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相思花 / 홍해리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 홍해리 시집 <푸른 느낌표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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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단의 중진 홍해리 시인의 ‘상사화相思花’ 전문이다.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달려 있을 때는 꽃이 없어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간절하게 그리워한다고 해서
그 이름으로 불린다는 상사화를 소재로 삼은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다. 잎이 완전히 진 뒤에 꽃이 피는 상사화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생태와 애틋한 사연의
전설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자태가 매혹적이기 때문에
완상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
사찰 마당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석산(石蒜)으로도 불리는 꽃무릇 역시 그렇다.
상사화와 마찬가지로 수선화과에 속하면서 생태 또한
비슷한 꽃무릇은 잎이 없는 상태의 비늘줄기가 30~50㎝
길이로 곧게 솟아올라 그 끝에 강렬한 인상의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운다. 하지만 상사화와 달리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었다가 지고 난 뒤에 잎이 나기 시작한다.
꽃의 색깔·형태·개화 시기 등도 조금씩 차이 나지만
같은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것은 두 꽃의 생태적·
정서적·상징적 공통분모 때문이리라.
/ 김종호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