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전도서 4장 1 - 6절
1 내가 다시 살펴보니, 해 아래서 온갖 학대가 자행되고 있었다. 학대하는 자들에게 권세가 있으니 학대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구나.
2 그래서 나는 말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3 그러나 아예 세상에 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해지는 악을 보지 않은 자가 이 둘보다 더 낫다.
4 또 살펴보니, 모든 수고와 성취는 이웃에 대한 시기심에서 발생하였다. 이것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다.
5 어리석은 자는 팔짱 끼고 지내다 굶어 죽는다고 하지만,
6 바람을 잡고자 두 손 벌려 수고하는 것보다는 한 줌으로 만족함이 더 낫다.
<묵 상>
본문은 설교자가 해 아래에서 인생에게 벌어지고 있는 허무함을 보고 한탄하듯이 토로합니다.
1.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온갖 학대에도 위로자가 없도다(1-3절)
"내가 다시 살펴보니, 해 아래서 온갖 학대가 자행되고 있었다. 학대하는 자들에게 권세가 있으니 학대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구나."(1절) 권력을 가진 자의 학대로 인해 뼈아픈 눈물을 흘린 자들이 많지만, 그들을 위로할 위로 자가 없다고 합니다. 권력을 지닌 자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약한 자들에게 부당한 대우와 손해를 입히는 등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그 횡포에 힘없고 약한 자들은 고통과 억울함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혹 학대받은 자들을 위로하다가 자신도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서 위로하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이런 상황을 보며 허무함을 느낍니다. 솔로몬은 막강한 권세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권력을 잡은 자들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 아래서 행해지는 학대에 위로자가 없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는 곳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차별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에는 나에게 역사하시는 주님이 너에게도 차별 없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학대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자가 되어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도움받을 길이 없는 절망적인 사람에게 위로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그러나 아예 세상에 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해지는 악을 보지 않은 자가 이 둘보다 더 낫다."(2-3절) 얼마나 큰 허무를 느꼈던지 산 자들보다 죽은 자가 더 복되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아서 이런 세상의 악함을 보지 않은 사람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불의한 자들에게 학대를 받아 고통스러워하며 사는 삶보다 차라리 죽은 자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부조리한 세상의 현실이 너무도 허무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학대받는 자가 아닌 권세를 휘두르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입니다. ‘해 아래 세상에는 그 어떤 위로자도 없다’라는 허무함에 대해 결국 '해 위로' 시선을 향하게 합니다.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 주실 분은 주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2.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수고와 성공의 허무함(4-6절)
"또 살펴보니, 모든 수고와 성취는 이웃에 대한 시기심에서 발생하였다. 이것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다. 어리석은 자는 팔짱 끼고 지내다 굶어 죽는다고 하지만, "(4-5절) 온갖 수고 끝에 성공에 이르렀지만 결국은 그 성공이 이웃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었더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성공조차도 허무한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연마하지만, 그 수고와 재능이 시기로 인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허탄한 상황을 본 것입니다. 이것 역시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무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팔짱을 낀 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또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결과는 자기의 몸만 축내는 것이라며 이를 어리석은 모습으로 언급합니다.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할 뿐 자신은 팔짱 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자는 자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삶을 살면서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의 그 행위 역시 헛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잡고자 두 손 벌려 수고하는 것보다는 한 줌으로 만족함이 더 낫다."(6절) 두 손을 가득 채우려는 욕심으로 평안이 없는 헛된 수고를 하기보다 차라리 한 손에 가득한 상태 즉, 필요한 정도만 가지고도 마음에 평안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손'은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을 뜻합니다. 즉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움켜 잡은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한 줌'은 한 손을 오목하게 펼친 손바닥을 뜻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은 평온함을 의미합니다. 지나친 과욕이나, 지나친 게으름을 배격하는 절제된 삶을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기도>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이 있는 곳에 차별이 없게 하옵소서. 이런저런 차이는 있어도 사람을 차별하여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존중하며 살게 하옵소서. 복음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구별된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해 아래에서 살면서 세상의 헛된 것으로 채우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복음을 티 내며 살게 하옵소서. 학대당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므로 세상의 성공과 위치가 아니라 그 어디에서나 형통이게 하옵소서. 세상의 욕심으로 움켜 잡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펼쳐진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섬기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