사회주의자 마두로를 뽑아서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다. 이쯤 되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배가 곯아도 어디에 대고 손 벌릴 입장이 못 된다.
그 과정을 지금 한국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게다가 북쪽에는 굶주린 이리떼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다른 나라와는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다.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레닌이나 페론, 차베스 같은 자가 나타나면 한국은 그야말로 골로 간다. 그래서 나는 경고를 했다.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면서. 율곡 선생은 임진왜란 발발 8년 전에 타계했다. 살아생전 율곡은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누누이 했으나 그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심지어 서애 류성룡 선생도 율곡의 일본 침공 대비론養兵論을 반대했다. <십만양병론>은 율곡 사후 그의 제자인 김장생이 쓴《율곡전서》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를 두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다.
율곡이 허황된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이 십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군사를 기를 능력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은 200년 동안이나 지속된 평화를 누리던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지난 총선을 한국이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꼴이 나는 시발로 본다. 나의 이런 주장이 율곡 선생의 양병론처럼 들린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망국으로 가는 길을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서고 있었으니 나는 그 시작을 김영삼의 집권으로 본다.
한국의 현대사는 뚜렷한 시대명제를 갖는 사건들에 의해 진전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은 산업화와 민주화다. 산업화는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64년부터 30년 1964~1993 동안에 일어났고 민주화는 1987년부터 30년 동안에 이룩했다. 그러나 산업화는 관성에 의해 2016년까지 13년 더 계속되었다. 산업화의 주인공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탄핵과 투옥을 당한 것을 나는 실질적인 산업화시대의 종언으로 본다. 박근혜의 탄핵과 투옥은 한국의 운명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자 징후였던 것이다.
그 후 일어난 일들을 보라.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산업화와 거꾸로 가는 정책과 법들을 양산해 냈다. 그렇다고 그의 정책이나 사상이 민주화도 아니었다. 바로 좌경화였다. 한국에서 좌경화란 단순한 마르크시즘이 아니다. 북한을 추종하는 정신 나간 좌경화였다. 한국이 급속한 속도로 북한 추종세력으로 침탈당하기 시작한 것이 문재인 때부터이다. 묻겠다. 우리는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가.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쉴 수 있는가. 공존할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생각 그것이 좌경화다. 그렇다. 2017년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조류는 민주화에서 좌경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민주화는 좌경화를 위한 준비시기였다.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들은 이른바 386세대. 386세대를 상징하는 우상호, 송영길, 이인영, 임종석 같은 인간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인간들인가. 아니다 그들은 민주화 피켓을 들었지만 실제로 한 짓은 좌경화였다. 지난 총선에서 좌파세력의 압승은 좌경화의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보면 된다. 이제부터는 노골적으로 좌경화 피켓을 들고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는 어마어마한 천연자원 보유국이다. 그런 나라도 나라가 좌경화되면 한 순간에 결딴이 나고 만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정녕 개뿔도 없는 나라다. 식구만 바글바글할 뿐이다. 그런데 저들 나라의 전철을 밟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 한국은 주워 먹을 개똥도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내 눈에는 그런 미래가 훤히 보인다. 그래서 마지막 경고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랴.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영악한 족속인 한국인들은 그렇게 어두컴컴하고 두려운 미래를 온 몸으로 느끼는지 결혼 안 하기, 아이 안 낳기로 대처하고 있다. 좌파 인간들이여, 이 비극적이고도 본능에서 우러나는 백성들의 몸부림이 정녕 눈에 안 보이는가. 이게 어디 예사로운 일인가.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으라. 지난 총선 결과가 국민들의 지지 없이 가능한 일인가.
국민들이 지지하여, 나라를 갈아엎으려는 세력들과 국민들이 한 패가 되어 일어난 일은 하늘도 돌보지 않는다.
나는 그로 인한 형벌이 300년 간다는 경고도 수차례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경고할 일은 없다. 나의 경고는 이것으로 끝이다. 율곡 선생은 간절한 경고를 멈춘 그때 돌아가셨다. 나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윤석열의 오판만을 지적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기다리는 형국이다.
