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은 30장과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용적인 순서에서도 거의 같습니다. 31장은 30장의 반복이고 축소판입니다. 왜 이렇게 반복이 이루어질까요? 아마도 30장의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이 말씀을 들었던 유다 백성들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시면 애굽을 그토록 의지하는 이유는 애굽의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이 심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전차 부대와 기병대는 그야말로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사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물으십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지금 왜 이렇게 곤경 속에 처해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숭배에 몰두했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행했습니다. 그들에겐 더 이상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방식대로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 일과 애굽을 의지하는 일이 악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겠다고 하십니다. 3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는 것은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는 정도가 마치 신을 숭배하듯이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손을 드시면 엎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애굽은 유다를 구원하지도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애굽이 지혜롭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유다 백성들,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출애굽시키신 더욱 하나님이 강하다고 믿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의지하려 하니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십니다. 4절을 보면 젊은 사자가 그 먹이를 움키려고 으르렁거리면서 왔을 때 양을 지키는 목자가 왔을지라도 그에 상관없이 먹이를 채가는 것처럼, 그들의 대적과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5절에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듯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미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제 몸도 아끼지 않고 싸울만큼 모성애가 강합니다. 이와 같이 당신의 백성을 호위하시면 건지시겠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6절 이하에서는 이제 이스라엘이 돌아오도록 권면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안심할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멸하시겠노라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시온에는 여호와의 불이 있고 여호와의 풀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능력이 시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에 함부로 손대는 자마다 그 소멸하는 불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붙들고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