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성주역사테마공원(星州歷史테마公園)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성주읍성(星州邑城)
◆성주사고(星州史庫)
◆관천대(觀天臺)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충헌각(忠獻閣)
◆청사기념관(靑史記念館) (청사도서관)
◇봉산재(鳳山齋)
◇성주이씨(星州李氏) 시비공원(詩碑公園)
◆성주읍성(星州邑城)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성주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정사 앞 동북쪽 성곽의 흔적만 일부 남게 되었는데 2020년 10월에서야 재건하였다.
산책로에 조성된 비석들은 조선 시대에 성주 곳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도로 개설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이전되어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각 시설은 각종 문헌과 관련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해 지역문화유산의 역사와 가치를 재조명했다.
◆성주사고(星州史庫)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성주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21)의 일이다. 설치 당시 실록각은 성주목 관아에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38년(중종33) 11월 6일 화재로 일시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실록각을 건립하고 1540년 4월에 재차 실록을 봉안하였다. 이때의 기록에 따르면 사고의 건물을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이 넓게 트였고 2층 건물은 높이 솟아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중층 누각 형태의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성주사고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복원되지 않았는데, 성주역사테마공원에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기록을 살펴 500여년이 지난 2019년(기해년)에 재현된 성주사고는 전주 경기전에 복원된 전주사고와 조선전기 사고에 대한 연구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재현된 성주사고 실록각 이층 내부에는 소규모 전시관을 마련했다. (자료 출처 : 성주군)
※ 성주사고 홍보실 - (실록각 2층 →오후 5시에는 문을 닫음)
◆관천대(觀天臺)
-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성주사고를 등지고 솟아나 있는 봉두산 정상에는 관천대가 재현되어 있다. 관천대는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구인 간의를 설치하였던 관측대를 말한다. 조성된 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하였으며,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을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고 왕정의 급선무이다."고 했던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하는 마음과 혼을 담는 뜻에서 조성하여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자료 출처 : 성주군)
◆충헌각(忠獻閣)
충헌각은 조선조 인조 26년부터 경종 2년(1648∼1722)까지 문신인 충헌 김창집을 추모하는 비각으로서 영조 신임사화 때 역모로 거제도에 유배되었다가 성주에서 수명(사사)된 것을 그 후 그 분을 기리는 비각을 세웠으나 6.25 전쟁 때 소실, 2006년에 뜻있는 인사들로 복원하였다. (비문 안내문 참조)
◆청사기념관(靑史記念館) (청사도서관)
청사靑史 서석준(徐錫俊1938∼1983)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성주 출신으로서 대통령 동남아 외교순방 수행 중 미얀마 아웅산국민묘지에서 순국하였으며, 그 분을 기리는 도서관이 1987년에 이곳에 세워졌다.
◇봉산재(鳳山齋)
-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봉산재는 성주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이 살았던 옛 집터에 세워진 재사
◇성주이씨(星州李氏) 시비공원(詩碑公園)
이숭인 '승사(僧舍)', 조선 개국공신 이직 '오로시(烏鷺詩)',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이조년의 '다정가', 백년설(본명 이갑룡)의 '번지 없는 주막' 노래비 등 17인의 시비(詩碑)가 설치되어 있으며, 시비공원 옆 봉산재는 성주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이 살았던 옛 집터인데 2011년 4월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