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의 말씀은 왕하 18:35-37의 말씀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여기 말씀하시는 아리엘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4절에 의하면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대적들의 포위로 마음대로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부하 랍사게의 조롱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를 7절의 말씀대로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리엘의 성곽을 치던 앗수르의 세력은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내려와서 앗수르의 군대 185,000명을 죽였습니다. 앗수르에서의 구원은 애굽에 있지 않았고 오직 여호와의 능력과 구원하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구원 사건은 단순히 여호와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유다의 불신앙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의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입었다면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은 여전히 도덕적 타락과 교만으로 영적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죄로 인해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10절에 보면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선지자 혹은 지도자들에게 부어 주사 눈이 감기게 하셨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의 눈이 감기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묵시를 가져다 주었더니 유식한 자들은 봉하였으니 못 읽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식한 자에게 주었더니 무식해서 읽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깨닫기를 거절하는 완악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에는 그 원인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중요시 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활동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또 하나의 전통을 만들어 율법주의자를 만듭니다.
15절부터 마지막절 까지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회복이 있기 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숨기는 자들에 대하여 화를 명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비밀 협정을 맺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패역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놀라운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비전을 주십니다. 누구를 회복시키십니까? 19절 겸손한 자들에게, 마음이 낮아진 자들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마음이 낮아진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며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어 주님의 기쁨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