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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예수님, 예수님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우리들이 말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가진 이해 대부분이
부정확 한 상태입니다.
율법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율법이라는 말이
예수님, 하나님이라는 단어 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율법에 대해 가진 이해 역시 몽롱하고
부정확 한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자신,
즉 기독교회라는 우리 자신에 대해 가진 이해 역시
부정확 한 상태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상태를
단도직업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예수님을 잘 모르고
율법을 잘 모르고
안다고 하더라도
잘못 알고 있거나 희미한 상태가 대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성질을 가진 것이
예수님이고 율법이고 기독교회라는 우리들입니다.
본 내용에서는
그 중 한 가지 관점에서
예수님과 율법과 기독교회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나타내고자 합니다.
비 성경적인 사상을 가진
WCC.WEA기독교가 대세이고 주류가 되어 있는
한국교회 현실 상태에서
율법에 대한 이해와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성경적으로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비 성경적인 WCC.WEA기독교 사상으로부터
미혹 당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보시고 있는
회색 바탕과 사람에 대해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회색 바탕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라는 것과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을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지식인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으로부터 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율법서임)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누구로부터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런 어두움 상태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짐으로 인하여
드러난 것이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도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율법이 주어짐으로 해서
몰랐던 실체가 드러나 알게 된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 세상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죄인들의 인류 세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주목!
바울 사도도 처음에는 이 같은 사실,
즉 율법의 기능과 주어진 목적을 몰랐습니다.
율법이 주어졌으니
율법이 말하는 바를 따라 지키면
의에 이르고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 그가 율법의 실체를 깨닫고 보니
죄와 사망의 법이고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사로잡아
가두고서 죄인으로 정죄하고 심판대에 세워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케 하는 것이
율법의 기능이고
율법이 주어진 목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
즉 율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으로 말씀드리자면
율법이 주어짐으로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인류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가?
다음과 같이 인류 세상은 율법아래 놓이게 되었고
갇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같은 인류 세상의 상태,
즉 율법이 주어짐으로
인류 세상은 율법아래 놓이게 되었고
갇히게 된,
이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WCC.WEA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이 같은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모르고 있고 모르고 있기에
그들은 말도 못합니다.
인류 세상에 주어진 율법의 기능과
주어진 목적이 이해되어야
예수님을 선명하게 알게 되기에
비유를 들어 말씀드립니다.
법정에는 재판장, 검사, 변호사가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이냐 하면 검사입니다.
검사는 죄 없는 의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죄인에게 있어서
검사는 죄인의 죄를 들춰내서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인으로 정죄하고서
사로잡아 가두고서는
재판정에 세워 형벌을 당케 하는 것이
검사의 기능(역활)이고
검사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검사는 죄가 없는 사람에게는 상관이 없고
죄를 범한 죄인에게 해당되는,
죄인들을 사로잡아 가두고서
형벌에 처하기에
죄인에게 있어서 검사는 어두움의 권세입니다.
율법이 바로 이 검사와 같은 성질을 가졌고
이 검사와 같은 율법이
인류 세상에 주어졌고
인류 세상은
율법 아래 놓이게 된 상태입니다.
율법아래 놓인 세상 인류가 죄 없는 의인들인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불의한 자들로서 죄인들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이 주어짐으로
율법 아래 놓인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율법으로부터 벗어 날수 있는가?
없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세상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죄를 범한 죄인이
검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로서
율법 아래 놓여 있고
사로 잡혀 갇혀 있습니다.
검사의 기능과 존재 목적이
사람이 범한 죄를 들춰내서
죄인으로 정죄하고서 사로잡아 가두고서는
재판정에 세워 형벌을 당케 하듯이
율법이 세상 모든 인류에게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사로 잡아
가두고서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케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성경에서 뭐하고 말해 주고 있는가 하면,
죄와 사망의 법이라 말해 주고 있습니다.(롬8:2)
이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날 사람이 있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죄인이기에
율법의 정죄와 송사와 저주로부터
어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아래 갇혀 사망에 이르게 되는
세상 인류 상태입니다.
절망 할 수밖에 없는
세상 인류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죄를 범한 죄인에게 있어서
최고로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김정은이 가진 핵폭탄입니까?
공산주의 사상입니까?
아니면 가진 것 없는 가난입니까?
