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old man)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어떤 나라에 포악한 왕이 살았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외세의 도움으로 포악한 왕(old man)이 죽습니다. 아, 그는 갔습니다. 백성은 굶겨 죽이면서 혼자만 피둥피둥 살쪘던 그 포악한 왕은 갔습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겠죠?
허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포악한 왕은 죽었지만 그 나라는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롭니다. 그 못된 왕이 자기만큼 못된 체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왕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는 백성들을 계속해서 가난과 고통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반문합니다. "그 포악한 왕은 죽지 않았나?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는 굶주리고 고통 받고 있는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old man)을 벗어 버리고
그 왕이 남긴 못된 체제(시스템)를 붕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왕이 죽었기 때문에 고위 관료들이 힘을 잃은 것이 사실이지만 백성들이 그들을 쫓아내기 전까지 그들은 자리를 보존하면서 그 못된 왕이 가르쳐 준 대로 백성을 계속 탈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거듭남을 경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생각(mind)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는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mind가 '마음'으로 번역되어서 왠지 내가 변화시킨다기 보단,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치유해 주셔야만 한다고 수동적인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저 불쌍한 나라 백성이 진정한 자유와 형통을 누리려면 못된 왕이 남긴 그 체제를 붕괴시켜야만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마인드 속,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높아진 모든 거짓과 논쟁의 견고한 진을 부셔야만 합니다.
(고후 10: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그런데 종종 생각을 새롭게 하여 변화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직 확실한 이유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아무래도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믿지 않는 다기 보다 믿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말씀의 원리 보단 자기 경험을 믿는 그 마음, 그것도 옛날 그 못된 왕이 남긴 체제인데 그걸 부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말씀을 접한다면 거짓에 가려졌던 눈을 뜨게 될 것이고 생각을 새롭게 하지 않으려는 그 고집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을 새롭게 하는 힘도 오직 은혜로 성령께 받는 것이니까요(고후 3:18). 내 영광(의견)이 아닌 주님의 영광만 바라 본다면 말입니다.