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잠언 24장 23 - 34절
23 이것도 지혜자의 말씀이다. 재판할 때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
24 죄인에게 "너는 죄가 없다"고 선고하는 자는 백성의 저주를 받고, 여러 사람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25 죄인을 바로 재판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며, 축복이 그들에게 풍성히 임할 것이다.
26 적절하게 대답하는 자는 입술에 입맞춤하는 것과 같다.
27 바깥일을 잘 처리하고, 밭일도 잘한 후에, 네 집을 세워라.
28 근거 없이 네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고, 네 혀를 놀려 남을 속이지 마라.
29 "그가 나에게 행한 대로 나도 행하고, 그가 행한 대로 나도 갚을 것이다." 하고 말하지 마라.
30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미련한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 보니
31 가시덤불이 사방을 덮고,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돌담은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다.
32 내가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을 많이 하여 깨우친 것이 많았다.
33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쉬자.
34 그러면, 가난이 강도 떼처럼, 궁핍이 군사들처럼 너를 덮칠 것이다.
<묵 상>
본문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잠언으로. ‘솔로몬 제2잠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3. 지혜 있는 사람의 잠언(23-34절)
"이것도 지혜자의 말씀이다. 재판할 때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23절) 본문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잠언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여기서 '편들다'는 '낯을 봐주다'는 의미입니다. 즉 아는 사람의 얼굴,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해서 봐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죄인에게 "너는 죄가 없다"고 선고하는 자는 백성의 저주를 받고, 여러 사람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죄인을 바로 재판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며, 축복이 그들에게 풍성히 임할 것이다."(24-25절) 만약 얼굴을 안다고 해서 그의 죄가 없다고 한다면 백성들로부터 저주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재판을 할 때는 공정해야 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도 안 됩니다. ‘안면무죄 생면유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보호를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적절하게 대답하는 자는 입술에 입맞춤하는 것과 같다."(26절) ‘적절하다’의 의미는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게 알맞도록'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적절함’은 ‘올바름’, ‘공정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입맞춤’은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바른말을 해 주는 것이 참된 우정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의 언어에 진실함과 올바름을 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나태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끝을 맺습니다.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미련한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 보니 가시덤불이 사방을 덮고,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돌담은 여기저기 무너져 있었다. 내가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을 많이 하여 깨우친 것이 많았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쉬자. 그러면, 가난이 강도 떼처럼, 궁핍이 군사들처럼 너를 덮칠 것이다."(32-34절) 그 집의 화장실이나, 창고를 보면 그 집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추어진 곳, 드러나지 않는 곳이 잘 정돈되어 있으면 드러나 있는 곳은 당연하게 정리를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밭'과 '포도원'을 보면 그 사람이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밭과 포도원은 농부에게 생명과 같은 곳입니다. 그의 관심과 정성에 있어서 초점이 되는 곳입니다. 그곳들이 가시덤불과 거친 잡초로 가득하고, 돌담이 여기저기 무너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경 자체가 황폐화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 미련한 사람의 상태 역시 돌보기 쉽지 않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것을 보고 지혜자의 생각이 깊어졌고, 깨우친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혜가 없고, 게으른 농부의 밭, 미련한 과수원지기의 포도원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본 것입니다. 타인의 삶을 자신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았습니다. 반면교사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조금만 더의 잠’, ‘조금만 더의 졸음’ ‘조금만 더의 쉼’이지만, 그 ‘조금’이 합쳐지면 인생 전부가 됩니다. 가난이 ‘강도 떼처럼' 오고, 궁핍이 ‘군사들처럼’ 덮칠 것이라고 합니다. ‘강도 떼처럼'은 예측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때입니다. 그리고 ‘군사들처럼’은 자신이 대책을 세우거나, 방어할 수 없게끔 온다는 말입니다.
게으르고, 미련한 사람의 모습이 이런 깨달음을 준다면,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교훈을 주겠습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의 삶이 빚어지기를 의식적으로 구하십시다. 하나님은 지금껏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삶의 모든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어디이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언제인지 인간의 어떤 개념이나 예측으로 제한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보다 크십니다. 완전히 자유자재로 친히 원하실 때에 원하시는 곳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다.
<오늘의 기도>
공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언제나 게으르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주어진 삶에 신실하게 하옵소서. 생명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는 복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신실하게 경청할 때 말씀이 내 안에서 육신이 되어 나의 가운데 거하게 하옵소서. 호화로운 삶을 위함도 아니오. 기적들을 통하여 선전하려고 하는 것도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말씀의 충만한 능력이 말씀을 듣고 나서 삶에 적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동안 그 변화의 능력이 내 안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데 있음을 깨우쳐 주옵소서. 자기계발서나, 자기 성공을 위한, 인간관계를 위한 지침서 정도로 말씀을 대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참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