사람을 죄인으로 사로잡아 가두고서
죄인으로 정죄하고 송사하여
형벌을 당케 하는 검사가 무서운 대상이듯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대상이 율법임을 아셔야 합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도
인류 세상에는 죄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 이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짓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짐으로
세상 인류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고
인류 세상은 율법 아래 놓이게 되었고
갇히게 되었고 율법의 송사를 따라 심판에 처해져
저주의 형벌로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인류 세상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러한 율법임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어 다음과 같이
율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롬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를 범한 사람을 사로잡아 가두고서
죄인으로 정죄하고
심판대에서 세워 형벌을 당케 하는 검사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이 율법이 그러합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사로잡아
심판대에 세워 사망에 이르게 한다 해서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선하고 의롭지만
율법이 지닌 성질과 기능과 존재 목적이
검사와 같기에 죄를 범한 죄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사망 권세이고 흑암의 권세입니다.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세상 인류에 대한
율법의 기능이 어떠함을 보십시오.
롬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인류 세상에 율법이 주어짐으로
인류 세상은 율법 아래 놓이게 되었고
저주 아래 놓인 상태가 인류 세상입니다.
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러함에서 주목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 인류를 죄인으로 사로잡아 거두고서
심판대에 세워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케 하는
율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는 것인데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 만물들은 다 변해도
율법은 세상 끝날 까지 일점일획도 변하거나
떨어지지 않는 완전한 법이기에
이 세상에 속한 어느 누구도
사망 권세를 가진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자 없습니다.
WCC.WEA기독교를 비롯하여
로마 카톨릭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면
그는 율법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는
죄인들입니다.
사망 권세를 가진 율법으로부터 이들 죄인들은
벗어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에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갇혀 있지 않고 벗어났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가?
율법의 기능과 주어진 목적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이만 줄이고
어떻게 해서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율법아래 있지 않고
사망에 이르지 않고 벗어났는가?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 알아야 될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이냐?
율법과는 정 반대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닌 성격과 역할이 정 반대입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로 정 반대인가?
율법은 죄를 범한 사람을 사로잡아
죄인으로 정죄하고
심판대에 세워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케 하는 검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송사와 사망이라는 형벌로부터
죄를 범한 죄인을 건져내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하시는 변호사(구원자)이십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로 정 반대의 성질인지 이해 되셨는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이 두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정말 필요하기만 합니다.
이제 구원론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이 구원, 구원합니다만
무엇에 대한 구원,
즉 풀려나거나 벗어나거나 건짐을 받는 구원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죄로 인하여 율법아래 놓여 있고
갇혀 있고 묶여 있고 빠져 있는 죄인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고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고
풀려나고 건짐 받은 해방과 자유의 상태가 구원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들이 가져야할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가 사망권세를 가진 율법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 자신이 구원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았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우리들의 공로나 의지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어려 이설들이 많지만 미혹을 받지 마시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마음으로 믿고
구원 받았음을 확정하십시오.
법정에는
재판장이 있고
좌우편에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재판장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법정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싸움을 합니다.
무엇을 두고?
죄를 범한 죄인을 가운데 두고서입니다.
검사는 죄를 범한 죄인을 처벌하기 위하여 싸우고
변호사는 죄를 범한 죄인이
처벌당하지 않도록
건져 내기 위하여 검사와의 싸움 하듯이
골고다 언덕에서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 간에 싸움을 벌였으되,
하늘의 태양도 빛을 잃었고
생명 없는 바위도 숨이 막혀 터졌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창으로 옆구리를 푹푹 찔렀고
예수 그리스도는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 붓기 까지 하시면서
생명 다하여 죽기 까지 싸우셨습니다.
누가 이겼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무덤에 장사지낸바 됨으로
율법이 승리한 것이 되어
온 세상은 어떠한 소망 없는 절망이었고
어떠한 빛 없는 어두움 이었습니다.
그런 사흘 지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있는가 하면,
검사인 율법과 변호사인 예수님간의 싸움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승리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골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변호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까지 한 이 싸움에서
비롯된 승리로 인하여
율법의 송사와 저주와 형벌로부터 건짐(구원)을 받은
무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한자로 基督敎會/ 기독교회)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 자신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율법 아래 놓인 죄인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우리가
이로부터 구원 받은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까지 싸워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저주와 심판과 그에 따른 형벌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은 상태입니다.