허주 필자의 위 글을 옮기다 보니 10여 년 전 만난 재미 교포가 떠올랐다. 그는 결혼 후 젊을 때 도미하여 보스턴에서 부동산업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라 했다. 호남출신으로 37년생인 L회장은 부산구치소 수감 중 억울하게 자살한 A부산시장과 S대 동기라며 나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자주 과시했다. A시장이 대학 토목과 출신이란 것은 나도 당시 시청 친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L회장은 기계공학이라 전공은 서로 달랐다.
L회장과 동연배인 사제가 날 그에게 소개했다. L회장이 가족과 한 번씩 귀국하면 사제관에 함께 머물면서 차량이 필요해서 날 부른 것이었다. 사제는 L회장의 손위 처남으로 두 사람은 연배가 비슷했다. 때론 사제가 미국을 방문하여 휴가를 L회장댁에서 보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L회장이 귀국할 때마다 두 부부와 사제가 어울려 부산의 이름난 관광지나 경주 일원을 들러보았다. 그럴 때마다 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운전을 맡았다. 평소 농을 즐기는 편인 사제는 ‘우리가 참으로 환상적인 조합’이라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육군 군종감을 지낸 사제는 전국 명승지에 예비역 장성들이 책임자로 있는 리조트를 폭넓게 알고 있었다. 육군사관학교와 가톨릭대학을 나온 사제의 독특한 인맥 덕분인지도 모른다. 군종감은 육군 소속이지만 해군과 공군 해병대 장성 신자들까지 보살피는 관계로 임명장도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고 있었다. 현역 때 군종감에게서 무슨 은혜를 입기라도 했는지 왕년의 장성들은 봄가을 관광시즌이면 리조트로 사제를 초대하곤 했었다. '환상적인 조합'에 사건이 터진 것은 연일 대북전단으로 시끌시끌하던 무렵이었다. 목적지 설악산이 코앞인 속초 시내에 우리가 탄 차량이 막 진입했을 때, L회장 입에서 대북전단 얘기가 튀어나왔다.
핸들을 잡은 난 재미교포가 웬 대북전단을 꺼내나 싶었지만 애써 예를 갖추느라 그대로 들어주고 있었다. 그는 “박근혜가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김정은 위원장이 싫다는 짓을 계속 해대고 있으니… 원 쯧쯧쯧…” 그가 말하는 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전단을 보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인내심을 발휘해서 끝까지 들어주기만 했으면 그날 여행지에서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난 가만히 참고 있으려니 속에서 화가 치밀어 핸들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회장님, 이 나라 대통령은 그냥 박근혜이고, 북한 애숭이 김정은은 깍듯이 위원장이란 말인가요?” “지금 강 교수는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왜, 내 말이 틀리기라도 했단 말이오?” 직장은퇴 후 전문대학에 겸임을 맡아 전기공학을 가르치느라 10년 넘게 출강한 걸 두고 처세술에 능한 사제가 교수라 부르는 걸 그도 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민들의 피를 빨고 있는 애송이 독재자를 그렇게까지 높이는 저의가 뭐요? 도대체…” 나의 흥분한 물음엔 답하지 않고 L회장은 다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공기업 퇴직자단체를 맡는 바람에 박근혜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했고 여의도와 청와대 주변을 맴돌면서 안간힘을 썼던 난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됐습니다. 그럼 오늘 여행은 접고, 일단 파출소부터 찾아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봅시다.” 불과 200m 남짓 진행하자 도로변에 파출소가 나타났다. 씩씩거리며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사제가 바짝 뒤따라 들어왔다. 낮술이라도 한잔 걸친듯 얼굴이 검붉은 파출소장이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흥분하여 떠들어대는 얘길 들어보더니 그도 좀 난감한 모양이었다. “어르신들, 저희가 그런 일까진 하지 않습니다. 잠깐만요." 그러곤 고개를 돌려 "저으기 김 경장 어디 갔나?" 라고 했다. 젊은 의경이 김 경장을 찾아오자 "어이 김 경장, 이런 땐 국정원에 가야 하나? 아니 참 통일부든가?" 하면서 우리 일행 안색을 살폈다. -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