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전도서 2장 12 - 17절
12 나는 다시 지혜와 미친 짓, 우둔함이 무엇인지 깨치려고 작정했으나, 왕위를 계승하는 자는 이미 되어진 일 외에는 달리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13 빛이 어둠보다 나은 것과 같이 지혜가 우둔함보다 낫다.
14 현명한 사람은 자기 앞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살지만 내가 깨닫고 보니, 둘 다 결국은 같은 운명이었다.
15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나도 당할 것인데, 내가 지혜롭게 살아도 아무 소용없으니 이것 역시 허무하다.'
16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처럼 오래 기억되지 못하고, 조만간 둘 다 잊혀지고 말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역시 죽어야 할 운명일 뿐이다.
17 그래서 나는 산다는 것이 싫어졌다. 왜냐하면 해 아래서 되어지는 일이 내게 슬픔만 주고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듯 허무하기 때문이다.
<묵 상>
본문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우둔한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교훈하며 한숨을 쉽니다.
2. 해 아래의 인생 - 지혜자나 우둔한 자나 결국 죽음 앞에서 헛되다(12-17절)
"나는 다시 지혜와 미친 짓, 우둔함이 무엇인지 깨치려고 작정했으나, 왕위를 계승하는 자는 이미 되어진 일 외에는 달리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12절) 설교자는 왕의 지위를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선왕이 이미 행했던 일을 확인해 보았는데, 지혜, 미친 짓, 우둔함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것은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에 오를 자가 누가 되든 간에 솔로몬 자신이 추구한 것보다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자신이 한 실수와 오류를 반복해서 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결론에 도달할 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에 대해서도 하나님 없는 모든 수고가 다 그렇게 한계가 있는 결론을 갖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둠보다 나은 것과 같이 지혜가 우둔함보다 낫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앞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살지만 내가 깨닫고 보니, 둘 다 결국은 같은 운명이었다."(13-14절)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지혜가 상대적으로 우둔함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제 앞을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어둠 속에서 헤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둔하기보다는 지혜를 소유하기를 바라는 것이 좋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자기 앞을 보다'는 현명한 사람의 안목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봄으로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고, 바람직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자나 우둔한자나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둘 다 평등한데 조금 더 나은 세상의 지혜를 소유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염세적인 태도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허해야 하며,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나도 당할 것인데, 내가 지혜롭게 살아도 아무 소용없으니 이것 역시 허무하다.'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처럼 오래 기억되지 못하고, 조만간 둘 다 잊혀지고 말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역시 죽어야 할 운명일 뿐이다."(15-16절) 설교자는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데 내가 무엇이 더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것 또한 허무하고, 헛되구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 앞에서 설교자는 헛됨을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죽음은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아무리 미련해도 똑같이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생명의 탄생은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이 땅에서의 함께함에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의 죽음이 똑같다는 것 때문에 지혜의 허무함을 토해 마지않는 것입니다. 지혜자도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죽을지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의 죽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인생의 유한함과 한계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는 산다는 것이 싫어졌다. 왜냐하면 해 아래서 되어지는 일이 내게 슬픔만 주고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듯 허무하기 때문이다."(17절) 설교자는 산다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해 아래에서 되어지는 일이 슬픔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슬픔만 주고'는 '괴로움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설교자인 솔로몬은 지혜도, 해 아래서 수고하는 노력도 헛됨을 알게 됨으로 염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인생관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면서 삶을 축복으로 여기고 적극적 삶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어리석은 자였다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렇게 염세적으로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가 비록 한 때 하나님을 떠났지만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한 때 방황했던 자신이 ‘해 아래’ 즉, 하나님을 떠나 수고한 모든 것이 '괴로움'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그가 지닌 지혜도, 그 어떤 수고와 노력도 헛될 뿐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좋은 것을 찾아보고자 힘쓰고, 애쓰며 수고했던 것의 결과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인생의 주관자이신 아버지 하나님! 제아무리 세상적으로 뛰어나고 지혜가 충만해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임을 보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제 딴에는 아주 훌륭하게 보여도,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인식하며 살게 하옵소서. 해 아래서의 인생이 아니라 오직 주님 안에서 사는 인생이 복된 것임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유한한 인간이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기에 날마다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