그리고서 어디에 있는가?
장소를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아래로 옮겨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고 갇혀 있습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율법의 저주아래 놓여 있거나 갇혀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여신 구원의 길을 통해 벗어나서
장소를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아래로 옮겨와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교회라고 하면서도
율법을 지켜야 되느니 어쩌느니
우왕좌왕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의 현실이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이런 현상이 왜 벌어지느냐 하면,
율법과 예수님의 성격을 모르고 있음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의 죽으심을 모르기 때문이고
또는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
희미하고 어렴풋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하지 못하고 어렴풋함에서 비롯된 상태에서
교회가 일으키는
치명적인 현상이 있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을 정도로
깊이 생각할 부분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대부분이 이해되어 있지 못하고
일으키는 문제로서
우리 한국교회가 날과 달과 해와 절기 같은 것을
지키지 않습니까?
도둑질이나 간음죄나 살인죄의 무서움은 알아도
교회가 절기나 날과 달과 해와 월삭 등을 지키는
그 같은 행위의 문제의 심각성은 전혀 모르고 있고
도리어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오인되어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려도 무슨 말인지
이해 되지 않아서
문제의 심각성이 와 닿지 않을 테이지만
함께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교회는
율법아래 있지 않고 벗어나서(구원)
장소를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로 옮겨와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교회는
율법 아래 있는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의 풍습이나
율법이 말하는 바를 따라
날과 달과 해와 절기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큰 문제인지
다음 말씀에 비춰 곰곰이 헤아려 보십시오.
골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율법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살아서 세상 끝날 까지 일점일획도
변하거나 떨어지지 않는
완전한 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같은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싸움에서
이기심으로 폐하여 졌습니다.
(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페하여 졌다고 하니 오해 들이 많은데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율법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지금도 살아서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사로잡아 가두고 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당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신 그 부분은
벽이 허물어지고 막힌 담의 구멍이 뚫려서
구원의 길이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이고
그 길이 열린 구원의 길이고
열린 구원의 길을 통해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로 장소를 옮겨와 있는 무리들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율법이 말하는 바,
또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픙습을 가지고 와서
날과 달과 해와 절기와 월삭 같은 것을 지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이 성경의 반문이고
그런 교회가 있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율법을 가지고 와서 지키는
갈라디아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답해 하셨습니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교회가 율법이 말하는 바와 세상 풍습을 따라
날과 달과 해와 절기와 월삭을 가지고 와서 지키는 것이
보기에는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이 보여도
정말 큰 문제가 있음은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장소를 옮겨와 있기에
세상의 풍습이나 율법이 말하는 바의
날과 달과 절기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지켜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별 문제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고
또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예수님을 믿고 교회라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가진
사도 바울의 격노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도 바울이 왜 이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셨는가?
율법이 말하는 바,
날과 달과 해와 절기 같은,
율법이 말하는 바를
갈라디아 교회가 가지고 와서 지키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비롯된
모든 역사를 무익하게 만들어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아래에 있는 교회로 하여금
다시금 초등학문, 몽학선생, 의문(율법을 지칭함)아래로,
저주 아래로 끌어내리는 행위가 되기에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하늘의 천사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격노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 위에는 율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위에 계십니다.
율법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는
사망 권세를 가진 무시무시한 흑암의 세력입니다.
그로부터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장소를 옮겨와 있는
무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기독교회입니다.
이렇게 사망권세를 가진 율법아래에 놓인 죄인들을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역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이고
이것이 구원의 길이고
이 구원의 길을 통해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난 무리들이 성경적인 기독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아야 될 것은
율법의 기능과 주어진 목적을 바르게 알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 은혜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
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3:7-8) 하셨고
고전 2:2에서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다음과 같이 권면하셨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3:18)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면
그는 율법의 저주아래 놓인 죄인으로서
심판대에 세워져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케 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율법의 저주아래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래 있습니다.
롬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WCC.WEA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눈으로 보고
그대로 말하기에
성경적인 기독교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면
그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고 갇혀 있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여신
구원의 길을 통해
죄인 되어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고
갇혀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장소를 옮겨와 있습니다.
이 같은 상태를 성경에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은혜와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가는
이해력이 성령에 의하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 합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