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름돌 ♡
어릴 적 할머니께서
냇가에 나가 누름돌을 한 개씩
주워 오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름돌은 반들반들 잘 깎인 돌로
김치가 수북한 독 위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숨을 죽여
김치 맛이 나게 해주는 돌입니다.
처음엔 그 용도를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할머니를 위해
종종 비슷한 모양의 돌들을
주워다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옛 어른들은
누름돌 하나씩은 품고 사셨던 것 같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자신을 누르고, 희생과 사랑으로
그 아픈 시절을 견디어 냈으리라 생각됩니다.
요즘 내게 그런 누름돌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쳐 가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주제넘게 욕심내다 깨어진 감정들을
지그시 눌러주는
그런 돌 하나 품고 싶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도
팔딱거리는 성미며 여기저기 나서는
당돌함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그런 못된 성질을
꾹 눌러 놓을 수 있도록
누름돌 하나 잘 닦아 가슴에 품어야겠습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누름돌이 되어주면 좋겠고,
부모 자식 간이나 친구지간에도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도 훨씬 밝아지고
마음 편하게 되지 않을까요?
정성껏 김장독 어루만지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유난히 그리운 시절입니다.
- 최원현 수필집 '누름돌'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